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침몰하지도 함몰되지도 않았다’
내 언니와 나는 많이 닮았고, 많이 다르다. 나는 무심하고 예민하고, 언니는 그런 나를 싫어했다(고 한다). 엄마를 지키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이 돈독해졌다. 겪어본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공감이 있었고 엄마를 아끼고 서로를 지키는 어떤 약속이 있었다. 언니는 언니의 방식으로 살뜰히 엄마를 챙기는 동시에 언제나 나를 우선으로 살폈다. 사려 깊게 내 마음을 돌보고 지지하며 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나보다 나를 더 아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나를 일깨웠다. 자꾸 틈을 보고 집 밖으로 나를 꺼냈다. 요즘 새로 생겼다는 곳에 데려가고 예쁜 음식을 먹였다. 내가 지금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말해주고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꾸 물었다. 나는 엄마 얘기를 하며 울고 언니는 나를 보면서 울었다. 존재만으로 위안이 된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가족이란 이런 것, 자매의 정은 이렇게 애달픈 것. 함께하는 동안 엄마, 아빠에게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 내가 혼자였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살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윽한 쾌락
구원 같은 한 때였다. 딱히 무슨 얘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인생에는 다양한 일이 많다는 것을 이미 아는 두 사람이 그냥 함께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다. 무엇을 나눈 것도 아닌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서글프고 괴로울 때일수록 즐거운 일이 더욱 즐겁게 느껴지니, 인생이란 참 공평하다.
요시모토바나나 <매일이, 여행>
몇 달에 한 번쯤은 외출을 했는데 친한 친구를 만나거나 친한 친구의 경조사 같은 일이 있을 때.
일단 외출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정말 시간이 없어서가 첫 번째, 엄마랑 떨어져 있기가 힘든 것이 두 번째였다. 떨어지고 싶은데 떨어지자마자 보고 싶고 걱정되고 눈에 어른거리는 아이러니. 더구나 세상에 나가 혼자 즐거운 척을 하고 있으면 이유 모를 죄책감이 일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여전히 세상 밖에 잘 지내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울렁였다. 과거와 다른 나. 나만 달라. 근황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시간이 날 때면 나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친구들은 자주 나를 깨워주었다. 매번 거절당하면서 매번 불러냈다. 짠해하는 대신 멋있다고 대단하다고 힘을 주었다. 꽃을 사주고 밥을 사주고 자꾸 안아주고 하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며 울고 웃었다. 나는 이 선물 같은 인간들을 평생 어찌 아껴 사랑해주어야 할지 생각했다.
2019.12.27.
‘너가 가진 것이 이만한데 다 펼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늘 무언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머리도 마음도 온통 부산했다. 스물 하나, 철 모르고 예쁘던 시절부터 나를 봐온 십 년의 시간과 그사이 비슷한 말들을 듣던 어떤 장면들이 겹쳐져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떤, 꽤나 대단히 쉽지 않은 시기를 통과하고 있지만 이 시간은 결국 가장 귀한 시간으로 남을 것임을 희망하고 확신한다. 매일매일 새롭게. 더 나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럼에도 침몰하지도 함몰되지도 않았다’
오늘도.
사람들은 참 착한 딸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자꾸 나를 천사라고 불렀다. 둘 다 너무 싫었다. 나는 착한 딸도 천사도 아니고 그냥 엄마 사랑하는 거라고. 엄마한테 잘해주고 싶은 거라고. 그냥 그거 밖에는 없다고.
착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을 기반한 책임감이 나를 달리게 했다. 지키기 위해 건강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분주하니 민첩하고 바른 상태가 되는 느낌이 늘었다. 나란 인간이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 너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꾸 추켜주고 칭찬해주었다. 잠시 미뤄진 인간 노수빈의 성취는 언제고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 확신이 덜컹거릴 때면 꼭 누군가 나타나 잡아주곤 했다. 이제는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내어 시간을 만들었다. 바득바득이 다만 몇 분이라도 틈을 만들어 기어코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다. 실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았다. 단지 그런 어떤 여백이 보호자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적 속에 고요하게 남겨지는 시간. 역할과 의무를 벗고 나로 존재할 수 있는 틈. 빠듯한 일상에 그 '틈'이 잊힐 만하면 꼭 어떤 이유가 나타나 다시 깨워주곤 했다.
힘에 겨울 때면 좋아하는 것들과 좋았던 일들 감사한 것과 예쁜 마음들 그리운 얼굴들
꿈꾸는 장면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자꾸 생각하면서 자꾸 쓰고 기억하면서
몸과 마음을 잘 달래가며 지내는 방법을 찾고 배워가면서
그리고 엄마 웃는 얼굴을 보면서
다시 움직이고 버티는 힘을 얻었다
나는 오로지 내 힘으로 온전하지 않았다. 모두가 선물처럼 내 곁에 머문 감사한 것들 덕분이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답은 무한하다.
나는 이 철칙을 언제든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 된 거지, 뭐
요시모토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