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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덕 Aug 25. 2016

통영에서 밥 먹기(2)

해 질 녘이 되어서야 통영에 도착했다.

2년 만에 다시 오게 된 것 같고 아내는 초행길이다. 오후 내내 운전을 해서 피로가 몰려온다.

미리 예약해 놓은 펜션은 방에 들어서는 순간 조망이 너무 좋았다.

바다라기보다는 강 같은 오밀조밀한 통영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풀장도 있고 꼬불 꼬불 산책길도 완만하다.

아내가 손주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민후 데리고 왔으면 좋았을걸... 민후가 있으면 정말 잘 놀텐데"

으이구..거의 환자 수준이다.

그러고 보니 2013년 손주 녀석이 태어나던 날 나는 통영에 출장을 내려와 있다가 손주의 탄생 소식을 듣고 서울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기억이 난다.

마음은 급하고 길은 멀어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제철은 아니지만 통영은 워낙 굴이 많이 나는 곳이어서 계절에 관계없이 탱탱한 굴요리를 먹을 수 있다.

냉동과 해동을 잘 해서 그런 것 같다.

"영빈관" TV에 몇 번 나온 집이다.

아내가 멍게 비빔밥을 먹겠다는 것을 그건 내일 먹자고 꼬셔서 굴밥 정식 2인분을 시켰다.

굴이 탱글탱글하고 크기도 아주 실하다. 양념장을 넣어 굴이 으깨지지 않게 살살 비벼서 그 옛날 연애할 때처럼 아내에게 먼저 주었다.

좋아한다. 큰 힘이 드는 것도 아닌데 자주 그래 줄걸 그랬다.

생멸치 무침과 굴전 그리고 생각보다는 감칠맛이 참 좋은 전갱이 구이와 함께 통영의 맛을 만끽했다.


항구도시에 어둠이 내렸다.

달마공원 쪽으로 가서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밤바다를 보고 싶었는데 사모님이 무릎이 아프시단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하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아내는 드라마를 보시고 나는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끈적끈적한 바람이 분다. 그래도 밤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기분은 온갖 걱정거리를 내려놓기에 충분했다.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잠이 깰 정도로 푹 잤다.

남해의 아침바다가 금빛을 실었다.

펜션의 1층에 있는 깔끔하게 인테리어 된 카페에서 커피와 간단한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다.

커피의 맛이 깊다.

정말 한가하게 종이신문을 뒤적여 본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시끄럽다.


여장을 꾸려 차에 싣고 여객터미널로 나왔다.

아침이 부족한 듯싶어 할매김밥을 먹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마음에...

순전히 아내를 위해 통영관광을 시작했다.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한려수도의 풍광을 보게 해줬다. 나야 몇 차례와 본 곳이지만 그래도 참 볼 때마다 장관이다.

외곽 도로를 타고 해안선을 돌며 해송 사이로 보이는 쪽빛 바다에 눈길을 빼앗긴다.

박경리 기념관에서 아내는 두 시간을 머물렀다. 전시물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어머니라는 시 앞에서는 한참을 서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미처 몰랐다.

전시회도 가고 미술관에도 자주 데려갈걸 그랬다. 35년을 함께 살고도 아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걸 몰랐다.


통영 중앙시장

역시 여행은 시장통을 돌아다녀야 진짜 여행을 온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바다를 옮겨 놓은 듯 온갖 싱싱한 생선들이 가게마다 가득하다.

조그만 수족관에 도미가 펄쩍펄쩍 뛴다. 얼른 나를 먹어달라고 하는 것 같다. 둘이 먹기에는 좀 벅찰 정도로 커 보이는 도미 한 마리를 5천 원 깎아서 2만 5천 원에 샀다.

생선 좌판 뒤편에 있는 탁자 네게 짜리 식당에서 갓 잡은 도미회를 먹기 시작했다. 맛은 말할 필요가 없다.

남을 것 같았던 도미회가 모자랐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멍게 비빔밥을 시켜서 또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어제저녁의 약속은 약속이니까...


여객터미널 근처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통영꿀빵 집이지만 아내가 기어코 오미사꿀빵을 사야겠다고 해서 꿀빵 집으로 차를 몰았다.

이제 오후에는 또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한다. 그래도 큰 맘먹고 나선길 끝까지 씩씩하게 가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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