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전날 저녁, 나는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어두운 길 위에서 땀과 눈물에 범벅이 돼서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은 것 같았지만 ‘신기한 경험’ 덕에 무사히 도착했다.
내가 머문 숙소는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였다.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만들어 온전히 1실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꼭 방콕에 아로마 마사지를 하는 곳처럼 꾸며 놓았다.(방콕에 가본 적은 없지만...) 싱글 침대가 꽉 찰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전날 30km 가까이 걸었더니 두들겨 맞은 것처럼 몸이 아팠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다소곳이 누워 고개를 돌리니 어제저녁에 빨아 널어놓은 청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이어서 그런지 청바지는 밤사이 아주 잘 말라 있었다.
나는 칭찬에 익숙한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며 내가 밥 먹을 때마다 트집을 잡아 혼을 냈고, 꼭 한 번씩 눈물을 흘리고 식사를 끝냈다. 엄마의 막내 남동생 삼촌은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크다며 만날 때마다 남들과 나를 비교했다. 그리고 ‘실패자’, ‘패배자’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내가 고개를 떨구고 울면 나를 꺾었다고 생각하고 그제야 멈췄다. 집안 어른들은 나를 앉혀 놓고 뱁새눈이라며 외모를 평가하고 성형 견적을 냈다. 또 ‘느그 엄마는!!!’하고 말을 시작해 엄마를 죄인 취급하고 나도 같이 싸잡아 공격해댔다. 이 가시밭에서 엄마는 유일하게 온순한 분이셨다. 하지만 내가 ‘무뚝뚝한 아빠’라고 무를 정도로 표현이 서툴러 ‘잘했다.’는 물론이고 ‘못 했다.’ 고도 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칭찬을 하면 움츠러 들었다. ‘뭐지? 내가 뭐 잘못했나?’, ‘왜 갑자기 좋은 말을 하지? 다른 속셈이 있나? ’하고 생각하고 의심을 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다독이는 건 더더욱 할 줄 몰랐다. 이런 내가 전날 저녁에 생각지 못한 행동을 했다.
여전히 숙소에 도착하지 못하고 지칠 대로 지쳐 눈물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던 그때, 아무도 없는 어두운 길 위에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악!!!! 나는 할 수 있다!”
뜬금없는 셀프 응원에 당황해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외쳤다.
“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 난 최고야! 그동안 잘해왔잖아! 해낼 수 있어!!!”
처음이었다. 내가 나를 칭찬하다니... 그것도 큰소리로, 길 위에서?!?!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스러워 눈이 동그래졌는데 입은 멈추지 않고 응원의 말을 또 한가득 뱉어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들에도 신기하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참았던 것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놀라운 일은 계속되었다.
그 몇 마디 말에 다리에 힘이 생기더니 마치 누군가 뒤에서 밀어주는 것처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디선가 그 힘이 계속 솟아나 입도 발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 이상하고 신기한 힘 덕분에 애타게 찾던 숙소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숙소는 늦은 저녁에도 투숙객들이 잘 찾을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미니 전구를 휘감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목적지가 눈 앞에 보이자 마라톤 선수가 결승점을 향해 막판 스퍼트(spurt)를 올리 듯 빠르고 또 신중하게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친구에게 자주 꾸중을 들었다. 칭찬을 해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자신의 장점, 잘하는 것조차 인정하지 못한다고. 그 친구는 만날 때마다 나에게 ‘나는 대단하다!’를 외치도록 시켰다. 그게 길 위일지라도....
미안, 그때 너 많이 욕했어. 근데 나 이제 그거 잘해.
마법의 주문 같았다. 사실 그 주문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사용하기를 꺼렸다. 오글거리는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잘해? 잘하고 있어? 아니, 아니야...’하고 나에게 너무 과분한 주문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다 이렇게 자신에게 모진 사람이 됐을까. 삶에 거칠고 얄궂은 것 투성인데 내가 나에게만이라도 다정하지 좀... ‘이제라도 나를 돌보고 또 자주 다독이자.’라고 새삼 다시 생각하면서 빨래를 하고 잠들었다.
전날의 교훈으로 배터리를 100% 꽉꽉 채우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데 외국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쭉 뻗은 2차선 도로와 그 양옆에 단층으로 된 작은 단독주택 몇 채가 듬성듬성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에는 바다가 보였다.
풍경에 시선이 뺏겨 넋을 놓고 걷는데 조금 유치한 토끼 그림이 보였다. 그림 바로 옆에는 ‘하우스 레시피’라고 심플한 간판이 걸려있었고, 도로록하고 열리는 칠 벗겨진 낡은 미닫이문이 있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게였지만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안에서 ‘애옹 애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토실한 고양이가 강아지 목걸이를 하고 서 있었다.
동물친구들이면 사족을 못 써서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주방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셨다. 목줄을 맨 고양이가 지키고 있는 이 가게는 알고 보니 당근케이크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였다. 마침 숙소에서 주는 조식을 먹지 않고 나와 아침으로 먹을 당근케이크를 한 조각 샀다.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는 빵순이라 사자마자 한입 베어 물었는데 금방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참... 행복 별거 없는데... 그런데 먹어 금방 없어지니 또 금방 슬퍼진단 말이지...’하고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무릎 뒤쪽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인대가 빳빳하게 당기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걸으면 인대가 ‘똑’하고 끊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몇 걸음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절뚝절뚝 걸어가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무릎과 그 뒤쪽을 열심히 주물렀다. 하지만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급하게 인근 약국을 검색해봤지만 걸어서 한 시간은 더 가야 했다. 또다시 진퇴양난. 걷는 것 밖에 할 수 없는데 그마저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또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마음은 좌절을 향해 내리막을 달리고 있는데 앞에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그리고 앞문이 열리더니 기사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 타요? 여기 배차 시간 길어요.”
여자 기사님이었다. 속으로 ‘이런 행운이!’하고 외쳤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다. 기사님은 내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10분 정도 가니 가게가 많은 조금 번화한 곳이 나와 벨을 누르고 내렸다. 그리고 바로 약국을 찾아가 증상을 설명하고 근육통 약과 스타킹처럼 신을 수 있는 무릎 아대를 샀다. 약국 안 구석 의자에 앉아 바지를 걷어 올리고 아대를 착용하려는데, 아킬레스건이 신발에 쓸려 피가 나고 있는 걸 발견했다. 허리를 숙여 상처를 자세히 보려 하는데 이번엔 어깨가 욱신 거렸다. 옷을 살짝 들춰 어깨를 살피니 가방끈 모양으로 멍이 들어 있었다. 하루 만에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파스와 뒤꿈치에 붙일 밴드를 추가로 사서 응급처치를 했다. 구석에 앉아 분주하게 붙이고 신고를 하고 있는데 약사님이 말을 걸었다.
“올레길 걷고 있어요?”
“네?”
“그럼 가다가 여기도 들리고 저기, 거기 또 그쪽에 그거는 꼭 봐야 해요.”
내 행색을 보고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라고 생각하고, 제주도의 여행 필수 코스를 추천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행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웃음기만 했다.
어설프게 한 응급처치였지만 훨씬 나았다. 하지만 어깨의 통증은 당장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별거 들지도 않은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가방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 버릴 것이 있는지 펼쳐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버릴 것은 보이지 않았다.
꺼낸 물건을 다시 차곡차곡 넣고 가방을 이리저리 들어 보는데 그때 책가방을 멘 초등학생 2-3명이 내 옆으로 신나게 뛰어갔다. 나는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메고 온 가방은 엄마가 주신 가방이었다. 엄마는 옷가게를 오래 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멋을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무뚝뚝한 엄마가 나에게 하는 유일한 잔소리가 ‘멋 좀 내고 다녀라.’였다. 그래서 주시는 옷이나 가방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특이한 만큼 또 불편했고, 또 쓸데없이 무거웠다. 불편함에 툴툴거리면 엄마는 ‘불편한 게 멋있는 거다.’ 라거 이상한 명언(?)을 말하시곤 했다. 그래서 멋스럽게 가방을 메려면 끈을 엉덩이까지 길게 늘여 메야한다는 게 엄마의 주장이다. 내가 메고 온 가방도 그랬다. 그게 문제였다.
끈을 길게 하니 가방은 무게 중심이 뒤쪽으로 몰렸다. 그리고 그것이 어깨와 허리에 무리를 주고 있었다. 나는 내 등에 딱 붙을 수 있게 가방끈 길이를 조절하고 다시 메 보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신기할 정도로 가방이 가볍게 느껴졌다.
나에게 맞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도는 돼야 해.’하고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맞추는데 더 익숙하다. 그리고 그것을 ‘평균’이라고 의심 없이 믿고 따른다. 거기에도 미치지 못하면 뒤쳐지거나, 촌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도 늘 그랬다.
하지만 생긴 것도 살아온 배경도 모두 다른데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나를 욱여넣어고 맞춰도 괜찮은 건가? XL를 입는 사람한테 S 바지를 줘도 괜찮은 거냐고!!! 아니, 상처만 날 뿐이다. 몸도 마음도.
과장이 심했다. 하지만 남의 틀에 어떻게 들어갈지 각(?)을 재는 것보다 나의 틀을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작은 경험을 통해서도 금방 알 수 있다.
‘촌스러워도 어때? 남들 다하는 거 좀 못해도 어때? 대신 남들이 못하고 못 본걸 내가 볼 수 있잖아?!’
나는 왜 약사님이 해준 말이 귀에 안 들어왔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더라.’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강압적인 가족들 덕분에 나는 온순한 청개구리가 되었는데, 청개구리일 때가 진짜 나였다. 그리고 내가 나일 때 가장 괜찮았다. 약사님 얘기에 괜히 불이 붙었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또 흔하지 않은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고 있는 청개구리가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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