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설모 Dec 27. 2023

"월급을 반으로 깎았다고요?!"

내가 바로 이세계 역행자?!

회사 생활 4년 차, 야근을 하던 26살의 대리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지금 내가 다들 말하는 <금값>인 땐가?'


나의 첫 직장은 당시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꼽히는 기업이었다. 실로 그곳은 열정적이고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사 동기들은 모이기만 하면 '커리어 패스'나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대리로 진급이 결정됐던 날, 옆 팀 차장님은 나에게 커피를 사주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너는 이제 금값이니 어디로든 이직할 수 있다."라고.


그 이야기를 듣기가 무섭게 동기들은 여기저기 이직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연이은 이직으로 연봉이 퀀텀 점프 수준으로 뛰는 친구도 있었다. 그야말로 '몸값'을 '금값'으로 만드는 것을 모두의 숙제라 여기던 때였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아, 분위기에 휩쓸려 두어 군데 면접을 보러 다녔다. 입사 직전 단계까지 갔던 회사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면접을 본 회사는 모두 동종 업계였고, 장소만 달라질 뿐 결국 하는 일은 똑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신입사원 시절,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 것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탑다운으로 내려오는 업무 지시의 홍수 속에서 나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 동력이 필요했다. 도저히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받을 때마다 나는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명확한 목표를 들으면 답답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 때로는 그냥 영혼을 버리고 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원했던 것은 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심이었다. 그것만 있다면, 목재를 찾고 배를 만드는 것 따위는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이렇게 큰 회사에서 '비전'을 찾는 내가 너무 순진한 것 같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도 그냥 해야지 별 수 있겠냐고 말했다. 정말 내가 너무 어리고 순진한 걸까. 성과급으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내가 이상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생 시절부터 후원해 온 NGO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는 옵션이었다. 이력서를 준비하는데 왠지 마음이 두근거렸다. 업의 본질이 '사랑'인 것이 가능한 회사도 있다는 걸 느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일 테니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이직 절차는 순조롭게 이뤄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근로 계약서 사인을 앞두고 있었다.


이때 내가 한 가지 간과했던 점이 있다. 수입이 절반으로 준다는 사실이었다. 기를 쓰고 몸값을 올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 호기롭게 역주행을 하게 됐다. "저는 돈 욕심이 없어서 괜찮아요!"라고 말했지만, 그건 돈 걱정을 해볼 일이 딱히 없었던 26살의 어린 생각이었다. 월급이 반으로 준다는 것은 내가 평소 즐기던 것들(지금은 '사치'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것)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동기들과 나는 지금부터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땐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 말하면 내가 잘못된 길로 걸어 들어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고른 길은 아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회사에 들어와 보니, 나처럼 무언가를 포기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포기하고 얻게 되는 것이 겨우 '뿌듯하고 벅찬 마음'이라니! 남들의 시선에선 이 사람들은 그냥 철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사람들 반짝반짝 빛이 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선 반짝이는 에너지가 있다. 그것은 전염성이 강해, 주변 사람들도 같이 열심을 내게 만든다. 나에게 있어 성과나 보상 따위의 말들은 너무 멀리 있는 단어였다. 정작 나를 애쓰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회사에서 만난 직원들과 후원자들의 '반짝임'이었다.


내가 수입의 절반을 포기한 대신, 세상의 가난을 없애겠다는 거창한 비전을 얻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가난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함께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춤추는 눈빛' 때문다. 냉소와 혐오의 세상에서 선한 싸움을 하려 애쓰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이전 직장 월급은 사이버머니 같았다. 통장 잔고가 늘어가는 것이 기쁘긴 했지만 내일이 기대되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 작고 소중한 월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이 숫자 뒤엔 드러나지 않은 수만 명의 후원자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바꿔나갈 세상의 크기는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 잘 먹고 잘 살자'를 외치는 세상에서 있는 힘껏 남에게 손을 뻗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인해 굴러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료가 퇴사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