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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덕 Aug 24. 2016

맛을 따라 전주 찍고 군산으로

광복절 연휴에 붙여서 휴가를 내는 얌체 짖을 해 보았다.

양쪽 주말을 합쳐서 장장 9일간의 휴가다. 휴가를 내며 찝찝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마음이 푸근했던 휴가였다.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둘만의 휴가를 떠났다.

나야 출장이다 워크숍이다 해서 돌아다닐 일이 많았지만 아내는 모처럼의 여행에 한껏 들뜨고 많이 즐거워했다.

휴가를 떠나기 전 나는 곳곳의 맛집을 30여 곳 미리 체크를 해 놓았다. 전국 맛집 기행을 계획한 것이다.

유래 없이 더운 여름에 관광은 무슨 관광을 하겠나 싶어서 그냥 잘 먹고 잘 쉬는 여행으로 콘셉트를 잡았고 기왕에 아내와 함께 나선길이니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실컷 먹게 해주자는 생각이었다.


첫 번째 행선지 전주..

전주를 빼고 무슨 식도락 여행을 논할 수 있겠는가? 아무 집이나 들어가도 기본은 한다는 맛의 도시가 바로 전주다.

전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며 당초 계획했던 대로 점심은 비빔밥을 먹기로 하고 "한국관"과 "고궁"을 놓고 고민을 하다가 모처럼 어부인을 모시고 나왔는데 딸랑 비빔밥만 먹기가 뭐 해서 비빔밥과 함께 서너 가지 사이드 메뉴를 먹을 수 있는 "고궁"으로 자리를 잡았다.

싱싱한 육회와 청포묵 무침, 불고기와 해물파전 그리고 전주비빔밥이 푸짐하게 함께 나오는 비빔밥 정식으로 맛있고 포만감 있게 잘 먹었다.

아침을 굶어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만에 왔어도 변함없는 맛으로 여행 첫 끼니를 만족시켜 주었다.

나는 사실은 요리들 보다는 나물이나 젓갈 같은 밑반찬의 깊은 맛에 빠져 접시를 다 비웠다.


어질 어질 할 정도로 폭염이다.

도저히 길을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아스팔트가 이글거린다.

미리 잡아놓은 한옥마을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낮잠을 잤다. 여행을 오자마자 낮잠이라니... 어쩔 수 없는 노인네인 것 같다.


"먹기 위해 산책을 하다"


꿀맛 같은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3시간 정도 낮잠을 잔 것 같다. 얼마 만에 낮잠인가...

배부르게 먹고 낮잠을 잤으니 속이 더부룩하다. 이래서는 안된다 저녁을 제대로 못 먹을 것 같다는 위기감 아닌 위기감이 왔다.

오후 5시

한옥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순전히 소화를 시키기 위함이다. TV에 나왔던 대로 골목골목마다 간식거리들을 파는 가게들이 빼곡하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지금 저걸 먹으면 오늘 저녁에 예약해 놓은 전주 한정식을 제대로 못 먹는다.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한옥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한옥마을이라기보다는 먹거리 마을이란 느낌이다. 이제 됐다. 시장기가 돌기 시작했다.


전주의 한정식은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다. 전주의 맛에 충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색하지가 않다.

반찬 하나하나에 각자의  맛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백번집"

전주에서 꽤 오래된 한정식집이다. 어머니가 하다가 아들이 물려받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상 떡 벌어지게 나온다.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그리고 계속 나온다. 놓을 자리가 없어 포개 놓는다.

밥상 하나에 온 세상을 다 담았다.

김영란법에서 정해 놓은 한도를 넘어버렸다. 아내에게 고발하지 말라고 농담을 했다. 대가성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차 때문에 반주를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소주 한 병이면 저 많은 음식들을 싹 비웠을 텐데..

집에 가면 남긴 음식들이 아쉬울 텐데...


꿈도 없이 잘 잤다.

침대가 아닌 이부자리에서의 잠이 이렇게 편할 줄 몰랐다.

미닫이 문을 여니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툇마루에 피워 놓았던 모기향이 고스란히 재가 되었다.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박인희가 부른 모닥불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그렇다.

어제 온종일 먹어댄 음식들은 모두 재가 되어버린 듯 배가 고프다. 아내도 덩달아 잘 먹는다.


전주에 와서 "삼백집"을 지나칠 수는 없다.

시원한 국물의 콩나물 해장국,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고기 고명을 얹어서 후루룩후루룩... 어 정말 시원하다.

김을 국물에 적셔서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

계란 반숙과 시원한 모주 한잔.. 어이구 아침부터 또 과식을 했다.


짬뽕 먹으러 군산으로..

복성루의 짬뽕을 먹기 위해 군산으로 차를 몰았다.

아... 이성당 단팥빵과 야채빵이 나오는 시간이다. 빵 나오는 시간을 놓치면 팥빵과 야채빵은 먹을 수가 없다.

난 두어 번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성당 빵집 옆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빵을 사러 들어갔다. 시간을 잘 맞추었다.

따끈따끈한 갓 구운 빵이 진열되기 시작했다. 길게 줄을 선 대열에 합류하여 드디어 단팥빵과 야채빵을 한 박스씩 사는 데 성공했다.

복성루로 향하는 길 "빵은 따뜻할 때 먹어야 해"하면서 차 안에서 아내와 나는 단팥빵과 야채빵을 한 개씩 두 개를 먹어버렸다.

팥소가 많이 들어가 빵 한 귀퉁이를 잡으면 툭 하고 빵이 꺾어질 정도로 속이 실하다.

너무 달지도 않고 부드러운 팥소가 어릴 때 귀하게 먹던 단팥빵의 맛을 추억하게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오시곤 했던 태극당이나 독일빵집의 빵이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양배추가 들어간 야채빵도 고등학교 때 매점에서 팔던 고로케를 생각나게 하는 이 또한 추억의 맛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복성루"에 도착했다.

마침 줄이 짧아 금방 탁자 하나를 차지했다. 자.. 이제 그 이름도 유명한 복성루 짬뽕을 먹을 시간이다.

돼지고기와 해물이 듬뿍 올려진 짬뽕은 국물 맛이 깊고 시원하다.

차 안에서 먹은 빵 때문에 짬뽕의 맛이 반감되었고 반 이상을 남겨버리는 애석한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최고의 짬뽕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짬뽕의 맛은 훌륭했다.


이제 오후에는 긴 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통영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대고 밀려오는 식곤증과 피곤함을 잠시 달래고 있다.


여전히 덥긴 하지만 하늘은 훨씬 높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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