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고슴도치맘...?
임신 후 생각보다 나는 행복하다.
임신체질인가 보지 팔자가 좋나 보지
할 수 있는데 객관적으로 지금 현실을 말하자면
출퇴근 왕복 2시간 이상(대중교통 환승)
남편 수술 후 3주 동안 입원 중
집안일도 당연히 내가 다 함
불편해서 임신 후 새벽마다 깸(숙면불가)
저혈압이 심해서 기절증세 있음
매주 새로운 임신증상 나옴(복불복)
군데군데 붉은 튼살 올라오기 시작
그런데도 행복감을 느끼는 게 스스로도 신기하다.
빗길 운전을 무서워했는데
누군가 같이 있다 생각하니 든든하고
남편이 오랫동안 집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도
아기랑 둘이 있다 생각하니 의지가 되고
뭔가 작은 나만의 비밀친구(?)처럼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해 주는
작은 존재가 있어서 이상하게도 위안이 된다.
오히려 아기가 없었을 때 텅 비어있었다는 느낌이다.
뱃속도 묵직하고 느릿해지고 몸은 여러 가지로 힘든데
막상 낳고 나면 나는 꽤나 허전할 것 같다.
(물론 30주 넘어가면 얼른 나와라 할 수도 있다.)
중학교 무렵 생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매달 무시무시한 생리통에 시달렸다.
'와 일생에 한 번 할지 안 할지 모르는 임신을 위해
폐경까지 이 짓을 매달 반복해야 한다니?'
그때의 아득함과 절망감이 매우 컸다.
나는 '기왕이면'이라는 생각을 좋아한다.
기왕 태어난 김에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고 싶다.
임신도 그중 하나였다.
물론 남자였거나 임신 자체가 어려운 몸이라면
애초에 그런 생각을 안 했겠지만
기왕 여자로 태어났고 임신이 가능하니
한 번쯤 내 몸에서 다른 생명을 키워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남들의 시커먼 초음파 사진을 볼 때마다
'뭔가 기묘하고 무섭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내 아기의 초음파를 직접 보니
선명한 등뼈 하나하나 나비모양의 뇌 모양조차
너무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뱃살이 점점 쳐지며 둥그렇게 커지고 배도 트는데
그 또한 난 여자로서 끝났다. 절망적이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오 우리 아기 건강히 내가 잘 키워내나 보다.
이런 자랑스러운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이 기특하다.
나는 나름 자기 관리를 되게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다.
아기를 낳지 않고 평생 탱탱하고 날씬한 거보다
아기를 키우느라 내 몸이 망가져도
나름 의미 있는 삶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신 전 아기를 약간 기생생물(?) 정도로 생각했다.
아기를 갖는 순간 모든 영양소를 아기가 가져가고
산모는 약해지고 늙고, 영양도 불충분해진다.
내 피와 뼈와 살을 내어준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계속 아기를 낳는 건 내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어도 아기를 낳다가 죽을 수도 있다.
때문에 산모는 목숨을 걸고 출산을 한다.
내 작은 골반뼈를 벌려가며 인간의 머리통이 나온다는 게 생각만으로 벌써 아프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도
이젠 다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얼굴조차 모르는 존재에 무궁한 사랑에 빠져버렸다.
지금 나는 확실히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겼다.
원래 엄청 부정적이고, 걱정이 많은 내가
인생에서 제일 긍정적인 시기 같다.
평소 모성이 폭발하거나 다정한 성격 같지도 않다.
너 T야, 냉정해, 단호해, 무덤덤해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도 참 신기하다.
나중에 태어나고서
너 왜 엄마 말을 안 들어!
너 누굴 닮아서 이러니!
궁디 팡팡하고 하소연할지 모르지만
일단 뱃속에 있었을 때 이렇게 너를 사랑했단다
라고 잊지 말아라 내 기억 저장용으로 남겨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