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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경 감독, 영화 <7번방의 선물>(2013)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 33

by 송석주 영화평론가


내일 소개할 영화는

이환경 감독 <7번방의 선물>입니다.


2013년에 개봉한 영화고요. 개봉 당시에 1,300만 명 가까이 되는 관객수를 동원한 흥행작입니다. 수상 실적도 굉장히 화려한데요. 제34회 청룡영화상에서 ‘한국영화 최다 관객상’을 수상했고요. 제5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제49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영화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영화는 1972년 강원도 춘천시에서 벌어진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개요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당시 춘천경찰서에 소속된 파출소장 딸이 살해됐는데, 이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경찰관의 딸이 의문의 살해를 당해서 사건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어요. 박정희 대통령 또한 크게 화를 내면서 조속히 해결하라고 특별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찰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그래서 무리한 수사를 펼치다가, 소녀가 자주 다니던 만화방 주인 정모씨를 막무가내로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 거죠.


경찰은 정씨를 검거한 뒤에 온갖 회유와 겁박 그리고 잔혹한 폭행과 고문을 통해서 거짓 자백을 하게 만들고, 사건을 모조리 조작해서 엉터리 판결이 내려지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이 죄 없는 사람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이어가다가 모범수로 선정돼서 감형됩니다. 그러니까 사건이 발생한 72년부터 87년까지, 꼬박 15년을 복역하다가 풀려나게 된 거죠.


정씨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건 노무현 대통령 때 설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라는 기구 덕분입니다. 진실화해위는 군부 권위주의 시대에 행해진 각종 사법 조작 사건의 진실을 밝혀서 과거사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루자는 취지로 설립된 기구예요. 정씨가 누명을 벗기 위해서 2005년에 이 기구를 찾은 거죠. 진실화해위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당시 사건의 국과수 기록을 뒤지는데, 그 기록을 보면 범인의 혈액형이 A형인 거예요. 근데, 정씨의 혈액형은 B형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조사 당국은 정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요. 이후 진실화해위는 사법부에 재심 권고 의견서를 제출하고, 사법부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정씨는 처음 유죄판결을 받은 지 36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되는 거죠.


이 영화는 실화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반영했다기보다는 모티브만 따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만화방 주인 정씨를 영화에서 류승룡씨가 맡았고요. ‘용구’라는 캐릭터죠. 근데 실화와는 달리 6살 수준의 지능을 지닌 지적장애인으로 등장합니다. 용구는 ‘예승’이라는 아주 예쁜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아동 강간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근데 용구의 죄질이 너무 끔찍해서 그는 다른 재소자들에게 한동안 미움을 사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용구가 누명을 쓴 것 같다고 확신하게 된 재소자들이 그가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도와주고, 또 용구의 딸을 교도소로 데리고 와서 재회시켜줍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실 텐데요. 용구가 마지막에 사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죄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교도관과 딸 앞에서 절규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합니다. 용구는 6살 정도의 지능을 가졌지만,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거죠. 그래서 사랑하는 딸과 헤어지기 싫어서 막 몸부림치면서 통곡을 해요. 일단 여기서 류승룡씨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아마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지 않는 분은 없을 것 같은데요. 저도 영화를 볼 때, 어쨌든 글을 써야 하니까 영화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분석적으로 보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7번방의 선물>이 미학적으로 뛰어난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특히 연출적인 부분인데요. 방금 말씀드린 그 장면 같은 경우에도 냉정하게 말하면, 게으르고 안이한 연출이에요. 그러니까 주인공을 사지로 몰아넣고, 억지로 울음을 짜내는 가학적인 연출이거든요. 아무리 영화가 허구일지라도,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다루는 건 영화가 전하는 정의로운 메시지와는 별개로 굉장히 비윤리적인 행위입니다. 특히나 용구는 우리 사회의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지적장애인이에요. 캐릭터를 지적장애인으로 설정하고, 살인죄를 뒤집어 씌운 다음에, 억울하게 사형당하게 한 뒤 사법 정의를 말한다?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영화라고 하면서 전쟁 장면이 주는 쾌감과 스펙터클을 마치 오락처럼 전시하듯이 보여주는 영화가 있는데요. 이 영화가 그런 경우죠. 그러니까 영화의 내용이 아무리 올바르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형식에 문제가 있으면 좋은 영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에 관한 제 해설이 조금 더 궁금하시면,


12월 27일(일) 오후 6시 18분, TBN(강원) <달리는 라디오> -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FM105.9)를 들어주세요. 구글 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TBN 교통방송’ 앱을 다운로드하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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