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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Oct 02. 2022

2015년, 그 어느 날의 나에게

5년 회고록


안녕, 지금은 2022년이야. 벌써 7년이나 지났네. 오랜만너의 글을 읽었어.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구나, 새삼 돌아보게 되더라.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이야기 해 줄게. 너는 다니던 대학을 별 탈 없이 졸업했어. 졸업 당시에 소설을 사랑했는지 아닌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 그 부분은 이해해 줘. 벌써 무려 5년 전이잖아.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더라. 겨우 5년을 회고하기도 쉽지가 않아. 맨날 게으르게 누워 있는 것만 같은데 돌아보면 나름 뭔가 많이 했더라고. 우선 회사를 여러 번 옮겼어. 첫 번째 취직에서 바이럴 마케팅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그때 나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나봐. 어쩌면 문창과를 나와 작가가 되지 못하면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그것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나는 기계처럼 찍어내는 그 거짓말이 정말 신물났어. 1년도 채 버티지 못했는데도 그랬어. 타인에게 간접적으로지만 피해를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그 무렵엔 항상 속이 따가웠어. 그래도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어. 더 이상 나는 학생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도 뭐 제대로 모으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버티고 살다가 우울증이 심해졌던 것 같아. 재미있는 거 하나 알려줄까? 지금의 나는 우울한 날이 거의 없어. 돈은 여전히 없고 틱 장애도 여전히 달고 살지만 그럼에도 지금 인생에 만족해.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흐린 날이 없다고는 못해. 술을 진탕 퍼 마시고 울다 잠드는 날도 있지. 그렇지만 그때의 나보다 그 빈도수는 확연히 줄었단 걸 확신해.



그때 나는 열심히 정신과에 다녔지 아마? 약도 열심히 먹었을 텐데. 약으로 호르몬을 누르고 살던 그때보다 난 지금이 더 행복해. 이상하지. 책임져야 할 건 지금이 훨씬 많은데.



아, 지금의 너는 모르겠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나는 벤츠를 타는 남자를 잠시 만나게 돼. 그때 너 벤츠 아주 원없이 탄다. 지금 그 남자와는 헤어졌어. 큰 문제가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야. 그냥 서로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탓이겠지. 지금은 다른 남자를 만나. 이 남자와는 벌써 3년이 훌쩍 넘었네. 진짜 엄청 싸우고 엄청 헤어졌는데, 여전히 이 남자와 함께 하고 있어.



너는 사실 이 남자 때문에 많이 울게 될 거야. 한편으로는 그를 많이 울리게 될 거야. 의심이 많은 너와 이 남자는 서로 엄청난 상극이었으니까. 헤어짐의 대부분이 이것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지금은 각자의 모난 부분이 서로 많이 갈린 것 같아. 지금은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 아마 별 탈이 없다면 이런 안정된 관계가 쭉 계속되지 않을까? 지금은 꽤나 단단한 사이라고 생각해. 그와는 평생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고, 슬슬 함께 살 집을 보러 다닐 생각이야. 놀랍지. 결혼할 생각 크게 없었던 네가 결혼이라니. 더 놀라지 마라. 이 남자와는 띠동갑 차이가 나. 그렇다고 무슨 돈 보고 만났다거나 머리 벗겨진 배불뚝이 만난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꽤 동안이고 잘하는 것도 많은, 네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야. 문학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이야. 그는 노래를 불러. 보컬 트레이너라는 근사한 이름의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야. 현재는 잠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가 언젠가 자신의 예술로 돌아갈 거라 믿어. 보컬 트레이너, 지금의 너에겐 아주 생소한 직업이지? 그는 네가 원하는 만큼의 감성이 있고, 너에게 부족한 이성도 충분해. 나는 그가 어느 정도 조화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요리도 잘 하는데 맛있는 거 엄청 해줘서 너 살 되게 많이 찐다. 이런 모습도 마냥 예쁘다 하니 살을 뺄 동기 부여가 안 된다는 게 좀 단점인 것 같아.



나는 내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맸던 것 같아. 어느 날, 정말 뜬금없이 너는 학원 강사의 길로 들어서게 돼. 정말 놀랍지 않니. 네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라니. 이걸 말하면 너는 더 놀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나는 중학생을 가르치는 국어학원 강사가 되어 있어. 학생수도 많고 규모도 꽤 큰 번듯한 학원이야. 근무시간이 길기는 한데, 식사도 다 챙겨주고 간식도 줘. 무엇보다 그 당시의 너는 받을 거라 생각 못했던 급여를 받고 있어. 그렇다고 어마무시하게 대단한 급여는 아닌데, 그래도 너 이렇게 차곡차곡 잘 올라간다고. 지금 힘들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스물 일곱. 이 나이가 돼서 지금 느끼는 건, 그 때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야. 너는 마냥 어렸으니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경의를 느꼈겠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냥 그 나이만큼 아는 거더라. 너도 문창과를 나오게 되잖아. 간간이 용돈 벌이로 소설 창작 과외를 하면 레슨생들은 전부 나를 대단하게 생각했어. 나는 그냥 내가 문학 공부하면서 체득한 거, 알고 있는 거 알려준 것 뿐이거든. 이 정도 나이를 먹고 초보자의 글을 보면 그게 그냥 한 눈에 보이거든. 뭐가 부족한지 뭐 때문에 이상한지 뭘 추가하면 보다 더 그럴싸한 소설이 되는지.


나는 그게 누구든 그 사람의 글을 비난하지 않아. 격려하고 응원하고 품어주며 그냥 조금 더 아는 걸 알려줄 뿐이야. 소설을 가르친다면, 사실 그게 가르칠 수 있는 건진 이제 잘 모르겠지만, 그래, 소설 작법, 스킬 정도를 가르친다면 그게 옳은 거라고 생각해. 학생보다 조금 더 안다고 해서 우쭐댈 일도, 그 학생의 글을 깎아내릴 일도 아니라는 거야.



올해 나는 신춘문예에도 도전할 생각이야. 네 걱정과는 다르게 꿈은 꽤 오래 꺾이지 않더라.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더 이상 뜨겁게 활활 타오르지는 않아. 다만 언제나 미지근한 온기로 내 곁에 있을 뿐이야. 이젠 알 것 같아. 뜨거운 것보다 미지근한 게 좋은 이유를 말이야.



나는 지금 초등학생 독서논술을 2년 정도 가르친 선생님이고, 국어 강사에는 이제 막 첫 발을 들인 햇병아리야. 그래도 2년 짬이 있는지 칠판 앞에 서는 일이 전혀 두렵지는 않네. 사실 지금도 난 교무실에 앉아 있어. 이제 다섯 시면 수업이 시작 돼. 오늘은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시조를 가르치러 갈 거야.



너에게 행복한 날이 더 많아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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