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Oct 24. 2023

좋은 머리로 왜 꼭 공부만 해야 하나

우리가 공부를 놓지 못한 3가지 이유



우리가 아들 공부에 대해 오랫동안 미련을 놓지 못한 이유는 아들에게 공부가 '재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감이 좋았다.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가 스펀지 빨아들이듯 해요. OO는 가르치는 재미가 있어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따로 학원을 가진 않았지만, 집에서 혼자 문제집을 풀 때에도 아들은 "수학 문제가 어렵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중학교 때 일찌감치 수포자가 된 나로서는 아들의 머리가 수학 영재였던 남편 머리를 닮아 타고났다고 생각했고, 이대로만 주욱 간다면 적어도 공부를 포기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들은 다른 것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잠시 축구를 했지만 운동 쪽은 피지컬이 좋지 않았고, 다른 애들처럼 아이돌에 빠져 노래나 춤에 미치는 법도 없었다. 우리는 꼭 공부여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도 아니었다. 사춘기에 들어 게임에 들이는 시간이 공부 시간을 압도하자 우리는 아들에게 제대로 게이머가 되어 보면 어떻겠냐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도 아들은 자기가 게이머가 될 정도의 실력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뭔가 일찌감치 결정되거나 평가받는 것 앞에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별다른 취향이 없는 아들에게 다른 대안도 없었다. 좋은 머리로 하는, 남들 다하는 공부 밖에, 다른 재능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들은 학생이 아닌가! 학생의 본분이 무엇인가? 공부다. 물론 이 명제는 나처럼 가치중독에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생각은 절대 아니다. 남편같이 의무가 곧 취향이자 삶의 의미이자 존재 가치인 인간들의 생각이지. 사춘기를 핸드폰과 침대와 한 몸으로 지내던 아들이 어느 날 아빠에게 물었을 때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들 : "아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학교는 왜 가야 돼?"

남편 : "학생이면 당연히 공부를 해야지. 그게 학생의 본분이야."


뭔가 그럴듯한 답변을 기대했던 아들이 약간 멀뚱한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자 남편이 다시 말했다.


"야, 나도 회사 가기 싫어. 그래도 회사 가잖아! 학생이면 당연히 학교에 가야지! 학생이 공부 안 하면 뭐 할 건데?"

 

해야 할 건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남편의 생각이었다.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줄 알았던 사회에서, 부모가 원하고 주변에서 기대하니까, 우리 같은 세대들에겐 당연했던 가치. 하지만 먹는 것부터 직업을 선택하는 것까지 그때와 달리 수많은 스펙트럼을 경험하고 선택지로 삼고 자라온 아들의 세대에는 먹힐 리 없는 가치. 


그렇다면 내가 아들의 공부에 목을 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균형 때문이었다. 아들은 처음엔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배우다가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시들하는 게 많았다. (꼭 나다, ㅠㅠ) 아들이 뭘 해도 끈덕지게 하는 법이 없자, 우리는 머리 좋은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엉덩이'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아들아, 머리 좋은 너에게 필요한 건 엉덩이야. 다행히 좋은 머리를 타고났으니, 책상에 오래 앉아 공부하는 습관만 들이면 너는 정말 최고가 될 거야. 그때만 해도 그런 얘기를 붙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등 떠밀려 공부하던 애들도 최상위반에 들어가면 그땐 타고난 머리에서 확연히 차이가 드러난다고. 내 아들의 머리는 그때 가서 승부수가 될 거라고.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도 모르고. 순진했다.


아들이 영재 수업에서 과제를 작성해 내는 문제로 한바탕 큰 일을 치른 후에도, 사춘기 때 잠시 방황한 후에 언젠가는 다시 공부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한 한기가 한 해가 되고,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우리는 기대했다.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너는 공부가 재능이야, 수학만 붙들고 있으면 언제라도 다른 과목은 회복할 수 있어, 다른 애들보다 머리가 좋으니 조금 늦어도 금세 따라잡을 수 있어."라고.


아들의 사춘기 기간이 길어지고, 공부로 돌아올 기세가 점점 멀어지는 듯하자 주변에서 조언했다. 부모의 기대가 너무 높으니 애가 빨리 좌절하는 것이 혹시 아니겠냐고. 오랫동안 공부에 손을 놨으니, 한 두 과목부터 차근차근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게 하라고. 과연 아들이 공부 좀 해보겠다고 하고 본 첫 시험에서 국사 과목 하나가 달랑 높은 점수가 나왔다. 이것 봐, 아들아. 공부하니까 되잖아. 다음 시험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일찍 준비하고 다른 과목도 하나만 더 공부해 보자. 지난번에 교과서를 딱 한 번밖에 안 읽었잖아. 이번에 두 번 읽으면 완벽할 듯~ 하지만 아들은 그다음 시험에서도 의지를 부리다 늦장 부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공부를 재능으로 타고난 아들에게 우리는, 공부하는 몸을 습관 들여주지 못한 무능한 부모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백해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에 대해라면 정말 빌어먹을 정도로 생각하고 또 반성했다. 하지만 이제 모두 지난 일. 자책하고 분석하는 일 따위로 스스로 깎아먹는 일은 그만 두려 한다.  


얼마 전,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심정을 굳히자 남편이 말했다.

"난 쟤가 빨리 군대를 갔다 와야 해결된다고 생각해. 군대 갔다 오면 정신 좀 차리고... "

"내 주변 경험 들어보면 군대가 갔다 와도 딱 6개월뿐이라던데? 일단은 지금 알바 잘하고 있으니까 좀 기다려 보자. OO말로는 자기 학교 졸업하자마자 정직 달 수 있을 거라는데? 나한텐 정직 달고 열심히 돈 벌다가 군대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

"저러고 저건 또 언제 그만 둘라는지. 뭐 시작하고 끈덕지게 하는 법이 없으니."

"지금은 자기가 왜 하는지 알겠대잖아. 공부는 하고 싶지 않지만, 돈은 벌고 싶다잖아. 애가 정말 내성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는 이번에 보면 알겠지. 그땐 왜 하는지 모르고 해서 그랬지만, 이번엔 다를 거라고 난 생각해."

 

우리는 머리가 좋은 아들은, 공부가 재능이므로 공부하는 성실한 몸을 만들어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아들은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하러 대학을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게. 왜 우리는 좋은 머리로는 꼭 공부를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어차피 좋은 대학도 대기업도 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 좋은 머리를 돈 버는 일에 쓰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내 안에서부터 많은 가치들이 전복되는 중이다.



이전 05화 아들의 겁대가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