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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ma Apr 02. 2024

결혼하고 사랑이 변했다.

전 글에 제법 현자인척 부부싸움에 대해 떠들었지만

부끄럽게도 우리의 부부싸움은 전혀 점잖지 않았다.

주변에서

"그렇게 오래 만나고도 싸워?"

"그런 걸 모르고 만났어?"

"뭐가 그렇게 맨날 싸울 일이 많아?"

하도 싸워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밤중에도 고성을 지르며 싸우고

도로에서 화나서 차 세우고 싸우고

밥 먹다 식당에서 남들 다 쳐다보게 싸우고

데이트 갔다 먼저 한 명이 집에 가고

싸우다 자기 집 간다고 나가버리고

매우 심각하고 (내가 혐오하는) 개념 없고

안 해도 될 짓을 다 했다.


이렇게 징그럽게 싸우고 보니

우습게도 현재, 

남편도 직장에서 오은영 박사를 자초하여

동료들에게 부부싸움 훈수를 두고 있다.

나는 인터넷에 잘난 척 글이나 쓰고 말이다.


결혼 전 남편과 왜 결혼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엄청 싸우고 서로가 나쁜 점을 발견해도

극복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더 좋아질 거 같아서였다.


그렇게 박 터지게 싸우고 그럼에도,

쿨타임을 갖고 우린 다시 대화를 했다.

(물론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시 얘기하다 열받아서 한쪽이 나가기도 했다.

우리의 싸움 끝이 늘 누군가의 사과,

아름답고 성숙한 화해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던 것은,

아무래도 "사랑"이었던 거 같다.

윽 징그러... 부부 사이에 웬 사랑?


확실히 결혼하고 사랑이 변했다.

나를 예쁘게 봐주던 애정 어린 시선은 흐리멍덩하고

나에게 시간을 쏟고 데이트해 주던 열정도 없어 보인다.

처음엔 그 변화가 무척 서운했다.


결국 가족이 되는 건가? 

우리도 정으로 사는 건가?


그런데 변함 속에서 사랑을 느껴보니

이것도 이것대로 행복했다.


밤새고 들어온 남편은 넝마가 되어

흐물텅한데 당직으로 나오는 야식비로

꼭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 온다.

그 봉투를 두고 들어가서 본인은 잔다.

아침에 나는 그것을 발견하면 행복하다.


나와 부부싸움을 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내가 다쳐서 소리를 지르면 달려온다.

해결해 주고 다시 냉전모드(말안함)


본인이 밤새고 근무하고 와도

내가 휴무라 놀러 가고 싶다고 하면

졸면서도 함께 놀러 가려고 노력한다.


자기 친구들이랑 해외 놀러 가서

술 먹느라 평소에 연락 잘 안 되어도

내가 좋아하는 가게에 꼭 들러서

뭘 사가면 좋은지 꼬박꼬박 묻는다.


연애와 결혼의 다른 점은,

연애 때는 서로 쉬는 날

가장 좋아하는걸, 먹고 싶은걸, 하고 싶은걸

골라서 좋은 것만 했다면

결혼은 매일이고 일상이라

좋고 나쁜 모든 것을 공유하고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나는 이제 이 사람의 일상이고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구나.

원래 살던 대로 돌아가고 싶은 거구나.


그런데 그 루틴 속에

나름대로 나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구나

뜨겁지 않더라도 온기가 남아있구나


늘 좋은 것만 공유하던 좋던 우리의

연애 때가 그립지 않냐 하면

물론 그립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좋은 것만 있지 않으니까

나쁘고 싫고 틀리고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삶이 되어 

하루를, 일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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