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영영 몰랐으면 좋겠는
2019년 8월의 일기
회복의 팔월
이렇게 벌써 6개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괜찮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 분명한 삶을
오늘도 살아낸다.
뜻 모를 깊이의 사람에겐 뭘 얼마나 알겠느냐는 마음
날 너무 아끼는 사람에겐
너무너무 아파할까 차마 전하지 못하는
마음의 결 사이사이 맺힌 자국 같은 것들
아마도 평생 혼자 가져갈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영영 몰랐으면 좋겠다
무너지는데 딱 6개월
이제는 너를 좀 챙겨보라는 것인지
참다 참다 더는 못 봐준다는 분노인지 모를 상태
피부가 뒤집어지고 몸이 뒤집어지고 마음마저 길길이
언제나 의지대로 살아왔는데
그 무엇도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다
아니, '의지'라는 것의 존재조차 느낄 수 없는
그 해 여름
나는 아플 수가 없었다. 나를 돌볼 틈이 없다는 핑계도 있었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몸을 쉬게 해주는 대신 억지로 러닝머신을 꾸역꾸역 밟으며 이를 악물었다. 야, 너 지금 아플 여유가 없다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엄마 앞에서 나 만큼은 모든 게 괜찮고 싶었다. 난 괜찮아! 엄마만 힘을 내면 돼. 난 여전히 뭐든 할 수 있었다.
가면을 쓰고서 혼자 속이 문드러지던 그 해 여름, 나는 사실 정말 너무너무 힘들고 슬펐던 것 같다. 모두가 잠든 새벽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선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춘기도 모르게 말끔히 지내온 피부가 뒤집혔다. 괴물처럼 볼썽사나운 몰골이었다. 얼굴로 먹고 산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되니 우울감이 덕지덕지 붙었다. 엄마 아빠 고마웠어, 그동안 내가 너무 예쁘게 살았네. 불긋 솟아오른 트러블이 하나 둘 셋넷 결국 삼십 개가 넘어가더니(믿기 어렵겠지만 가능한 숫자) 땅따먹기 하듯 온몸에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결국 인정해야 했다. 아, 이건 아니다. 내가 틀렸다. 병원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원인불명, 이번에도 그놈의 '스트레스'와 '면역력'이 문제다. 거울 속 나를 뜯어보며 얼굴과 몸에 정성껏 약을 바르는 시간 자체가 생경하게 느껴졌을 때 나는 쓰게 웃었다. 와, 나한테 이렇게 관심을 주는 게 이렇게 오랜만이라고? 진료를 보러 병원에 찾아가는 일 자체가 나를 돌보는 유일한 행위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의사에게서 위안을 얻고 안정을 찾았다. 선생님 저를 돌봐주세요. 제 몸을 살펴주세요.
목과 어깨, 팔, 배, 등까지... 가관이었다. 가렵고 두려웠다. 어디까지 갈거니, 돌아올 수는 있는 거니. 하루하루 점점 망가져가는 몸뚱이를 보는 일보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도저히 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갑갑했다. 자꾸 대상 없이 화가 치밀었지만 의식적으로 숨을 내쉬었다. 포기하지 말자고 나를 다독였다. 나를 지켜야 엄마를 지킬 수 있어. 스스로를 돌보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해독을 못하는 몸’님'을 떠받들려 애쓰면서. 면역을 키워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매일 몸에게 좀만 버텨달라고 눈치를 살피고 부탁을 하면서 조심조심 지냈다. 한참 쉬던 요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공들여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이기. 좋은 음식을 먹고 적당한 시간에 잠을 자기. 해소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나를 위한 것을 꾸준히 챙겨보기로, 잊지 않기로 했다. 물론 결심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두 번째 위기의 몸
사실 모든 순간 불안감을 피부처럼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 참 어려웠다. 나는 세상 쫄보가 되어 엄마의 숨소리에 지나가는 표정에 스치는 몸동작 손동작 뒷모습 고갯짓에 하루에도 수십 번 심장이 철렁했다. 잠든 엄마가 내는 작은 소리에도 번쩍 눈이 떠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려운 것이 많아졌다. 운전도 무섭고 사람도 두려웠다. 신호등을 기다릴 땐 인도 깊숙이 섰고 붐비는 곳에 갈 때면 온 신경이 날카로웠다. 꼬마가 뒤뚱대는 것도 자전거가 인도로 달리는 것도 길가에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며 걸어가는 것도 싫었다. 혹시나 엄마를 다치게 할까 봐, 혹시나 내가 다쳐서 엄마를 지킬 수 없게 될까 봐 그렇게나 예민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람은 강해지지만, 사실 가장 두려운 게 많은 연약한 마음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오로지 나만 알 일이었다. 보호자가 불안해하면 환자는 수십 배 더 두려워진다. 내가 힘든 모습을 보이면 엄마가 혹여나 포기해버릴까 겁이 났다. 어떤 순간에도 밝고 강한 모습으로 차분하게 엄마를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그런 든든한 딸이고 싶었다. 어려운 건 내가 다 할게, 엄마는 다른 걱정 말고 그냥 편안하기만 했으면.
일과는 바쁘고 잠은 잘 못 자고 마음은 너무나도 예민하고 스스로를 잘 돌보지 못하는 생활이 지속되니 탈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잘 버텨주던 몸은 일 년 만에 기어코 고장이 났다. 몸이 온 힘으로 꽥꽥 악을 쓰는 느낌이었다. 하필 코로나로 온통 난리인 때였다. 이제 막 시작되던 때라 모두가 혼란스럽던 시절. 병원 대신 약으로 버티던 일주일, 떨어지지 않는 고열에 결국 질본에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로 바로 검사 예약이 잡혔다. 선별진료소로 가라고 했다.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말고. 현장은 살벌했다. 각각의 벽 속에서 희미해진 존재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눈을 뜨면 동네병원으로 달려가 수액 두 통을 저금하듯 몸속에 흘려 넣었다. 의사 선생님은 자꾸 전화를 걸어서 차도를 확인했다. 이때도 우선은 명확한 병명을 확인할 수 없어서 혹시나 엄마에게 옮길까 언니 집에 잠시 머물게 된 동안 언니가 내 자리를 대신했지만 불안했다. 종일 안부를 물었고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보러 갔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은 나름대로 또 잘 지냈다. 나는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다.
일주일쯤 지났나? 언니는 너 그동안 어떻게 이렇게 살았냐고 말하며 눈시울이 발개졌다. 하루가 이렇게 내내 바쁜지 몰랐다고, 힘이 든데 힘이 들 시간이 없다고 했다. 너가 맨날 씻을 시간 없다는 게 뭔 말인지 이제 알았다고 했다. “너 미쳤어? 어떻게 이렇게 살아. 이건 아니야. 이제 좀 같이 할 방법을 찾자.” 그리고서 언니가 우리 집으로 다시 이사를 들어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그사이 나는 엄마 병원에 환자 번호를 갖게 되었다.
아프지 마라, 너가 건강해야 엄마를 지키지
아픈 데 아픈 말.
무심한 그 말에 나는 뜨거운 침을 삼켰다.
그런 말을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닌데 그럴 때마다 나는 되려 더 아프고 싶었다.
많이 많이 마음껏 아파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