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너와 내가
와인으로 붉어진 양쪽 볼 위로 미소를 머금으며 현관문을 열고 숙소로 들어왔어. 알딸딸한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이 순간이 아쉬운 거야. 창문으로 기울어가는 달을 바라보며 파리의 새벽을 조금 더 만끽해보려고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셨어. 그리고 너와의 특별한 순간 두 번째의 모습과 지금 시간이 어우러져서 생각이 나더라. 참 재밌는 게 새벽이라는 시간대에는 각자가 떠오르는 "시간"이 있어. 예를 들어 '익숙한 새벽 세시' 라거나 ' 새벽 두 시', '새벽 네시' 등 각자에게 중요시되는 혹은 특별한 시간이 존재해. 나에게 새벽은 다른 시간대보다 시리며 차가운 순간이라 그런지 따듯한 존재를 떠올리게 되고 따듯한 무언가와 연관된 시간을 떠올려. 그런 따스함과 연관된 나의 새벽은 '새벽 다섯 시 반'이야. 이 시간에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느낀 두 번째 순간이 있었어.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너의 모습을 바라볼 때, 새벽에 동트는 순간 푸르스름한 빛으로 우리 주변, 방 전체가 푸르스름해졌을 때, 아침잠이 적은 나는 가끔 눈이 떠져. 잠깐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옆으로 돌아 누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곤 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나하나 찾아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지. 매끌거리는 이마와 정갈한 눈썹, 콧날이 참 이쁘고 콕콕 찌르고 싶은 볼과 꽉 다문 입술. 이렇게 너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봐. 그러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한 너가 매일매일 보고 싶고, 주변에 무섭고 나쁜 환경을 벗어나 이 곳에서 만큼은 내 곁에서 만큼은 행복하고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안전한 삶을 혹은 지금처럼 푸근한 잠을 잘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어. 모든 힘듬과 고난 곁에는 내가 있어 항상 나에게 기댈 수 있도록 혹은 그런 나쁜 것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 있도록 함께 사랑하고 싶더라. 적당히 푸르스름한 이 방안이 내가 만든 바닷속이고 그 깊숙한 곳에 너와 내가 함께 들어가 사는 거지. '내가 조금 더 깊어져야지. 내가 조금 더 넓어져야지. 어떤 풍파가 와도 미동도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더 큰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다짐을 했어. 너와 같이 있지 않는 날에는 너의 안부와 상태가 궁금해져. 손발이 차갑게 잠잔 것은 아닌지, 몸에 힘이 없어 보였는데 괜찮은지, 건조하게 잠들어 목이 칼칼하지는 않은지, 늦게 잠들어 피로가 덜 풀리진 않았는지, 긴 밤에 악몽을 꿔서 두렵고 무섭지는 않았는지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지... 이렇게 새박 다섯시 반은 나에게는 가장 차가운 순간속에서 가장 따듯한 너를 마주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은 짙어지고 꿈속에선 마주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