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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노 Mar 07. 2023

아프지 마세요 아무도

나도 안 아플 거니께...

아빠를 보내고 난 뒤 세 시간 동안 집안일을 했다. 온갖 빨래를 돌리고 집을 치우고 비우고 환기하고 향을 피우고 다시 정갈하게 우리의 공간으로 되돌리는 일. 이 공간이 가능한 최상의 컨디션을 찾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환경에 스스로를 데려다 두는 것으로 최적의 나를 만들 준비를 한다.


열흘간 아빠를 병원으로 집으로 모시고 다니고 케어하며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단 몇 분이라도 틈을 만들어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텐데.' 그간 엄마와의 시간을 돌아보며 부단히 했던 후회는 현실 앞에서 완벽하게 무용지물이었다. 고단한 하루에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야 사적 여유는 유효하지 않은 일이었다. 온몸에 드러나는 긴장감으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참을 수 없이 빡빡하게 예민했다. 스스로를 갈아 넣으며 완벽해야만 했던, 그 강박에 지쳐있던 날들에 학습된 불행감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무섭게도 완전히 그때로 다시 돌아간 표정이었다.

다시 한다면 더 잘할 텐데(다시 할 생각은 없었지만)라는 생각은 완전히 뒤집어졌고, '나는 아무래도 케어에 재능이 없는 사람인가 봐, 희생이나 헌신 같은 것과는 상극의 사람이었는지 몰라'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강아지도 아가도 귀엽지만 영영 욕심내지 않았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던 거야. 나는 누군가를 돌보며 평화로운 마음일 수 없는 좁고 작은 인간이라서......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잖아요. 엄마가 편안하고 행복해져야 해요."라는 말을 내뱉던 과거의 내가 기가 차서 꿀밤을 먹이고 싶은 지경이었다.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주세요. 잠깐의 시간을 제발 만드세요. 스스로를 지켜주세요.처럼 쉬운 말들의 위선을 실감했다. 그간 평정을 찾게 된 내 삶은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저 환경 덕분이었다는 것을 놀랍게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한번 더 겸손해진다.


스스로를 챙기는 시간은 어느 정도 여유로운 환경에서야말로 가능한 것이었음을, 다른 환경에 놓인 그 누구에게도 쉽게 말을 보탤 수 없음을 또 한 번 강력하게 깨닫는다. 찬찬히 마음을 돌보고 공부하며 단단하게 다져내는 일상을 가능케 한 모든 주변 환경에 깊이 감사하게 된다. 내가 이 시간을 더 한 틈 한 틈 값지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열흘 사이 생긴 마음의 일

(순간순간 놀라웠던 내 모습 잊지 않고 싶어서 기록해 둠)


1) 날카로워짐

일단 절대적으로 챙겨야 할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그 사이사이에도. 물어볼 것도 확인할 것도 챙길 것도 많다. 경과를 케어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만한 모든 일에 신경이 곤두선다. 내 실수로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더 완벽하게 챙기고 싶고 챙겨야 하는 과도한 집착. 이것은 오로지 스스로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으로 그 강박 때문에 괴로워진다. 환경에 예민해지고 붐비는 사람들, 뛰어다니는 아이나 강아지들... 모든 것을 경계하느라 세상 예민...


2) 술을 자주 찾게 됨

매일의 일과는 육퇴 하듯 술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술 생각이 잦았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요즘 술과 멀어졌었는데. 나는 다시 노술빈이 되어 밤마다 난폭하게 얼음 같은 맥주를 찾았다.


3) 언행이 거칠어짐  

^^... 여유 없는 마음이 옹졸해지는 만큼 언행도 거칠어진다. 


4) 개피곤

내가 언제나 1번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곧잘 잊혀진다. 나를 돌보고 내 삶을 챙기고 싶은 의지 상실. 모닝루틴이고 뭐고 더 자고 싶고 막살아버리고 싶고... 온 신경이 타인의 삶에 옮겨진 만큼 내 일상은 뒷전이 되어 대충대충 게을리하게 된다. 시간 내 요가를 가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그러면서 흐트러진 일상에 스트레스는 받는... 모지리...


덜 예민하고 더 여유롭게 타인을 살필 수 있는 곧고 넓은 마음을 갖고 싶다.

내 상황과 무관하게 긍정을 내어줄 수 있는, 체력을 뛰어넘는 마음의 힘을 갖고 싶다.



아빠에게 손을 흔들며 사실 속이 조금 시원했는데... 얼마 안돼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고 이마를 짚는다. 다 큰 딸과 함께 지내는 것이 아빠에게도 편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더 살갑지 못했던 못생긴 나를 후회한다. 나는 언제까지 후회하고 사과하는 인간으로 살런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로 또 한 번 다짐하면서.  완벽히 혼자였더라면 고단한 내 마음 얼마나 오갈 데 없이 외로웠을까 오늘도 내 영혼의 깐부에게 감사를 보낸다.


이제 다시 노수빈의 삶으로 돌아가기... 열심히 만들어둔 패턴으로 돌아가기...

밀린 작업 열심히 벼락치기... 파이팅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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