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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Nov 15. 2023

진화의 목적, 삶의 의미

진화는 어떤 목적성을 갖고 일어나는 걸까?


진화는 환경변화에 잘 맞춘 돌연변이들이 다음 세대의 주류가 되는 현상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개체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이런 진화가 어떤 목적성이나 방향성을 갖고 있을까?


침팬지에서 분리되어 나와서 직립보행으로 시작한 인류의 진화가 현대문명에 이르게 된 것을 보고 우린 진화가 어떤 방향성을 갖는다고 착각하기 쉽다.


지능이 발달하거나 문명이 고도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온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에서 진화는 유전자의 랜덤 한 돌연변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상이다. 목적성이 있는 이벤트가 아니란 것. 랜덤하게 변이가 발생한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중에 환경변화에 딱 맞아떨어진 한두 개의 돌연변이가 다음 세대의 주류로 떠오를 뿐이다.


유전적 돌연변이가 촉발하는 진화는 그러므로 우연한 확률 사건이다.


수많은 랜덤 변이들 가운데 단지 종족보존과 개체보존에 유리한 방향의 돌연변이가 살아 남고 다음 세대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변화해 가고 있을 뿐이다. 무한한 시간을 밑천으로. 진화는 어떤 목적성을 갖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우리 모두의 삶도 아마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본질적으로는 없는 개별적인 랜덤한 사건일 뿐이다. 우리의 삶에서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이 모든 분별은 사실 특별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목적 없는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국가, 사회, 가정 그리고 자신이다.


인류의 삶 자체에도 커다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게 아닌 우주적 확률의 결과일 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인생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은 사실 의미 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의미가 없는 데, 의미를 찾고 있으니...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의미와 목적에 집착한다. 스스로 어떤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 그래서 그건 사실 객관적으로 그다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모두 주관적 의미부여에 그치기 때문에...


삶에 어떤 의미나 목적이 없다는 것이 허무나 허망함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선각자들에게 이런 깨달음은 오히려 더 큰 자유, 커다란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재산과 출세, 가족과 명예에 과도하게 의미부여를 하고 몰입할 때 우린 오히려 허망한 끝을 보게 된다. 본질적으로는 그것 조차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삶에 의미와 목표를 부여하는 것은 삶을 살아갈 때 방향이나 목표가 없으면 우왕좌왕하게 되므로 목표 지점을 정하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내가 자의로 정한 의미일 뿐, 커다란 뭔가 예를 들면 신의 소명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삶은 걸림 없이 살아질 뿐. 따져보면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욕심내서 살아갈 것은 아니다.


목표 없음과 의미 없음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린 삶에서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다양한 역할극 - 부모, 자식, 회사원, 사회구성원, 친구, 연인 등등 - 을 하고 있는지도. 사회적 합의하에. 그 주어진 역할에 너무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너무 심하면 공연이 끝나도 그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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