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하 Oct 10. 2021

약은 한 번에 한 봉지만 뜯어먹는 거잖아

어린 새대가리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약이라는 것은 실상 얼마나 위험한가. 용법 용량에 맞게 잘만 쓰인다면 당연히 안전하겠지만, 그걸 무시하는 순간 불시에 독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약이 나를 구원해줄 그 무엇이라도 되는 양 굴었다. 앞 장에서 이야기한 사탕에 의존하는 어린아이. 한 개에 기분 좋아지니 두 개 먹고, 세 개 먹고, 결국 이가 다 썩어서 더 큰 고통에 시달렸다는 뭐 그런 이야기.


나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사실 정상적인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채로 정상적이기를 바랐다. 내가 보는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무리 모르기로서니  하루 종일 비둘기처럼 고개를 까딱이고 흔들고 있는 이런 모습이 정상일 리는 없었다. 나는 인간이고 싶었다. 새대가리가 아니라.


그래서 약을 먹었다. 용법, 용량을 알려주는 의사 선생님 말씀은 어디에 갖다 치웠다. 그건 뭐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도 그랬다. 흥미 없는 과목의 설명은 양 귀로 빠져나갔다. 선생님 말씀 제대로 안 듣는 건 내가 전문이다.


약을 삼켰다. 그것도 많이 삼켰다. 한 봉지, 어라? 효과가 없다. 두 봉지, 에잉? 이래도 효과가 없어? 세 봉지, 네 봉지. 나흘 치 약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당연히, 멀쩡할 리가 없었다. 머리는 빙빙 돌고 속은 뒤집히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이야, 평상시보다 더 하얀 피부가 되고 싶었는데 미백 화장품이 필요 없네,


그렇게 약을 퍼먹는다고 증상이 요술 지팡이로 뾰로롱 건든 것처럼 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약을 몇 봉지씩 뜯어먹기. 지금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여튼, 과다한 약물 섭취는 필름을 끊기게 만드는 데에는 일등공신이었다. 내가 분명 어딜 다녀왔다는데 나는 기억이 안 나네. 내가 무슨 말을 했다는데 그것 역시 기억이 안 나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종일 울렁울렁.


출근을 했다가 미칠 듯 올라오는 구토감에 바로 조퇴를 한 적도 있더랬다. 그때 일하던 학원 원장님은 하얗게 질린 내 몰골을 보고는 당장 들어가 쉬라며 오히려 떠밀었다.


자, 사람이 이쯤 경험해봤으면 다시는 안 그럴 법도 한데 나는 역시 새대가리인가. 증상이 심하게 올라올 때면 또다시 약을 한 움큼 털어먹고 마는 것이다. 머리를 흔들면서 약을 털어먹고 거기에 술까지 마셔대니 아주 환장의 콜라보다.


약물 오남용을 멈춘 것은 지금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부터다. 참, 생각해보면 사귀었던 남자 친구들에게 아주 민폐 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모두 내 잘못된 습관을 끊어주려 애를 태웠으니.

  가지 다른 ,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나를 어르고 달래기보다는 강경책을 썼다는 점인데, 그때는 그게  야속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렇게 잡아주길 천만다행이다.     


이제는 안다. 약이라는 것은 한 번에 한 봉지만 뜯어먹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는 이 몸뚱이에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니.


그래도, 그 모든 순간들을 나는 내 어린 날의 노력으로 포장하고 싶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 그 순간 결정이 최선이었다면 그걸로 된 거야. 천천히, 그리고 어렴풋이 나는 이제 과한 약이 없이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내 어린 날과 닮은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자해의 목적이든, 나처럼 빠른 치료를 원해서든.

 괜찮아. 괜찮아요. 한 봉지의 약으로도 충분해지길 온 마음으로 바랄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과는 입에 물린 사탕 같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