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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노 Oct 22. 2023

06   Kintamani : 감동 한도 초과

꿈 같은 현실에서 다시 쓰는 꿈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발리를 떠올리면 짱구 아니면 우붓. 그뿐이었다. 그렇게 떠들썩하던 길리도, 좋은 호텔과 호화로운 웰니스 서비스가 즐비하다는 누사두아도 딱히 당기지를 않았다. 그 외 지역은 딱히 관심도 기억도 없고, 그렇기에 당연히 오간 적도 없었다. 다시 가도 짱구 아니면 우붓. 그뿐이었다. 그러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킨타마니 사진을 몇 장 보게 된 것이 운명이었을까. “나 여기 가야겠어!” 당장에 튀어나온 말과 함께 내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욕심냈던 곳이었다. 어쩜, 신기하게도 그렇게 턱 하니 자연스럽게 내 ‘인생 여행지’가 된 이곳. 킨타마니. 그렇게나 좋아하는 바다도 숲도 아닌, 화산과 칼데라 호수.

“아니, 이게 뭐야 진짜??”

내가 호텔 앞에 딱 도착해서 바투르를 내려다봤을 때, 처음 했던 말. 그리고 여러 번 기침처럼 하게 되는 말이다. 이게 진짜 뭐지??? 페니다 바다에 뛰어들어 만타가오리를 만났을 때  ‘나, 이 장면 만나려고 이번 발리에 왔구나’ 직감했다.  킨타마니에 와서는 여러 번 그런 마음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떠올리고,  하루하루 다짐이 늘어간다.   말 그대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기분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이 되었네. 와아아 이 풍경이 정말 가능한 건지,  꿈은 아닌지.  이렇게 믿을 수가 없던 적이 없다.  5000평방 km 그랜드캐년에서도  이런 압도적인 감정은 느껴보지를 못했다. 나는 끝도 없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두 눈을 의심한다.  온갖 감각이 확장되고, 삶의 무한성과 유한성을 동시에 실감한다.  삶은 아무것도 아니고, 동시에 엄청나게 아무것이 된다. 이 장면을 만난 이후의 삶은 도저히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가 여행을 하나 봐.  우리가 떠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됐다.


 

이 비현실적인 뷰 한가운데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차를 마시고 요가를 하고  오래 일기를 썼다.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따뜻한 풀에서 수영을 하고  낮잠을 자는 동안 구름이  발아래로 빠르게 지나다녔다.  와인도 마시고 목욕도 하고 영화도 보고  별도 볼 수 있었다.  이런 장면들을 만난 내 운명을,  이 멋진 날을 보낼 수 있는 내 삶을,  따뜻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는 내 마음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낀따마니에서의 마지막 날. 잠깐의 여유를 만들어 호텔 카페에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어제는 내내 안개와 구름 덕에 뿌연 시야에다 빗발까지 날렸었는데, 어쩜 오늘은 가장 맑게 개어 멀리멀리 낱낱이 눈에 담을 수 있다. 너무 피곤해 일출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아쉬움을 덜어주는 바투르 뷰 덕에 다시 기분까지 개었다. 평화로운 마음은 잘 살고 싶은 의지를 다시 가지런히 정돈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 봐. 좋은 마음이 좋은 걸 만드니까. 


지금 내 눈앞에는 바투르 호수와 아궁산, 블랙라바가 파노라마로도 부족하게 360도로 펼쳐져 있다. 이 환상적인 장관을 담아내지 못하는 내 언어와 사진 실력이 애꿎기만 하다. 내가 이번 여행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이 숙소를 발견한 것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바스락하게 마른 빨래처럼 깨운한 마음으로 나를 다시 돌아본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쉬운 흔적들을 가다듬게 된다. 모든 일에 날을 세워 옳고 그름의 규칙을 만들지 말자. 일희일비하지 말자. 파도 타듯 부드럽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받아들이자. 모든 장면 새로 태어나듯, 그대로 온전히 만끽하자. 믿을 수가 없는 이 낀따마니 꼭대기의 광경을 잊지 말자…


귓전에 엔니오모리꼬네를 꽂고  일기를 쓰다가 가만히 눈앞을 바라보고 앉아있는데 눈물이 뚝뚝뚝 떨어졌다. 벅차오르는 마음. 나는 지금의 마음으로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이 순간의 마음만큼은 내 삶으로 아주 오래 이어가고 싶어서 눈을 꼬옥 감았다. 

나 그냥 안 가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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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타마니 Kintamani

발리의 한라산으로 불리는 킨타마니 화산지대는 2012년 유네스코가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로 선정했다. 여전히 분화가 진행 중인 바투르 Batur 화산을 중심으로 블랙라바 트래킹이나 언덕 위에서 일출을 보는 지프투어, 온천 등을 경험할 수도 있다. 촘촘히 박힌 별을 보던 까만 밤도, 패딩을 입고 요가를 하던 아침의 입김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발리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불의 신이 사는 산' 아궁산 Gunung Agung (발리의 최고봉)을 배경으로 한 13km 칼데라 호(바투르호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궁산과, 바투르호수, 바투르 봉우리와 블랙라바까지 한눈에 담고 그 위로 떠오르는 해를 오래 바라보는 감동을 반드시 누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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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섬의 꼭대기에서 뗌뻬와 미고랭 

호화로운 호텔 식사보다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미치게 소박하고 희한하게 맛있던 산꼭대기 와룽에서의 한 끼였다. 앞서 입구를 들어선 언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더분한 입구 너머엔 말도 안 되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던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메뉴를 만들어주었다. 오래오래 걸렸고, 나도 오래오래 많이 먹었다. 제대로 된 뗌뻬가 들어간 가도가도gadogado(인도네시안 샐러드)와 생선 구이를 먹었다 (뗌뻬Tempe는 콩을 재료로 한 비건 기본 식재료. 대충 하얀 메주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관광객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은 리얼 현지식인데도 제일 맛났던 진짜 미고랭과 대왕 닭다리를 먹었다. 엄빠 밥상처럼 정성이 구석구석 느껴지는 데다가 모든 메뉴가 건강한 느낌으로 맛있고, 심지어 양도 푸짐한, 훌륭한 밥상이었다.  구글 평점 4.9 레벨이 충분히 납득되며 가능하다면 5점 이상을 주어도 괜찮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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