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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Aug 08. 2021

모옌 단편선_모옌

대륙의 유구한 역사에서 건져올린 민담과 설화의 펄떡대는 생명력

한 줄 정리


‘환각 리얼리즘’의 대가 모옌의 이야기 보따리. 음울한 현실과 신비한 환상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이야기의 생명력이 돋보인다.


주관적 감상


1. 모옌은 2012년 중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우리나라에선 의외로 인지도가 낮은 편인데, 모옌뿐 아니라 퍼뜩 떠오르는 중국 작가가 별로 없는 이유가 궁금하다. 몇 년 전 위화의 <허삼관매혈기>가 유행할 때 접했던 중국 문학은 푸근한 토속적 향취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시대는 다르지만 어릴 적 성룡의 <취권>이나 이연걸의 <황비홍>, 좀 더 가면 주성치 코미디에서 풍기던 냄새와 비슷했다. 낡은 나무 탁자 위에서 만두를 집어먹으며 호리병 술을 마시는 친근하지만 이국적인 풍경 말이다.


2. 모옌의 작품은 한눈에 ‘중국적’이다. 대륙의 유구한 역사에서 건져올린 민담과 설화의 펄떡대는 생명력을 고스란히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가 출세작 <붉은 수수밭>을 발표한 해가 1987년이라는 걸 잊고 보면 족히 100년은 묵은 고전 작가라 해도 믿을 정도다. 하지만 모옌이 옛날 얘기를 즐겨 쓰는 이유엔 이보다 긴 설명이 필요하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사건들이 펼쳐지는 시공간적 배경에 실마리가 있다. 그의 실제 고향이자 문학적 고향이라고도 불리는 가오미현 둥베이향이라는 공간, 대약진 운동을 위시한 삼면홍기 운동이 벌어지던 1950년대 말~1960년대 초의 시대다.


이 시기 중국 민중들의 생활 활경은 급격히 나빠졌다. 위에 언급한 삼면홍기 운동이 원흉이었다. 마오쩌둥은 공산주의적 이상주의라는 깃발을 흔들며 민중의 생활을 파탄에 빠뜨렸다. 미국, 소련, 영국 등 서양의 발전을 단숨에 따라잡는다는 포부로 야심찬 경제 개발 계획을 세웠으나 정책 실패에 1958년부터 3년간 이어진 흉년까지 겹쳐 1500만~4000만명이 기아로 사망했다. 새로운 사회단위인 인민공사에 따라 집단 합숙 생활이 강제되며 가정이 해체되다시피했고 어른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된 탓에 아이들은 공동 탁아소에 맡겨져 굶주림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모옌의 환상은 이렇듯 악몽 같은 현실과 뒤섞인다. 궁핍한 현실을 견디는 마취제로 환상이 필요한 걸까. 끔찍한 실상을 부각하는 문학적 장치로 볼 수도 있을 거다. 이유야 어찌 됐든 모옌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태연하게 넘나든다. 다만 모옌의 환상은 앨리스가 빠지는 토끼굴처럼 훌쩍 건너가는 공간이 아니라 현실 속에 무심하게 머물고 있는 이웃이다. <후미족>에서 주인공 소년은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른 ‘후미족’에게 진수성찬을 대접받고 <철의 아이>의 배고픈 아이는 피부에 녹이 슨 떠돌이 아이의 권유로 쇠 맛에 눈을 떠 고철 더미 위에서 잔치를 벌인다.


3. 환상적 풍경이지만 뿌리는 리얼리즘에 있다. 모옌의 작품 세계에 ‘환각 리얼리즘’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유다. 이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무관하지 않을 뿐더러 깊은 관련이 있다. 마오의 사망 이후 1980년대 중국에 마르케스, 윌리엄 포크너, 프란츠 카프카 등의 세계문학이 쏟아져 들어왔고 다수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모옌도 그 영향을 부인하지 않는다. 세계 문학의 계보와 중국의 색깔을 접목한 영리한 선택이 모옌의 독창적 문학적 영토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4. 지난해 7월 모옌이 8년 만에 신작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편집 <늦된 아이>다. 공간은 여전히 가오미현 둥베이향이지만 시점은 과거에서 현재 까지의 변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댓글알바’나 ‘유언비어’ 같은 최신의 이슈를 요리하는 모옌의 풍자와 아이러니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모옌중단편선 #모옌 #심규호 #유소영 #민음사 #중국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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