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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Oct 31. 2015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는 것은

살아라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라는 문장을 보았다. 마지막 하루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말 그래 본 적이 아직 없고 언제  그럴지 알 수가 없다. 생각해봤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이란 조건은 쉬운 게 아니었다. 오늘을 가장 진하게, 온전히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생각을 했다. 진하게 보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할까?


삶을 여행처럼


'삶을 여행처럼'이란 말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을 들었을 때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진짜 길치이다. 지금은 세상의 발전에 힘입은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 나를 안내해주지만 예전엔 턱도 없었다. 내가 어딨는지 파악을 못 할 때가 많았다. 도서정가제 이전에 한 출판사의 할인 이벤트를 찾아간 적이 있는데, 바로 근처에서 2시간 가까이 헤맨 적이 있다. 


나 같은 길치에게 처음 가는 장소는 모두 '여행'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처음 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익숙한 곳에 간다 해도 원래 가던 길이 아니라면 그 또한 여행과 같다. 처음 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옆 블록' 정도가 아닌 이상 내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게 되면 길치는 여행을 시작한다.


어릴 때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놀다 원래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간 적이 있다. 언덕을 올라가다 끝에 이르렀다. 언덕 아래에 펼쳐진 광경은 내겐 '신세계', '다른 세계'로 보였다. 미지의 세계였다. 모든 게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똑같은 동네인데도. 그때가 마침 해 질 무렵이라 온 세상이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새파랗게 물든 새로운 세계의 광경은 내게 아직도 생생하다. 여행지가 기억에 강렬히 남는 것처럼 그 날도 내게 아직도 강렬하다. 왜 그렇게 진하게 남을까?


김홍탁 크리에이터는 내게 말했다. '여행 갔을 때 시간이 엄청나게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느냐고' 처음엔 이해를 못 했다. 그 말은 이런 것이었다. 여행을 처음 하면 처음 보는 곳이기에 긴장하고 모든 것에 신경을 쓰게 된다고. 보이는 모든 것, 들리는 모든 것을 흡수하면서 지내면 평소보다 시간을 더 압축해서 쓰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시간 여행처럼


내겐 여행을 가서나 한국에서나 처음 보는 광경은 다 비슷해서 꼭 시간이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았다. '흡수'하는 것. 한국에서든 어디서든 처음 가는 곳에 가면 일어나는 일이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 귀에 들리는 모든 것, 처음 맡는 것 같은 냄새와 입에 맴도는 긴장감과 내 주위를 둘러싼 처음 느끼는 공간감들을 느끼게 된다. 말 그대로 오감이 열린다. 흡수하기 시작한다. 길치의 단점은 흡수해도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을 만한 정보로 해석이 안 된다는 것. 그러나 '흡수'하는 것 자체는 길을 찾는 능력과 맞바꾸어도 남는 장사일 만큼 중요한 능력이다. 흡수하는 만큼 진하게, 뇌리에 선명히 남는 것이다.


우리가 전문 여행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반복되는 일상을 산다. 이 일상의 반복에 '마지막'이란 단어를 붙여본다 해도 정말 그렇지 않은 이상 감흥이 쉽게 오지 않는다. 이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하면 진하게 보낼 수 있을까. 오늘 하루 전체를 흡수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나가서 돌아오는 그 과정 전체를 만끽하는 것이다. 문득 이 생각을 하면서 영화 <어바웃 타임>이 생각났다.


I just try to live every day as if I've deliberately come back to this one day to enjoy it, as if it was the full final day of my extraordinary, ordinary life.

난 그저 매일 오늘이 내가 이 날을 즐기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이 날이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온전히 진하고 즐겁게 매일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We'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 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우린 우리 인생의 하루하루를 항상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놀랍고도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뿐이다.

<어바웃 타임> 중


우리는 여행을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담아온다. 일상과 다른 시공간에서 우린 우리의 오감을 모두 활용한다. 오감을 활용해 하루를 흡수한다는 건 다른 말로 '만끽하며 산다는 것'이다.이렇게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여행 이야기를 한 이유는 '삶을 여행처럼' 이란 표현도 있지만 '삶은  여행이다'라는 말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삶이라는 여정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다 시간 여행 중이다. 다만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를 뿐.


여행하면서 우리는 반드시 꼭 한 가지 체감하는 게 있다. 여행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 태도가 달라진다는 걸 우리는 안다. 모든 걸 더 즐기려 하고 더 보려 하고 담아두려 한다. 평소보다 더 마지막 날에 마음을 쏟는다. 그때가 되면 느껴지는 게 있다. 이 순간이 곧 지나갈 것이고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걸.


살아라 오늘이 여행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이란 표현은 '오늘이 내 삶의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면' 이란 표현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같은 의미이지만, 표현을 다르게 하자 와 닿는 게 다르단 생각을 한다. 우리가 만약 삶을 여행 마지막 날처럼, 마지막 날 여행자로 삶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오늘이라는 '놀랍고도 멋진 여행을 만끽'할 것이다.


만끽하려 한다면 삶에 민감히 귀 기울이자. 다양한 기회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여행의 자리로 인도해줄 무언가가. 항상 가던 길이 아닌 안 가 본 길로 가보길 권한다. 새로운 느낌을 받을 것이다. 출근, 등굣길에 안 가본 방식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보라. 돌아오는 길에 느긋하게 다른 동네 쪽으로 가보라. 길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함을 누릴 때 소소한 여행길을 느낄 수 있다. 평소엔 일상을 만끽하면서 그리고 살다 보며 생기는 여러 기회 속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만끽해야 한다. 오늘이라는 여행의 오늘 자 코스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만날 사람, 내가 하고 싶은 일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것들을 하면서 소소한 다른 코스를 가보는 것이다. 때로는 소소한 일탈이 여행의 대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그 또한 우리가 떠나 볼 여행이 될 것이고. 이 여행길에 한 가지만 더하자.

그대가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 
날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 
이렇게 생각하라. 

'오늘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좋으니 
누군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고.

-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 니체


우리 삶엔 언제나 함께 여행하는 동행, 동반자가 있다.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이지만 때때론 모르는 사람과도 하기도 한다. 그들 중 누구라도 좋다. 하루에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기뻐할 만한 일을 하자. 사람은 누군가 기쁘게 할 때 자신도 기쁨을 느낀다. 내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만족을 추구할 때 오는 기쁨은 좀 더  오래가며 주변에도 전달된다고 한다. 우리가 같이 시간 여행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뻐할 일을 한다면 이 여행길이 전보단 제법 즐겁게 되지 않을까?


나와 너 함께 가며 함께 기뻐하며 흠뻑 만끽하는 여행길


나와, 나와 함께 가는 이 모두 기쁜 여행길이 된다면, 그런 하루가 된다면, 오늘 하루 충분히 만끽했다면 그래도 마지막 날처럼 오늘 잘 보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그렇게 흠뻑 만끽하는 여행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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