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과 직장인에 대한 짧은 고찰
가감 없이 솔직한 초보 선생님의 좌충우돌 수업 적응기 #03
"오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길이 좀 복잡하죠."
수화기 너머로 듣던 남자분의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울리는 순간. 나는 바짝 긴장을 하고 만다.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요, 제가 길치라고요? 누가 그래요, 호호, 하는 소셜 스마일은 기본 장착. 원장님으로 추정되는 남자분은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시며 나를 면접이 진행될 강의실 안으로 안내했다.
"어서 오세요, 선생님!"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한껏 발랄한 톤의 여자분이 웃으며 나를 맞았다. 원장님은 아마 저 남자분이실 테니, 선배 강사쯤 되시겠거니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 이럴 때마다 나는 또 난감해지고 마는 것이다. 대체 이 몸뚱이가 무슨 저주를 받은 것인지 나는 카페인을 마실 수 없다. 카페인을 못 먹는 내가 아메리카노를 내렸다니 우습기 짝이 없다. 더 웃기는 건,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카페인에 쌩쌩했다는 것이다. 카페인 함량이 보통 커피보다 높다는 스누피 커피우유도 잘만 마셨다. 지금은 마시면 아주 난리가 난다.
주인님, 카페인을 드셨군요. 삐용삐용. 나쁜 짓을 하셨으니 어지럼증을 벌로 내리겠어요. 붕 뜨는 기분은 덤이랍니다.
이런 판국이니, 면접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카페인을 극구 사양해야 한다. 여기서 또 한 번 미치겠는 건, 나는 초면인 사람에게 낯을 무지하게 가린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 당락의 키를 쥐고 있는 면접관 앞이니 그 거절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아, 어... 제가 카페인을... 못 먹어서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거절을 하는데, 그 꼴이 또 우습다. 다행히 마음 넓으신 여자분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지만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나는 그 자체로 심장이 쫄깃한 기분을 맛본다.
"아, 커피를 못 드세요? 그럼 차로 드릴게요! 차는 괜찮으시죠?"
네에. 또 한 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고 잠시 숨을 고른다. 길을 찾아가는 것부터 면접, 커피를 거절해야 하는 것도 면접. 본격적인 면접을 보기 전부터 아주 면접 투성이다.
직장인에게 커피는 어쩌다가 필수처럼 되었을까.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직장인은 어쩐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기분마저 든다. 가령 사장님이 커피를 사주겠다고 메뉴를 고르라 하면, 눈치 있는 직장인은 대개 아메리카노를 고른다. 개중 가장 저렴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우물쭈물 대다 결국 카페인이 없는 과일 음료 등을 고르는데, 그런 것들은 보통 아메리카노보다 값이 높다. 그러면 나는 지은 죄도 없이 괜히 눈치가 크게 보이는 것이다.
어찌 됐든, 커피를 못 마시는 내 앞에는 뜨거운 차 한 잔이 놓였다. 그 순간 본격적으로 강사 선배님과의 면접이 시작되었다. 그분은 생글생글 웃고 계셨다. 선배님 인상이 좋으신 걸 보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어라, 그런데.
"선생님, 반가워요. 저는 이 학원 원장이고, 전화드린 분은 본부장님이세요."
호칭 한 번, 크게 실수할 뻔했다. 확실하지 않을 때 입 꾹 다물고 있던 나 자신 크게 칭찬한다. 커피도 못 마시는 직장인이 눈치까지 없는 걸 하마터면 면접 초반부터 들킬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