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아들이 대학 가는 주류에서 벗어나자, 비주류 친구들 이름이 아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 OO이가 보너스 받았는데 나 뭐 사주고 싶다고 해서 아울렛 갔다 왔어."
아들은 친구가 점심도 사주고 티셔츠도 하나 사줬다며 스파이더 반팔 티셔츠를 내 앞에 내밀었다. 옷은 괜찮다고 계속 말했는데도 친구가 기분이 좋아서 쏘는 거니까 받으라 해서 어쩔 수 없이 골랐다고 했다. 아들의 표현에 의하면 OO 이는 "집안에 구멍이 좀 있었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어서 중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생계형 알바를 시작한, 말 그대로 이 업계 베테랑이자 인생 선배. 알바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여러 가지 고민 상담을 하며 그 친구와 좀 친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날은 그 친구가 얼마 전 정직원을 달고 받은 보너스를 쏘는 날이었다. 티셔츠 가격이 좀 나갔지만, 축하받는 기분으로 쏜 선물이라니 나도 그냥 받으라고 했다. 그 친구는 그날 자기가 입을 1+1 티셔츠 몇 벌과 엄마에게 줄 선물도 야무지게 사더라 했다. 참 기특한 아이다 싶었다.
1주일쯤 후. 그 친구가 카카오 바이크를 타다가 굴러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며 아들이 병문안을 다녀왔다. 에구, 조심 좀 하질 않고. 정직원 달고 보너스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고라니. 입장이 조금 곤란하겠다 싶었지만 큰 사고는 아니라길래 그러고는 곧 잊었다. 다시 1주일 후. 막 잠들려는 찰나, 아들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엄마, 토토라고 들어봤어?"
내가 그게 뭐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잠깐 망설이는 듯하던 아들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엄마, 토토 못 들어봤어? 이거 일종의 도박이야. 그때 말한 그 OO이 있잖아. 걔가 어제 나한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하더라고. 근데, 도박을 하다가 돈을 몇 백 날렸대."
얼떨떨했다. 뭐? 니들이 도박을 해? 미성년자가 도박할 수 있어?
그게, 불법이긴 한데 애들이 다 어떻게든 할 수가 있대... 근데 내가 얼마 전에 걔한테 얻어먹은 게 있잖아. 걔가 나 돈 버는 것도 알고. 그래서 완전히 거절은 못하고...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 나는 번 돈 내가 다 못 쓴다. 엄마가 저축해야 한다 해서 관리받는다, 했지. (안 그래도 엊그제 마침 아들과 적금 통장을 만든 터였다). 그때 내가 걔한테 밥값+티셔츠 해서 한 10만 원 정도 받은 거잖아. 그래서 10만 원 정도만 줬어... 절대 이걸로 다시 도박은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아들이 속사포처럼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는데, 아,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몇 개 월 전에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고등학생 마약책 하나가 검거됐다는 얘길 듣고 엄마들끼리 세상에, 뭔 이런 일이 다 있나 하던 터였다. 수원을 거점으로 한 마약 밀매단이 있는데 우리 용인 일대에도 일진 애들 사이에 청소년 마약책이 손을 뻗친 것 같다고 했다. 우리 동네로 말하면 용인 일대에서도 변두리에 속한 동네라, 여기까지 들어온 거면 정말 심각한 거라면 우리는 몸서리를 쳤더랬다. 이미 영상을 통해 본 미국 켄싱턴 거리 일대의 마약중독자들은 우리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도 익숙했다. 좀비처럼 거리를 덮은 펜타닐 중독자들 때문에 그 꿈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 스타트업 기업들이 하나 둘 철수하고 있다는 얘기도 최근 언론을 통해 접했다. 하지만 도박이라니. 아들이 들려주는, 주변에서 토토를 해본 애들 썰에 의하면 처음에 몇십을 넣으면 몇 백의 돈이 쉽게 꽂히는 구조라고 했다. 하지만 두세 번 따고 난 뒤 OO처럼 한번 크게 잃으면 본전 생각 때문에 다시 투자하게 되는데, 그땐 놀라서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발을 빼려고 해도 늦는다고 했다. 그 사이트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악랄하게 애들을 불러들인다고도 했다. 도박의 '도'자도 들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이미 친구들 사이에 공공연히 이런 얘길 듣고 사는 아들의 세계에 다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긴,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 야동쯤 쉽게 접하며 사는 세대가 아닌가. 내 불안은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근데 엄마, 걔가 나 말고 다른 친구들한테도 이미 돈을 빌려 달라고 했나 봐. 어쩌지? 친구들한테 얘길 해줘야 하나? 돈 빌려주지 말라고?"
".... 아니. 네가 일부러 먼저 얘기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친구들도 OO한테 전화받으면 스스로 판단해 볼 거야. 친구들이 너한테 혹시 조언을 구하면 조심스럽게 네 의견 얘기해 줄 순 있지만, 네가 적극적으로 먼저 안 좋게 얘길 하고 다니는 건 별로 안 좋은 생각인 거 같아. 엄마 경험상 좋은 일엔 발 빠르게 하고, 안 좋은 일엔 뭐든 천천히 심사숙고하는 게 좋더라."
"맞아. 나중에 그 친구가 들으면 섭섭해할 것 같기도 하고. 그치?"
아들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도 이미 그 친구의 말이 퍼지고 있었다. 고3 아들들이니 수중에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니 대개의 아들들은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돈이 어딨냐?" 하고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순간 아들에게 재빨리 적금통장을 만들어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아들과 돈에 대한 얘기가 화제에 오르자 여기저기 경험들이 다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개 대학을 가서 휴학을 하고 군대에 입대하기 마련인 아들들은 군대에 가서 처음으로 자기 수중에 돈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군대 선임이나 동기들 사이에서 돈을 빌려주거나 그도 아니면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데... 제대하고 갑자기 빚더미에 오른 아들 때문에 골치 썩는 집도 적지 않다고 했다. 군대라는 곳이 폐쇄적인 공간이다 보니 끈끈한 관계 때문에 설마 돈을 빌려주고 떼먹을 거란 생각을 못하거나 위계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게 되기도 싶다는 것.
수중에 아들이 유용할 만한 돈이 들어오자마자 생긴 이 사건을 겪으며, 다시 아들의 세계에 대해 고민이 깊어졌다. 사춘기 땐 욕을 입에 달까 봐,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술 담배를 할까 봐, 야동을 보거나 게임을 하다가 중독될까 봐, 그리고 당연히 '공부를 안 해' 걱정이 많았다. 대학 보내고 군대만 갔다 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땐 또 친구들 사이에 돈을 빌려주고 도박을 할까 봐, 사업한다고 설치다 빚더미에 오를까 봐, 어디서 애를 낳아 키워달라고 데리고 올까 봐(워워~ 이건 너무 나갔군)... 아들 둔 에미들의 걱정은 끝이 없다.
얼마 전 다시 아들에게 OO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또 다른 사고는 안치고 다니는지. 물론 내심은 그 친구와 안 좋은 일로 자꾸 연루될까 봐 하는 걱정도 있었다.
"몰라~ 잘 지내겠지. 엄마, 나 요즘 걔랑 잘 안 만나."
"정말? 왜? 걔가 만나자고 연락 안 해?"
"첨엔 몇 번 연락 왔는데, 내가 별로 만나기 싫더라고. 다른 애들은 만나면 맘이 편하고 좋은데, 걔는 처음부터 좀 맘이 불편했어. 뭔진 모르겠는데... 불편하면서까지 만날 필욘 없잖아."
이런 점에 있어서 내 아들은 굉장히 말끔한 편이다. 절친도 없지만, 정이니 의리니 해서 질질 끌려다니지도 않는 편.
아들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 '삐딱선 타는 아들의 공식' 같은 게 있다. 매슬로우의 기본욕구에 버금가는 이 인정 욕구의 공식은 대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모든 아들들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존재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대개 '공부'로 평가되는 그것에게 비껴 난 아들들은 안에서 받지 못한 인정의 욕구를 밖에 나가서 풀게 되는데...
그게 바로 초딩까지 엄마 말 잘 듣던 아들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며 술 담배 하는 아들들과 어울려 다니며 흔히 말하는 비행을 일삼는 일진이 되어
힘을 과시하며 또래 집단 사이에서 인정 욕구를 충족하게 된다는 것!
지금 생각해도 희안한 건,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한 내 아들은 그 공식에서 다소 비껴 있었다는 것.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하고 점점 학교에서는 존재감 없는 학생으로 전락하면서도 내 아들은 신기하게도 소위 '불량한' 애들과 어울려 놀지 않았다. 친구들이 술담배를 하고 다닐 때에도 "담배를 빨리 피는 친구 보니 키가 안 크는 것 같더라"며 별다른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웃에 사고 치고 다니는 아들들을 보면 도무지 이것들이 '겁대가리가 없었다.' 호기심이 너무 앞서서 자신이 벌인 행동이 그다음에 일으킬 파장을 상상하지 못하거나, 뭔가 자기 안에 쌓인 욕망을 이상한 방식으로 밖에 나와 풀었다. 근데 내 아들은 욕구 자체가 없는 건지, 힘을 과시하려는 욕망 자체가 없는 건지, 덕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지내는 내내 적어도 아들 문제로 학교에 불려 다닌 적은 없었다.
사고 치는 아들들을 보며 처음으로 스트레스를 만들지 않는 내 아들의 기제, 내 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밖으로 풀거나 외부로 과시하려 들지 않는 기제에 안도했다. 사춘기를 보내며 성적이 우수수 떨어지는 와중에서도 우리는 적어도 아들을 '대학'과 '공부'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