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해밀동 주택에서
나는 촬영 현장에서 어떤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있을까? 편집을 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져봤다. 사진을 촬영하기 전에 건축가의 이야기를 듣고, 현장 소장님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대화를 나누지만 그런 행동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사진을 찍는 일은 매번 다른 현장에서 색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결과물이 비슷해지는 현실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사진의 구도나 색감 그리고 결과물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2년 동안 건축 사진을 촬영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것이다. 장비를 바꾼다고 좋아지지 않고 누군가의 조언을 받는다고 크게 뛰어나지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이 과정을 지독하게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지만 눈에 보일 만큼의 변화를 당장 찾기 힘들다는 것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현실의 현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색다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건축가의 설계 의도보다는 건축주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내가 건축주라면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어떤 행동들을 할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렇게 고민해도 사진 결과물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사진 한 장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나는 그것을 콘텐츠라고 생각하며, 어쩌면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업이 정말 즐거운 이유는 시간 관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건축주와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 속을 내 마음대로 최소 하루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은 이 직업의 특권이고 가장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베네핏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의미 있는 공간은 내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해 주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그 묘한 짜릿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건축과 공간은 언제든 내 주변에서 유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건축 사진작가는 건축 공정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투입되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준공을 앞둔 건축물이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섣부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가장 깔끔한 상황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기분 좋은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그 아래 볕이 내리쬐는 순간을 만나면 오늘 하루 따뜻함을 장착할 수 있다. 성격 형성에도 도움이 되는 듯하네!
비록 하루지만 숫자로 풀어내면 24시간. 그 시간 중에서 현장의 모습을 관찰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약 10시간 정도가 된다. 내가 보는 시선이 건축주와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마치 내 건축물처럼 좋아하는 장면들을 하나둘씩 찾아가는 것이 매우 즐겁다. 아마 건축주도 입주 후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공간이나 장면을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 소파를 놓고, 여기에 티비를 놓고, 여기에 침대를 놓고. 마치 신혼부부가 된 것처럼 즐거운 상상에 잠겨본다.
이번 현장은 세종 해밀동에 위치한 주택이다. 아뜰리에KJ에서 설계했고, 하우스컬처에서 시공을 했다. 내가 이렇게 건축사와 시공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건축 또한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크레딧처럼, 새우깡을 누가 만들었는지 남겨놓은 것처럼. 이 두 회사가 없었다면 지금 내가 촬영하고 있는 이 현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 오늘 내가 했던 이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
이 어두운 우주에서 우리가 피사체를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빛은 태양이고 태양은 우리 모두의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로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태양의 존재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빛에 과하게 의존하게 되는데 최근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인데! 그림자를 따라가면 사진은 어떻게 변화할까? 최근 내가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고민이다. 문제는 사람들은 그림자를 보통 싫어한다는 것. 그래서 개인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현장에서 사진만 찍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쉬는 시간이라고 표현하는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다리는 시간이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도 말한다. 나 같은 I 성향인 사람들에게 참 적합하다. 조용히 기다리고 고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을 깊게 할 수 있게 해주는 훈련을 대신해 준다. 때때로 책도 읽는데, 그 책의 내용을 나의 생각으로 옮겨 적기도 한다. 결국 그 생각들이 사진으로 표현되고, 사진 하나를 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뿌리가 된다.
공간은 이제 미래로 나아간다. 그리고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어떤 모습이 될지 지켜볼 생각이다. 다행스럽게도 해밀동 현장은 우리 집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종종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촬영했던 현장들을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나이 듦에 따라 변하듯 건축물의 나이를 알아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하루 동안의 건축주가 되어본 입장에서.
세종 해밀동 주택
설계 _
ATELIER KJ (아뜰리에 KJ)
시공 _
HAUS CULTURE (하우스컬처)
사진 _
ARCHIPRESO (아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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