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으로 가정을 지키려 했다는 아버지 (후편)
아버지는 나를 싫어하셨다. 자식을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냐고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나를 싫어하셨다.
"집안 살림 더러워서 어디 쓰겠냐?"
"더걸더걸해서는 이게 밥이야? 돌이야?! 지금 시위하는 거야?!"
"머리는 귀신 꼴을 해서는... 가서 빡빡 밀고 와!"
엄마가 집을 나가고 가사노동의 대직자는 내가 되었다. 14살이 하는 집안일이 완벽하진 않았겠지만 열심히 했음에도 늘 욕을 먹었다. 흠잡을 데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뭐라고 한 마디씩 했고, 집안일뿐만 아니라 내 걸음걸이, 표정, 대답을 할 때 말꼬리를 내리는지 올리는지 까지도 트집을 잡았다.
급식비, 학원비는 못 받은 지 오래였고, 미용을 하거나 생리대를 살 돈조차 주지 않아 그동안 모아둔 돈이나 엄마가 몰래 주고 간 돈을 쪼게 썼다. 아버지는 당시 나의 유일한 보호자였음에도 내가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 번 위기의 순간에 놓이게 했다.
하루는 등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아버지는 술에 떡이 돼서 곯아떨어져 있어 옆방에서 내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내가 연락도 없이 등교를 안 하자 걱정이 된 담임 선생님은 아버지께 전화를 했고, 20여 통의 부재 전화 끝에 아버지는 겨우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유일하게 내 사정을 알고 있던 담임 선생님은 행여 무슨 일이 생겼을까 싶어 불안에 발을 동동 구르며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고 하셨다. 선생님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씩씩거리며 내 방으로 와서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니 담임이 나한테까지 전화 오게 만들면 어떡해!!”
그리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가서 잠에 들었다. 병원은커녕 약조차 사주지 않았다. 나는 고열에 기진맥진한 와중에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존재일까?’
‘나를 딸이라고 생각은 할까?’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도대체 왜...’
열대야에 창문을 살짝 열어 놓고 잠든 날 밤, 그 창문 틈 사이로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놀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되지 않아 무서워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서로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아버지는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사이 내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대로 죽는 건가?’하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아버지는 5분 정도 그렇게 서 있다가 집에 들어와서 얌전히 잠에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한고비 잘 남겼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또 나를 내려다봤다. 이번엔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내 머리맡에서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또 자는 척을 했다. 일어나서 ‘도대체 왜 그러시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느껴지는 아버지의 빨갛고 매서운 눈과 거친 숨소리가 무서워 당장 소변을 지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비명을 삼키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를 했다.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도록 해주세요.’
그 후로 나는 하루에 3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잠에 들어야 나도 안심하고 잠에 즐 수 있었는데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 나를 내려다보는 의식(?)을 끝나고 잠들면 새벽 3시였다. 나도 그쯤 잠에 들고 다시 아침 7시에 일어나 등교를 했다. 상황이 이러니 하루 수면 시간은 고작 3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늘 비몽사몽 해서는 눈을 반만 뜨고 다녔다.
이날도 불면에 지쳐 비틀거리며 집에 왔다. 그런데 내 짐이 모조리 싸여 있었다. 너무 졸려서 헛것을 보거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내 짐 더미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내 뒤통수에 대고 아버지가 말했다.
“너 키울 돈 없다. 이제 나가라.”
하루아침에 갈 곳이 없어졌다. 그런데 아버지는 ‘미안하다.’라던지, ‘사정이 이러해서…’라던지 제대로 된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쓸모가 없어진 애물단지 취급을 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버리지 왜 붙잡아 놓고 이렇게 고문을 한 건가요?! 저를 키우는데 지갑을 세 번은 열어보셨나요?!!’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한 말 중 한 글자도 입 밖이 내지 못했다. 분노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놔줄 때 빨리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에 도망치듯 짐을 들고 나왔다. 엄마처럼.
얘기를 듣고 엄마가 2시간 만에 달려왔다. 그리고 엄마 차에 내 짐을 모두 실고 엄마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다음날 선생님께 사정을 얘기하고 학교 밖에서 교과 외의 공부를 실천할 거라는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부탁할 곳을 찾아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엄마가 살고 있는 곳은 2시간 반 정도 떨어진 다른 지역이었다. 아빠에게 벗어났으니 이제 엄마와 살 수 있었지만 졸업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전학 자체가 불가능했다. 또 나도 갑작스럽게 친구들과 헤어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엄마는 학교 근처에 사는 외가 친척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는 졸업까지 남은 기간 4개월 정도면 나를 부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도 고민의 시간도 갖지 않고 거절을 했다. 이유는 ‘내가 있으면 아버지가 자신들의 집으로 찾아올까 봐.’였다. 여기도 저기도 나를 거절했다. 나는 전염병 환자가 된 것 같았다. 마치 불운을 몰고 다니는 저주에 걸린 아이 같았다. 엄마가 맞아 죽어갈 땐 믿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내 아버지가 무서워 나를 받아 줄 수 없다고 했다. 모순적이라 이해도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학교로 다시 돌아갈 때가 돼가는데 여전히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분들이 손을 내밀어 줬다. 한분은 담임선생님이었거, 다른 한분은 내가 '이모’라고 부르는 엄마의 지인이었다. 나는 혹여 학급 아이와 같이 사는 것 때문에 선생님께 피해가 갈까 봐 이모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렇게 애타게 희망해 왔던 ‘무서운 아버지가 없는 삶’이었다. 아버지와 그 끔찍한 삶이 드디어 끝나 날아갈 것만 같았다.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떠나와서도 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한 지붕 아래 아버지가 없는 걸 알면서 여전히 불안해 잠에 들지 못했다. 그 불안들은 어렵게 찾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을 방해했다.
어느 날, 겨우 잠에 들었는데 어떤 인기척이 느껴졌다. 꺼림칙한 느낌에 뒤척이다가 눈을 떴는데 눈 앞에 새빨간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눈만이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 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해 그 눈을 정면으로 마주 봐야 했다.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아 가슴을 쥐어뜯다가 겨우 '그것'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맨발로 밖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마당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한동안 그렇게 잠들고, 보고, 뛰쳐나가 우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 또한 익숙해져 더 이상 뛰쳐나가 울지 않게 되었다. 요즘도 종종 ‘새빨간 눈이 나를 내려다보는 꿈’을 꾸지만 정말 지긋지긋하도록 꿔서 더 이상 그 꿈이 무섭지 않다. 덕분에 엄청난 담력을 기르게 되었다. 하지만 꺼림칙함에 늘 기분이 좋지 않다. 또 잊을 만하면 나타난다. 도대체 이 꿈은 왜 꾸는 것이며, 왜 이렇게 나를 쫓아다니는 것일까. 아버지일까? 아버지겠지? 아버지에 대한 나의 불안이 만든 악몽이겠지? 그걸 아는데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그때 ‘왜 나를 내려다봤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봤어야 했던 걸까? 그 의문을 해소하거나 맞을 각오를 하고 아버지에게 맞섰다면 이런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