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차
너, 내가 죽어도 끝까지 쫓아다닐 거야.
그게 아저씨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 엄마는 아저씨의 진면을 제대로 보게 되었고 빠르게 사업관계를 정리했다. 아저씨가 그렇게 노래를 하던 내 애인, 부인의 관계는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니. 길었던 싸움이었지만 나도 더 이상 아저씨를 보지 않아도 돼서 날아갈 듯 기뻤다. 그리고 몇 년뒤, 아저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심장마비라고 했다. 도박을 하고 집으로 가던 중 길에서 급사했다고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 엄마에게 전해주었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지만 솔직히…‘그 다운 죽음이다.’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몰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진심이었던 걸까? 어느 날부턴가가 의문의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이라 단순 한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와 실랑이를 벌인 그날 저녁부터는 ‘그 시선’이 구체적인 형태 ‘그림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심리적인 문제일 것이다. 불안이 쩌들어서 보이는 신기루 같은 것일 거다. 떨쳐 내지 못하는 과거에, 트라우마에, 삶의 절반이 고달팠어서, 그것에 익숙해져 그런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라도 우울이나 슬픔 없이 평온하게 지나가면 너무 생경해 서둘러 우울함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또 문득 행복한 감정이 들면 그다음엔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봐 불안해했다. 나는 그런 삶에 익숙해져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습관’이 생겨버린 것 같았다.
하루에 겪어야 하는 불행의 총량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다 불행을 겪지 못하면 다른 날 배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데일리 폭력이 한 몫했다.
걷고 또 아픈데도 계속 걸었던 건 어떻게든 나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걸으면서 몸이 아프면 마음이 편했다. 치사하지만 육체에 고통을 주고 마음의 불안을 덜려고 했다. ‘아! 오늘은 힘들 만큼 힘들었다!’ 이런 식으로.
하지만 예상치 못한 성과를 얻었다. 나를 토닥이는 법도 알게 됐다. 길을 헤매다가 지칠 대로 지쳐 주저앉았는데 거기서 돈을 주운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이제 행복해져도 괜찮을까? 그걸 기대해도 괜찮을까? 이만한 고행을 격었으니 이제 행복해지는 걸 허락해 주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난 무교이다.
새벽부터 걸었더니 배가 많이 고팠다. 그동안은 사람이 많은 곳이 싫어 편의점 샌드위치로 대충 끼니를 때웠는데 처음으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명절 전날이라 문을 연 곳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재래시장은 명절 장사를 하고 있어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시장 안은 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분식집도 반찬가게도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기존에 하던 장사는 멈추고 전을 부쳐 팔고 있었다. 난감했다. 기껏 찾아들어왔는데 밥 한 끼 사 먹을 데가 이곳에도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김밥을 파는 가게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그 김밥집도 전을 부처 파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냥 갈까 싶었지만 흑돼지 김밥, 성게 김밥을 본 이상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김밥 되나요?”
“되는데 포장만 되고 먹고 가는 건 안돼요. 전 때문에 먹을 자리가 없어~”
아주머니는 내 쪽을 보지도 않고 맨손으로 전을 뒤집으며 대답했다. 시장을 두 바퀴 돌고 겨우 찾은 곳이라 나는 더 망설이지 않고 성게 김밥 하나를 포장해 달라고 했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허리를 펴고 내쪽을 봤다. 그리고 나를 잠깐 훑어보곤...
“... 포장해 가면 먹을 덴 있고?”
“바닷가 근처 아무 데나 가서 먹으려고요.”
“안이 좀 정신없는데 그래도 괜찮으면 들어와요. 내가 자리 만들어볼게.”
사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먹고 싶어서 포장하는 쪽이 더 좋았지만 아주머니가 이미 식탁을 치우기 시작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테이블에 채반에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는 전들로 가득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마련해준 구석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천장에 닿을 듯 달려 있는 티비에서 시끌시끌하게 추석 특집 방송을 하는 것을 보면서 김밥을 기다렸다. 5분도 되지 않아 아주머니가 김밥을 만들어 내 앞에 놔주셨다. 처음 보는 김밥이었다. 계란 지단엔 땅콩이 들어가 있었고, 김밥 한알 한 알에 성게가 정성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그 모양만 봐도 맛있을게 분명해 얼른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는데... 넣자마자 큰소리로 ‘욱’을 외칠 뻔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성게가 너무 비려 비린 맛 외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해산물을 먹을 줄 몰라서 그런가?’라고 하기엔 바다촌에서 자라 먹은 성게 몸을 채우고도 넘칠 정도로 바다 맛을 본 사람이었다. 나는 입안을 가득 메운 비린 맛을 없애려고 같이 준 장아찌를 또 얼른 입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번엔 쓰고 짜고 입안에서 난리가 났다. 처음엔 양파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양하’라는 생강과 채소였다. 제주도에서 먹는 제대로 된 첫끼였는데 엉망이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 신경 써 자리까지 만들어주신 아주머니의 배려에 나는 모든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장아찌까지.
조금 힘겹게 먹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께서 귤 3개를 손에 쥐어 주셨다. 나는 귤을 받아 들고 맛있게 먹었다며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었다.
다음 숙소는 산방산 아래에 있었는 숙소였다. 이쯤 되니 제주도 숙소 투어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숙소는 찾아가기가 비교적 쉬웠다. 산방산을 보며 그쪽으로만 걸으니 지도를 보지 않고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이전 숙소가 최악이었어서 이번 숙소는 아주 신중하게 골랐다. 그렇게 고른 숙소는 산방산 아래에 2층짜리 전원주택으로 그림 같이 서 있었다. 그리고 4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다시 사이렌이 울려댔다. ‘어쩌지?’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 커다란 골드 레트리버 영실이가 꼬리를 살랑이며 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 아니던가. 영실이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를 조금 낮출 수 있었다.
“지금 게스트가 손님 한 명이예요. 명절이라… 1층은 남자가 2층은 여자가 쓰는데 나를 포함해 남자가 2층에 올라가는 일은 절대 없으니 안심해요. 혹시나 걱정할까 봐 이것 먼저 알려드려요. 그래도 불안하면 문을 잠그고 자도록 해요. 전혀 불쾌하게 생각 안 하니. 아! 영실이가 여자니까 완전 혼자는 아니네요. (웃음)”
아저씨는 굉장히 정중하게 말해. 또 내가 걱정할 까 봐 ‘NO 남자, ONLY 여자만!’이라고 적힌 칠판을 가리키며 여러 번 강조했다. 덕분에 나는 마음 편히 걸으며 흘린 땀들을 편하게 씻어내고 쉴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산방산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관광지라 그런지 가는 길에 기념 식품을 파는 작은 가게가 많았다. 초콜릿부터 과자, 손수건 등등 많았는데 ‘상술에 쉬이 놀아나지 않겠노라…’ 하면서 최대한 외면하고 걸었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학생~ 뭐 안 사도 돼~ 와서 이 유산균 먹고 가. 정말 안 사도 돼. 이모가 정말 심심해서 그래. ”
‘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멈출 수가 없는데....’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이미 아주머니 손에 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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