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어떻게 나는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이지?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라서

by 수빈노

2019. 12. 19.

불안이라 하기에는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라 하기엔 또 너무 무겁고, 긴장 정도면 적당해 보인다.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잘 놀라게 되었다는 것인데 아마 늘 긴장을 안고 있어 그럴 테다. 지켜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두려운 게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가장 단단해야 하기에 '엄마는 강하다, 엄마는 독하다'라는 문장도 어느 만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잠을 못 자거나 몸이 편할 새 없는 것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픈 모습을 바라보며 무너지는 마음과 그럼에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닥치는 무력감, 그에 더해 어떤 상황에도 밝은 얼굴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엄마에게 힘을 주어야만 하는 어떤 의무.

환자를 돌보며 지낸다는 것은 그런 것. 매 순간 불안과 동거하며 양 손에 희망과 절망을 쥐고 긴장 속에 살아야만 하는 것. 지금 이 희망이 언제 엎어질지 모르고 이 평화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며 어제는 심장 터지게 괴롭다가도 오늘은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큰소리로 웃어버릴 수도 있는 것. 남몰래 세상이 떠날 듯 울면서도 누구보다 행복하다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것. 오늘 하루 지금 이 시간을 가장 소중히 온 마음 다하게 되는 것.


오늘도 그렇게 산다. 엄마 얼굴에 웃음 한 올 피어나기만 기대하면서

쓰린 마음 숨기고 엄마를 껴안고 부비고 파이팅을 외치고 실없이 노래를 부르고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잠시 잊고 있던 것들까지 모두 기억하고 되새겨졌다. 노수빈의 삶은 과거에 머물렀지만, 엄마 딸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 있게 흐르고 있었다. 진짜를 보고 진짜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고 많은 것들을 할 수 없던 시간 속에서 고요하게 선명해지는 것들, 후회되는 것들과 감사한 것들, 그 모든 것을 잊지 말자는 다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려는 하늘의 뜻이라면 기꺼이 이 길고도 짧은 시간을 고통 속에 살겠다는 의지가 솟았다. 그렇게 살아내듯 살았다. 가벼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고통만 전부인 생활은 아니었다. 안 적 없던 세상을 배웠고 가끔 행복한 기분도 들었다.


줄곧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만큼 고강도인 적은 없었다. 모든 시간이 가득 찼다. 일분일초가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면서도 하루하루 나와 싸우고 세상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여정이지만, 삼십여 년을 지가 제일 중요한 세상에 살던 애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 그 일상은 사랑과 의지만으로 평정을 유지하기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맥락 없는 감정들이 불끈불끈 치솟고 그랬다. 설거지를 하다 복받치는 마음에 센 물줄기 소리 뒤로 숨던 어떤 밤. 나는 너무 고단하고 슬펐다. 답답하고 서러웠다. 엄마. 난 아직 삼 년도 안 했는데, 엄마는 삼십 년 넘게 어떻게 이렇게 살았어? 엄마를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은 정말이지 여전한데 인간 노수빈의 삶이 서글프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어떻게 나는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이지?


감당하기 힘든 것은 체력보다 마음이었다. 마음에 대책 없이 치여버린 날이면 문득 내 삶이 보였다. 언제나 가장 중요했던 나의 시간이 지금은 언제나 가장 마지막이 되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희생되어야 할지 모를 나의 시간. 나를 위한 것이 그 무엇도 없는 듯 느껴지는 이 삶이 고달프고 나는 누가 배려해주는 걸까 서러웠다. 해답도 기약도 없는 막막함에 벽을 잡고 지새우던 밤의 뒤에는 아무 일 없듯 말간 얼굴로 맞이하는 엄마와의 아침이 찾아왔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책임감과 돌봄의 고단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친구들이 짠하게 떠올랐다. 초점 없이 창밖을 보던, 그 잠시조차 이내 방해받아야만 하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심장을 쳤다.


매일 식구들만 보고 대하던 어떤 날엔 마트에서 낯선 사람 대하는 것이 어색한 나를 발견하고 소스라쳤다. 동공이 흔들리고 어색한 표정 이상한 말투로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 이렇게 집안에만 있다가 바깥세상이 영 어색해질까, 나는 이대로 살림을 하다 억척스런 아줌마가 되고 별 볼 일도 없이 늙어 죽어버릴까 막연한 공포감이 왈칵 밀려와 숨이 막혔다. 자주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스스로를 원망하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되뇌었다. 너 지금 정말 중요한 게 뭐야? 뭉개진 마음을 재정렬하는 주문이었다. 분리수거를 하는 길 짧은 바람을 쐬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또 그렇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감정일 뿐이었다. 괜찮아. 난 괜찮아.


엄마와 나

엄마 딸과 노수빈

엄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도 좋은 나도 있고

내가 사라지는 삶이 두려워 들썩이는 나도 있었다.

인정했어야 했는데. 양쪽 다 돌보는 방법을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했다.




하루에 세 번 크게 숨을 쉴 것,
맑은 강과 큰 산이 있다는 곳을 향해
머리를 둘 것,
머리를 두고 누워
좋은 결심을 떠올려 볼 것,
시간의 묵직한 테가 이마에 얹힐 때까지
해질 때까지
매일 한 번은 최후를 생각해둘 것.

이상희 <가벼운 금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