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드캠퍼스 Mar 22. 2018

'여대생 신생아 구조 자작극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1월 30일 새벽, 광주 북구 아파트 주민인 여대생 A는 복도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신생아가 담요 한 장 없이 바닥에 그대로 유기 돼 있었다. A는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서 약 1시간동안 품에 안아 체온을 올렸다. 같이 사는 언니부부가 경찰에 아기를 발견했다고 신고했고 훈훈한 이야기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이 사건이 화제가 됐던 이유는, 모든 것이 여대생 A의 ‘자작극’으로 드러난 후부터다.


“20대 여대생 신생아 구조, 자작극으로 드러나...”

 신생아를 발견해 구조했던 대학생은, 사실 아기의 친모였다. CCTV를 분석해도 유기 행적을 찾을 수가 없었고, 유기된 장소도 양수나 혈흔 없이 깨끗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A는 자백했다. “남자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고 혼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남의 아이를 구한 것처럼 허위 신고했다.” 조사 결과, A는 언니나 부모에게도 임신 사실을 숨겼고, 언니가 거주하는 아파트 화장실에서 갑자기 양수가 터져서 아기를 낳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명 ‘20대 여대생 신생아 구조 자작극’ 사건. 허위신고를 하고, 이런 자작극을 벌인 것은 분명 잘못됐다. 이 사건은 두 달이나 지난 지금,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당시 자작극이라는 것이 막 밝혀지고 초기 기사가 나오면서 달린 댓글들이 눈에 선하다. “엄마는 살인미수죄 적용시키고 애기는 입양 보내라.”, “책임지지도 못 할 건데 한 순간의 쾌락으로 몸 좀 굴리지 말자.”, “지 몸도 팔아버리는 것들인데 애라고 못 버릴까.” 등등. 이 댓글들은 모두 공감을 몇 천 개나 받은 ‘베스트댓글’이다. 이 외에도 그녀만을 향하는 수많은 댓글들. 그 잘 갈아진 화살촉을 보며 나도 같이 무서워졌다.


 기사와 여론의 반응을 접한 후 한 참을 떨었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떤 기사에 나온 여대생 A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사건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뱃속의 아이는 계속 꿈틀대고, 고통 속에서 혼자 탯줄을 당겨 끊었다. 막 아기를 낳았는데, 역시 아기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다. 언니와 부모님에게 말하면 실망할 거 같아서, 감히 도움도 못 요청했다. 잠깐, 그런데 남자친구는 어디로 갔지? 둘이 함께 한 일이지만, 이 모든 상황에서 그는 빠져있다.

 A는 막 출산한 몸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기를 구조했다고 자작극을 벌였다. 그 와중 아기가 건강하길 바라 1시간동안 품에 안아 체온을 올렸다. 많이 아프고 많이 무서웠을 거다. 하지만, 아기는 단 한 번도 버려진 적이 없었다. 아기가 살길 바라고 건강하길 바란 마음은 어느 부모와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차피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 피임을 잘하든가, 진작 낙태를 했어야지!" 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이 안락의자에 편하게 앉아 쉽게 하는 말로 느껴진다. 여자만 손해니까 몸 관수 잘하라는 말. 어렸을 때부터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듣던 소리다. ‘왜 여자만 손해지?’ 어려서 세상에 대해 잘 몰랐지만 왠지 모를 묘한 반항 감이 들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부터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 라는 건 요즘 여성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그나마 활발해지면서 추가된 생각이다.) 여성에게는 매달 배란일과 생리예정일을 확인하면서 긴장하는 날이 이어진다. 생리예정일을 체크하려고 깔아둔 어플 내 커뮤니티에서는 피임을 제대로 했는데, 생리를 안 한다면서 임신은 아닌지 걱정하는 글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넘쳐난다. 현재 콘돔이나 경구피임약 등 다양한 피임 방법들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안정적인 피임이란 없다. 관계 중 콘돔이 빠질 때도 있으며 혹시 모를 콘돔의 불량을 대비해서 관계가 끝난 후 물풍선을 만들어 콘돔이 째지진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제대로 피임을 했어도 불안한 날은 사후피임약을 먹는다. 또 경구피임약 같은 경우 21일 동안 매일 1정씩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놓치는 경우도 있다. 여성에게는 매번 많은 자기점검이 요구된다.



 그럼, 낙태는 말처럼 쉬운가?


 작년 말, 미디어와 사회라는 교양 수업을 통해 2017년 낙태죄 폐지청원에 대한 레포트를 작성했다. 2012년 낙태죄 합헌결정부터 현재까지 미디어가 ‘낙태죄’를 어떤 식으로 노출 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한 것이다. 조사를 통해 낙태죄에 대해 깊게 공부할 수 있었다. 먼저, 낙태죄의 사전 정의는 ‘자연분만기에 앞서서 태아를 인위적으로 모체 외에 배출시키거나 모체 내에서 <살해>하는 죄이다.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을 여성의 인권이나 자기결정권보다 높다고 판단한 시대의 결과물이다. 현행법에 따라 낙태는 예외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불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을 감수하면서 낙태를 했을 때, 모진 사람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모든 책임은 여성에게로 돌아간다. 즉 법적 책임은 물론 임신중절수술 이후 몸에서 일어나는 신체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모든 일까지도 말이다. 어떤 에세이에서 한 경험담을 봤다.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수소문해서 겨우 찾은 산부인과에서 임신중절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마취제 부작용으로 심한 구토를 하고 두통을 앓았다. 그런데도 의료진에게 항의할 수 없었다. 그녀가 받은 수술이 애초에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로 남들이나 국가가 나서서 왈가왈부 한다. 사회적 시선은 어떤가? 애를 낳아도 기를 환경은 되고? 원치 않은 임신으로 각종 위험과 사회적 단절을 짊어질 여성을 위한 고려는 없다. 인간을 위한 권리는 있지만, 여성을 위한 권리는 없다. 그녀가 놓인 커다란 상황자체를 공감하고 이해한다면, 그 한마디가 얼마나 선명한 폭력이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피임에서부터 임신, 출산, 그리고 출산 이후까지. 모든 무게중심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라. 아무리 아기를 지우거나 낳거나 어떤 선택을 해도, 결국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함께’한 일이지만, ‘나 혼자’ 감당하거나 함께 해주는 것에 ‘고마워’해야 하는 일이 돼 버린다.



 본 칼럼은 ©TENDOM Inc.과 한국청소년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애드캠퍼스 온라인 칼럼멘토단' 소속 대학생 멘토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글의 내용은 운영기관의 공식의견이 아니며, 일부 내용은 운영기관의 의견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칼럼은 출처를 밝히는 한 자유롭게 스크랩 및 공유가 가능합니다. 다만 게재내용의 상업적 재배포는 금합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학번들에게 새내기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