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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희 Jun 24. 2020

전쟁이 남긴 것

전쟁에서 얻은 후유증

현역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겠다는 트럼프의 명령에 군 수뇌부들이 반발했다. 그들의 항명은 당연한 일이다.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의 총격은 젊은 병사들에게 살인을 하라고 내모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인간적인 폭력에 의한 정신적 손상은 살아있는 동안은 치유될 수 없다.


   “행군을 하는데 우연히 흑인 시신를 밟게 됐어. 시체 썩은 오물이 군복에 다 튀어서….”


  아주 가끔 흘러가듯, 돌아가신 선친은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무용담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처음으로 마주했던 북한군을 쏘아죽이던 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아닌 엄마에게서 전해 들었다.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경험담을 말하길 싫어한다. ‘적군을 몇 명 죽였네, 어쩌네’ 라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사이코 패스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한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일화나 그런 공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살인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병사는 정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남북 전쟁 당시 어떤 장군은 “전장에서 10명 중 9명은 첫 전투를 치르고 어떤 식으로든 충격을 받는데 나머지 한 명은 정상인이 아닌 것 같아 가능하면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전투병으로 참전하는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겪은 충격에 군복무가 끝나도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추모하는 미군 노병들

  작년에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서 만났던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어니 워트링은 한국전 참전 후 7년 동안 알코올 중독자로 지냈다고 모임에 참석했던 주변 사람들이 내게 전했다.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로만 본다면 군인과 살인자는 같을지 모르나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다는 명분이 있기에 살인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용맹하게 싸우면 훈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실제 전투병으로 적과 싸우다 온 병사들은 우울증이나 정신적 고통아래 놓이게 된다.


 트럼프가 시위가 나는 과정에서 화재가 난 세인트교회를 가면서 성경책을 들고 인증샷을 찍었던 이른 바 ‘성경 이벤트’ 기사를 보며 어린 시절 듣게 된 셈이 백인의 조상이고 야벳은 황인종의 조상이며 함은 흑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설교가 떠올랐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는 홍수로 하나님이 인간을 멸할 때 방주를 만들었던 인물이다.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자게 된 노아가 자신의 하체를 가려준 셈과 야벳을 축복하고 그렇지 않은 아들 함에게는 셈의 종이 되는 저주를 내렸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 분포된 함의 자손들, 노예선에 실려 와 백인의 노예가 되었던 흑인들의 비참한 삶이 성경에 나온 대로라면 인종차별의 시작은 분명해진다.


미국 남부지방의 백인신학자들이 흑인 노예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신학적 해석은 그렇다 치더라도 볼턴의 자서전에서 밝힌 미국의 한국전 참전과 주한미군 주둔 규모가 이해가 가지 않다던 트럼프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한국전에 참전했던 전사한 미군들의 희생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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