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Nov 14. 2023

꼭 내 자식이 아니어도 괜찮아

줌인(zoom in)에서 줌아웃(zoom out)으로



아들 사춘기를 지나며, 매번 나는 이 정도면 내가 아들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으로 말하자면 훈육엔 턱없이 모자라지만, 독립엔 나름 특화된 집이었기에. 다른 엄마들 보다는 더 아들과 헤어지는 게 쉬울 줄 알았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아들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지나치게 나 몰라라 하는 방식으로 정을 뗄까 봐, 되려 그게 더 두려웠다. 남편에게 한 것처럼 아들에게도 그리 할까 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고민 자체가 아직 아들을 내려놓지 못한 증표였건만. 에미와 자식 사이에 내려놓는다니? 그것 또 애초에 불가능한 말이 아니던가. 


나는 원래 사람에게 별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사회생활 하며 한두 번은 이상한 상사도 만난다지만 나는 특정 사람 때문에 별로 힘들어 해 본 기억이 없다. 분주 했던 젊은시절을 지나며, 사람들이 의외로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인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며, 똑같은 사실도 각자의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간 관계에 너무 애쓰는 건 부질 없는 짓이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나랑 굳이 맞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할 필요가 있나. 그러니 결혼을 하고 남편과 아들과 시댁이 생기고, 가족이라는 그 견고한 제도 속에 편입되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에 절대 손절 될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그게 가족이라는 인간관계였다. 특히 내 배 앓아 낳은 아들은 죽을 때까지 어떤 모양으로든 나와 매여 있었다. 우리는 좋건 싫건 맘에 들건 말건 손절 할 수 없는 관계다. 어떻게든 함께 잘 살아낼 방도 밖에 아무 출구를 갖고 있지 않는. 


그러니 엄마라면 이렇게 또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는 여전히 미련을 놓지 못했던 것 같다. 




평생 자기 방에 처박혀 전혀 밖으로 나올 것 같지 않던 아들이, 하루 12시간씩 알바를 하면서도 너무 재밌어,를 연발하던 날들이 달쯤 계속되던 어느 날. "다녀왔습니다~"를 유난히도 힘차게 외치며 들어오는 아들을 맞이하고 도로 침대에 누웠는데, 어둠 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평온한 목소리였다. 


내 자식이 아니면 어때?
주변을 둘러 봐. 다른 애들 많잖아.
꼭 내 자식이 아니어도 괜찮아.

 

눈에서 뭔가 비늘 같은 것이 스스륵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정말 있었다. 거기에. 다른 집 아이들이. 중학교 때부터 시나리오를 쓰고 열심히 영화를 만들며 감독을 꿈꾸 이웃집 아들이, 작년에 그 어렵다는 의대에 들어가 열심히 수련 중인 동창생의 딸이, 손흥민처럼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어 유럽의 대저택을 엄마에게 사주겠다는 친구의 야무진 아들이 있었다.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내 이웃의 아들 딸들이 있었다. 그들은 늘 내게 좋은 이웃이었다. 내가 부탁하면 언제라도 달려와, 뭔가 더 도와주지 못해 안달 할 만큼, 좋은 이웃. 죽을 때까지 함께 삶을 나눌, 좋은 친구이자 그들의 자식들이 바로 내 곁에 있었다. 그러니


꼭 내 아들이 영화감독이, 의사가, 축구선수가 되지 않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조금 늦을 뿐. 아직 내 아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들 보다 못한 것도 아니었다.


내 아들을 비추던 앵글을 뒤로 주욱 당겨 보았더니, 거기, 수많은 내 이웃의 자식들이 있었다. 내 아들만 쳐다보느라 놓쳤던 수많은 이웃들의 소중한 꿈과 노력과 수고들이 보였다. 내 아들에겐 차마 보낼 수 없었던 어떤 종류의 응원을, 오랜 시간 달려온 그들에게는 진심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백만 송이 꽃들이 함박눈처럼 살포시 내 마음으로 내려와 앉았다. 냉동고 한 쪽에 서려있던 성에 한 두 조각이 슬쩍 녹아내리며 오랫동안 얼어붙었던 마음 한 구석을 따듯하게 녹여주었다. 나를 붙들던 욕망들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내 아들만 오롯이 바라보던 그 렌즈를 뒤로 당겨 더 많은 이들을 내 안에 담아내기. 그것 밖에 우리에게 다른 구원은 없다. 

이전 07화 그래봐야 남들 다 가는 대학이 아닌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