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Oct 19. 2023

돈도 돈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붙나니~

아들이 우리 보다 나은 것



주말에 남편이 당근으로 에어팟 하나를 구입했다. 중고지만 15만 원이 넘는 고가였다. 하루가 지난 월요일. 회사에 다녀온 남편이 소리 좀 들어보라며 우리에게 에어팟을 내밀었다. 아들이 들어 보자마자 "이거 완전 이상하구만" 하며 나에게도 들어 보라고 했다. 귀에 걸치고 음악을 재생하자마자 웅웅 거리는 옅은 노이즈가 감지됐다. 손을 대자 이번엔 거슬릴 정도로 노골적인 지지직 소리가 났다.


"아니, 이거 고장 난 걸 팔았네. 당장 반품해~ 언제부터 이랬어?"

"첨에 좀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그쪽에서 정품 케이스 보내주면서 이어팁 교체하면 될 거라고 하길래 기다렸지. 근데 교체해도 똑같네?"

"이런 건 반품해야지. 1,2 만원도 아니고... 십만 원이 넘는데!"

"근데 이미 받아가지고 와서, 다시 말하기도 좀 뭣하고 해서. 그 사람 엄청 착해 보였거든. 그 남자도 자기 게 아니라 여친 거 대신 팔아주는 거라고 하고. 여친도 운동할 때만 껴서 잘 몰랐다고 하고... "


남편이 판매자 편에 서서 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길게 해대자,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들이 정색을 하며 남편의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아빠, 이런 노이즈를 모르고 팔았다는 건 말이 안 됨. 이런 거 그냥 넘어가면 아빠를 호구로 알아. 다음에도 괜찮은 줄 알고 이런 식으로 또 물건 판다고!"


아들은 우리 보다 오래된 당근 고객이다. 거래 경험이 많다. 중학교 때부터 자기 옷을 골라 사 입던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자 슬슬 당근으로도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기가 애정하는 인디 가수가 인스타그램으로 판매하는 한정판 아이템을 샀다가 맘에 안 들면 다시 되파는 수준이었는데, 어느 때부터는 재빨리 사서 차액을 남겨 팔기도 했다. 신문에서만 보던 리셀테크였다. 되파는 품목이 명품이나 예술작품만 아니었지 심리나 로직은 다를 바 없었다. 적어도 이 나이 되도록 인터넷으로 산 옷을 제대로 입지도 반품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니 옷걸이에 걸어두는 나보다 나았다. 묻고 따지기 귀찮아서 불량 에어팟을 그대로 쓰겠다는 남편보다는 당연히 백배쯤 내 아들이 낫고 말고! ㅎㅎ




아들이 알바를 시작한 지 1달쯤 지난 뒤에, 아들에게 적금 통장을 만들어주면서 물었다.


"근데 너 첫 월급은 다 어디다 썼냐?"

"그동안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었지~."


우리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엔젤지수(총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는 몰라도 엥겔지수(총지출에서 먹는 비율이 차지하는 비율)는 상위 1%라고 자부한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작고 말랐던 아들이 안쓰러워, 아들이 뭘 먹겠다고 하면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학원이다 뭐다 해서 아들이 저녁을 밖에서 먹는 일이 많아지자 엄카를 쥐어주면서도 먹는 것만큼은 마음껏 사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도 아들은 엄카를 함부로 쓰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아들은 돈에 대해서 만큼은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돈에 대한 셈만큼이나 요즘 애들은 자신이 누려할 권리가 침해되는 것도 못 견뎌하는 것 같다. 내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면 나이 사십 쯤엔 돈과 명예가 우리에게 저절로 따라올 줄 알았다. 굳이 남들처럼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여 돈을 좇으며 살지 않아도 집 한 채쯤 소유한 중산층이 될 줄 알았다. 이미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에도 항의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더 열심히 하면 언젠간 남부럽지는 않게 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에 대해 너무 몰랐다. 모든 삶의 방향이 다 돈을 향해 재배치되어 있는데도, 그걸 부정하며 살았던 것 같다. 솔직히 우리가 이렇게 교육에 목을 매는 것도 다 돈 때문이 아닌가.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것도, 대기업에 들어가길 바라는 것도 내 아들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롭게 살길 바래 서다. 남편이 못마땅한 것은 옆집 남자만큼 많이 벌어다 주지 못해서다. 그래서 이 나이에 기어이 나를 아들 학원비 벌러 등떠밀기 때문이다. 내가 불행한 이유도 마찬가지. 여자도 남자 못지않게 많이 벌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여전히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남편 탓만 하게 하는, 이 모든 게 다 이 빌어먹을 돈이면 다 되는 자본주의 세상 때문이 아닌가! (워워~)


이런 세계가 너무 이상해 한동안 그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돈에 대한 철학을 가지지 못했다. 돈에 대해 초연하지도, 돈을 향해 열렬히 달려가지도 못하고,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경단녀에 수완 없는 여자로 남아 있다.


다행히도 아들은 우리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돈은 저절로 따라올 거라는 그런 신화 따위 믿지 않는다. 대학이 나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해 줄 거라는 그런 미래도 믿지 않는다. 그건 공부 잘하는 남편과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지만, 세상은 지금 우리에게 대답하고 있지 않나. 열심히 일한만큼 합당하게 보답하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아들이 조금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아도 좋겠다 싶다. 돈도 저 좋다는 사람에게 붙는다지 않나. 우리와 다른 삶을 선택했으니, 적어도 아들이 이 나이 우리처럼 갈팡질팡 하며 살진 않을 거라고, 나는 지금 믿고 싶다.  



 


이전 03화 아들이 집에 가지고 온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