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일단은 살갗을 맞대어 보자!
1. 장류진을 빼놓고 20년대 한국문학을 말할 수 있을까. 책장이 무섭게 넘어가는 페이지터너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좋은 예인데 이는 매우 드문 경우다. 소설에 취미가 없어도 즐길 만큼 대중적인 와중에 문학성이라 불리는 알맹이도 빼놓지 않는다. 이런 장점들을 나열하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여 보지만... 근데도 뭔가가 부족하다. 설명이 안 되는 이 느낌, 이렇게 퉁치기 싫지만 ‘매력’이라 해야 할까.
커머셜한 소설이 늘고 있다. 달리 말해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다! 나도 유행 따라 입문했으니 선민의식따윈 가질 군번이 아니라는 사족을 달고 싶다. 어쨌든 인스타 덕분에 스타로 떠오른 작가들의 책들은 밀키웨이처럼 줄줄이 피드를 수놓는다. 나 또한 자연스레 파도타기에 동참했고 읽어 보니 대다수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었다. 잘 짜이고 신박한 통찰이 곳곳에 포진하며 삶에 대한 고유하고 의미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2. 하지만 장류진은 그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빛깔을 발한다. 그 특별함은 희망과 실천을 말하는 의지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이나 폐해 같은 것에 대한 비판의식이 소설적 가치관의 정석이라고 믿었던 내게는 이것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어떤 식으로든 이 공고한 구조의 빈틈을 찾아내 돌파하겠다고 선언하는 듯한 태도에 놀랐다. 당돌하지만 묵직한 이야기의 원동력에 가슴속 응어리가 격파되는 경험을 했다. 파바박!
장류진의 첫 장편 <달까지 가자>는 그런 작품이다. 알다시피 이 소설은 흔히 ‘코인’이라 불리는 가상화폐로 큰 돈을 버는 ‘흙수저 여성 3인방’의 성공담이다. 코인은 위험하다. 주식도 모자라 변동성 하나 보고 너도 나도 뛰어들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차디찬 강물에 뛰어들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나의 통념은 소설은 코인 열풍을 체제 붕괴의 징후로 해석하고 비관적 세계관에서 그려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런데 장류진은 그와는 정반대로 달만큼 멀리 나아갔다.
3. 장류진은 무릇 소설이라 함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신랄하게 까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버린다. 나는 이런 시도가 여기가 전부란 생각에 익숙해지지 말자는, 무엇이든 일단은 살갗을 맞대어 보자는 제안으로 들렸다. 문학의 장르 밖에선 익숙하다 못해 따분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사유의 세계인 문학과 낯선 만남 혹은 충돌을 했을 때 뜻밖의 통쾌함을 선사할 수도 있다는 걸 이 작품을 보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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