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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만두 한 주먹 Apr 21. 2022

[21세기 원시인]
ep 1. 원시인들의 정착기

청춘, 그 출발점에 서서


1) 원시인이 꿈입니다


[원시인] : 미개한 사회의 사람  

   

‘원시인(原始人)’이란 단어가 위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굳이 사용한 이유는, 결코 내가 사는 로컬을 비하하거나 부정적인 인식을 심기 위한 것이 아님을 미리 밝히고자 한다. 본래 도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원시인(原市人)의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누구보다 먼 거리를 볼 수 있는 원시인(遠示人)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아니한가.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지는 말자. 물론 제목에 쓴 원시인은 사전적 의미의 원시인과 결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원시] : 시작하는 처음     


모든 만물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로 한 이상 그것이 단순하든 심오하든 그 목적 하나는 분명해야 할 테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세상에 이 정도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뿐. 우리의 이야기를 접한 다른 청년들이 ‘도시에서의 삶을 던져버리고 로컬로 내려와 지역소멸을 막는다’라는 거창한 뜻은 애초에 가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시작’이 있었고, ‘처음’이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만 우리의 출발점을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는 이유로 감히 상상을 현실로 만들 용기를 낼 수 있게 될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남들과 다르다고, 심지어 때로는 틀렸다고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그런,

결국은 사람 사는 이곳.     


인구밀도 202위 영덕군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

이것이 곧 우리가 그간 걸어왔던 발자취이자 결코 멈춰 있지 않았다는 증거다.



2) 혹시 걷는 거 좋아하세요?


우리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모여 살고 있다. 어느덧 열 명 이상의 청년들이 모였지만, 이곳에 다다른 이유는 저마다 가지각색이다. 로컬의 문화를 기획하려고, 식당을 개업하려고, 지역의 특산물로 술을 만들려고 모였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나는 관심이 없다. 단지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이들과 함께하는 취미 생활이 즐거울 뿐.



우리는 주로 모이면, 걷는다. 그 거리가 매번 길진 않지만, 짧은 산책이라도 고사하지 않는다. 걷기가 만남의 명분이 될 수 있고, 만남이 걷기의 명분이 될 수 있는 관계는 더없이 소중하다. 별것 아닌 걸음도 함께 걷는 누군가에 의해 특별해질 수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서로를 알지 못했던 때에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뚜벅뚜벅 걸어왔으리라. 아마 그 속도가 도시의 그것에 비해 빠르지 못하다는 이유로 뒤처질 때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단 한 가지, 시속 4km에 불과한 속도일지라도 고유한 목적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늘 걸어왔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뚜벅이’라 명명하고, 우리가 사는 마을을 ‘뚜벅이마을’이라 칭하기로 했다. 그 후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 우리는 이곳에서 ‘가능성’까지 걸어 보려고 한다.    

  

걷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임을 굳게 믿고, 서로의 걸음을 온전히 존중해 주는 공동체.

이곳은 ‘뚜벅이마을’이다.



3) 걸어서 원구마을로


호기롭게 뚜벅이마을로 모인 우리였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어디서 살지?’. 뚜벅이마을의 베이스캠프로 삼아 정착할 장소를 찾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공간이 마음에 들면 비용이 턱없이 비쌌고, 비용이 적당하면 공간이 매우 협소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물 자체가 잘 없다는 사실. 이게 바로 로컬에서 집 구하기의 어려움인가. 그래도 우리는 공동체 생활의 터를 찾기 위해 영덕 구석구석 발품을 팔았고, 마침내 한옥들이 즐비한 마을에서 우리에게 꼭 맞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원구마을’



21세기 원시인들의 생활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어쩌면 우리는 이때 멈췄어야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시작한 이상 멈출 줄 모르는 사람들인 걸 어쩌나.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시속 4km의 속도로 걸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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