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살아 돌아온 온순한 청개구리, 뭘 해도 남들이 하지 않는 ‘나만의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불이 붙었다. 일반적인 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니 이왕이면 도전적인 걸 해보자는 생각에 계속 걷기로 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규칙 몇 가지를 세웠다.
1. 두 다리로 끝까지 걸어보자.
2. 무리하지 말고 나부터 지키자.
3.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하자.
4. 정해진 길 말고 내 ‘멋’대로 걷자.
5. 의문과 생각을 정리하고 매일 기록하자.
제한을 위한 규칙이 아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규칙으로 고민해서 정했다. 다섯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규칙은 마지막 규칙이었다. 당장 상처를 마주 볼 용기가 없는 내가 해야 하는 준비운동 같은 것이었다. 지난 일을 다시 돌아보며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이 들었지?’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준비운동이니까.
말이 준비운동이지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엉켜버린 생각과 감정을 분리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어렵지만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기회 같았다. 어쩌면 이 모든 건 그러기 위해 시작된 사건일지도 모른다.
해안가로, 골목으로, 도로 갓길로 정해진 경로 없이 걷다 보니 조금씩 걷기 달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길을 찾아가는 스킬도 늘고 자잘한 팁도 알게 되었다. 알게 된 팁 중 가장 꿀팁은 제주도 버스정류장 *키오스크에는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USB 단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배터리가 없어 위급해지는 상황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키오스크 : 터치스크린 방식의 정보전달 무인단말기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버스정류장은 나처럼 걷는 여행자에게 최고의 휴식처였다.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몇십 분이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공짜 그늘에 충전도 가능하니 손에 커피까지 들고 있으면 여느 카페가 부럽지 않았다. 그날도 3시간쯤 걸으니 힘도 들고 배터리도 절반밖에 남지 않아 정류장을 찾아 앉았다. 그리고 키오스크에 충전기를 꽂고 쉬고 있는데 묵직한 검은 봉지를 든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202번 오수 꽈?”
처음엔 못 알아 들었지만 번호 얘기에 대충 눈치를 채고 대답을 했다.
“음... 네, 5분 뒤면 온데요.”
할머니는 걸어오시느라 숨이 가쁘셨는지 크게 한번 숨을 내쉬고는 내 옆에 앉아 다시 말을 거셨다.
“학생은 몇 번 타맨?”
낯선 사람과 말을 잘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틀 만에 하는 제대로 된 대화여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반갑고 설레었다.
“저는 걷고 있어요.”
“벗 없이 혼자?”
“네, 혼자요.”
“무사?”
무사? 이번엔 정말 무슨 말인지 몰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왜?’라고 다시 물어주셨다.
“머리가 복잡해서요. 뻔하죠 뭐, 회사나 가족 때문에... 버거워서 생각 좀 정리하려고 혼자 걷고 있어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낯선 사람에게 내 얘기를 잘 안 하는데, 어째서 내 얘기가 줄줄 나왔다.
“아구... 제주로 시집와~ 제주, 종거 (좋은 거) 많아.”
나는 그냥 힘없이 웃었다. 할머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같이 씁쓸하게 웃으셨다.
5분이 지나고 할머니가 기다리는 버스가 보였다. 할머니는 검은 봉지에 손을 넣더니 잡히는 데로 귤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경해도(그래도) 홀로는 뭘 해도 안 돼. 밀어주고 당겨주는 벗이든 신랑이든 있어야지. 나중에 제주로 시집와.”
자꾸 시집 얘기를 하셔서 쓴웃음이 났지만, 누구든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그냥 끄덕였다. 할머니는 손녀를 걱정하듯 한번 내 손을 꼭 잡고 버스와 함께 떠나셨다.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는데 가는 길에 온통 공장과 컨테이너 창고들뿐이었다. 무채색 조립식 건물 때문인지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삭막하게 느껴졌다. 여기저기 위험표시 띠도 둘러져 있었는데 괜히 불안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까 본 ‘위험’ 표시가 어쩌면 이번 숙소에 대한 경고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 번째 숙소는 최악이었다. 2층으로 된 큰 가정집이었는데 1층엔 거실과 부엌 그리고 주인 부부가 머무는 방이 있었다. 그리고 내부에 있는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면 왼쪽으로는 남자 도미토리가 오른쪽은 여자 도미토리가 있었다. 분리된 구조는 좋았지만 숙소의 위생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창틀에는 거미줄과 죽은 벌레가 체크아웃을 하지 못하고 장기투숙을 하고 있었고 공용공간인 부엌도 주인 가족이 먹고 치우지 않은 설거지로 가득해 그날 저녁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난감했던 것은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큰 주인아저씨였다.
“여기 왔으면 돌고래 봐야지 돌고래! 돌고래 봤어? 여기 앞에 나가면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내가 여기에 집을 지은 거야. 내가 새벽에 깨워줄까? 차로 데려다줄 수 있어. 돌고래 직접 보면 진~짜 멋있어. 돌고래 한 번도 본 적 없지? 아, 근데 어디서 왔다고 했지? 서울? 우리 딸이 이번에 서울로 대학을 가서 서울에 있다가 명절이라고 오늘 왔어!”
돌고래… 참 좋아했는데 이제는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주인아주머니가 여자 방을 안내해 주신다고 해서 주인아저씨와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낼 수 있었다.
아주머니가 안내해준 도미토리는 8인실이었는데,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투숙객은 나밖에 없었다. 처음엔 혼자 편하게 쓸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날 저녁 ‘제발, 누구라도 와줘요…’하고 간절하게 빌었다.
25km를 걷고 피곤함에 일찍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1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아저씨가 지인을 불러 술판을 벌린 것이었다. 술이 들어가니 아저씨 목소리는 한층 더 커져 2층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목소리는 나를 향한 게 아닌데 ‘남자의 큰 목소리’라는 점 하나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계속 목소리의 곡선에 따라 흠칫 흠칫 놀라는 것이 왠지 그날 밤은 그림자를 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안함에 침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외국인 여자 두 명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처음 보는 두 사람을 보고 크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아, 혹시 쉬고 있었어? 우리가 조금 부스럭거릴 거 같은데 괜찮아? 최대한 방해하지 않을게”
내 한숨 소리를 들었는지 한 명이 굉장히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말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하고 대답했다. 솔직히 뒤에 ‘너희가 있어서 다행이야. 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어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쑥스러워 말하지 못했다.
하루 같이 방을 쓰게 될 두 사람은 사이클 복장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사이클 복장을 보고 땀에 젖은 무릎 아대를 빨지 않은 게 생각이 났다. 나는 다시 벌떡 일어나 아대를 빨아와 침대 난간에 널었다. 그런 나를 보고 아까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던 한 명이 다시 말을 걸었다.
“가능하다면 더 긴 걸로 사. 그건 너무 짧아. 긴 아대가 무릎 관절을 더 잘 잡아주거든 그럼 확실히 충격이 덜 수 있어.”
"충격? 이건 그냥 통증을 덜 느끼게 해주는 정도 아니야?"
"아대는 관절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잡아주는 역할을 해. 보조적이지만 꽤 효과적이지. 관절을 잘 사용해야 충격을 덜 수 있거든. 생각해봐 고양이처럼!(웃음)"
외국인 친구는 고양이가 높은데에서 점프해 착지하는 흉내를 내었다. 그 친절한 설명을 보고 나니 이제 이해가 되었다.
걸음걸이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어서 가끔 발을 디딜 때마다 ‘쿵’ 소리가 나곤 했는데 아대를 한 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대는 나도 모르게 ‘적당히’ 굽히고 피는 것 도와주고 충격을 줄여주고 있었다.
‘고양이 같이...’ 중얼거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마음에도 '관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쿠션' 그 말은 참 많이 들어봤다. 롤러코스터를 자주 타는 내 마음에 필요한 것을 하나 고르라면 마음의 쿠션이 필요하다고 종종 말했다. 떨어지는 내 감정과 눈물을 받아주는 그것. 그리고 그 '마음의 쿠션'은 대체로 친구 혹은 동료들이 되어주었다. 기꺼이. (말로 다 표현이 안 될 만큼 고마운 사람들) 하지만 그 쿠션(누군가)에게 뛰어들어 하소연을 하고 나면 또 어리광을 부렸다는 생각에 미안함과 자괴감에 괴로워하곤 했다. 또 한바탕 쏟아내고 돌아서서 집에 오면 다시 혼자라는 고독감에 다시 괴로워했다. '아니, 그래서 나라는 녀석을 어쩌고 싶은 거냔 말인가...' 이런 고민으로 또 땅굴을 파고 있는 나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쿠션보다 관절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겠지만 기대기만 해서 나와 상대에게 미안함이 계속 남는다면, 떨어지는 마음에 무게를 버티고 완충 역할을 해주는 것. 또 설령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부드럽게 착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것. 마음의 관절. 갑자기 날아든 번뜩이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 하루를 정리하면서 나만의 답을 적었다. ‘내 마음엔 지금 관절이 필요하다. 기왕이면 젊고 싱싱한 관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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