상대방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연습
오랜시간 회의를 주관하고 결론을 이끌어내고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기획자이자 프로젝트매니저, 사업관리자로 살아서일까?
아니면, 타고난 기질 자체가 나서서 정리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는 성급함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가?
나는 대화 중간에 생기는 침묵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 침묵을 메꿔야 하는 사명이라도 타고 난 사람인양 어떤 식으로 그 여백을 메꾸기 위해 애를쓴다. 이런 나의 애씀이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난... 다들... 어떻게 정리할지 혹은 어떻게 화제를 돌릴지 몰라서 그러는거라 생각했는데...
고객사의 대표님과의 인터뷰 자리였다. 우리 쪽에서도 5명쯤이 참석하고(5명 중 내가 대장도 아니었다.) 고객사는 대표님과 해당 프로젝트 팀장이 함께 한 자리였다. 대기업 라인의 회사였기에 만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사실 내 역할이 크지도 않았다.
큰 문제없이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함께 동석했던 동료 컨설턴트가 나에게 한 마디를 건냈다.
'남수석님은 침묵하는 시간을 좀 기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뭔가 얘기를 하려는데 자꾸 다른 화제를 던지니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는지 마음에 돌덩이가 갑자기 내려앉는 기분이었는지 정확치는 않지만 그 엇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에게 필요한 답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만 했던 시간
일을 한지 이십여년이 되어서야 꺠달았던 것이다.
난 일을 해내는 것만 열심히 배우고 몸에 익히며 왔다는 것을.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끄집에 내 정확하게 분석하고 정리하는 능력만 고도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고 상대를 살피며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핵심을 알아낼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나는 내가 들은 이야기, 보이는 정황에 대한 해석이 정확한 편이었고, 핵심을 잘 짚어냈으며 맥락에 맞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장점들 때문에 일을 하는데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나쁘지 않은 성과들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얘기가 맞아요!' 라는 상대방의 피드백을 종종 들었기에 난 내가 '잘 듣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난 그저 '좀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고 상대의 의중을 약간 잘 예측하는 사람'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내가 침묵을 견디고 기다릴 줄 알았다면 어쩌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프로젝트들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침묵을 들으면 더욱 많은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여전히 나는 침묵을 참고 기다리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노력한다고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꽤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코칭 공부를 시작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 나름 공부하며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한 결과로.
코칭의 핵심은 '경청'이다. 상대의 말도 듣고, 여백도 듣고, 뉘앙스도 듣고, 속도도 들어야 한다.
이 쉽지 않은 트레이닝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 것 같다.
침묵을 견디고 기다림을 트레이닝하니 더욱 많은 것이 들린다.
내 말을 줄이려고 노력하며 대화에 있어 문장 수의 밀도를 낮추니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나는 내가 언젠가는 정말 잘 듣는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