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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15. 2023

학원비 벌러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아들의 알바비가 '그깟 푼돈'이 아닌 이유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마친 아들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씩씩거렸다.  

"아놔~ 내가 대학 가기 싫다는데, 왜 자꾸 대학에 가라고 하냐고~~."


알바에 재미를 붙인 아들은 그동안 대학에 가겠다고 했던 의지를 재빨리 내려놓고, 알바에만 전념하는 중이다. 대신 졸업에 지장 없게, 고3 학년에 주어진 적절한 출결 허용치 안에서 출결 관리를 하겠다고 합의했다. 근데 알바 때문에 아들의 결석과 조퇴가 잦아지자 담임 선생님이 한 말씀을 하신 모양이었다. 대체 뭐라고 하셨길래? 하고 물어보자 아들이 말했다. 


"아이고, OO야. 그깟 푼돈 번다고 대학을 안 가겠다는 거야?"


아들이 경악한 단어는 '그깟 푼돈'이었다. 며칠만 뛰어도 2주 후 통장에 100만 원이 착착 입금되었다. 먹고 싶은 것 맘껏 먹고, 사고 싶었던 것 맘껏 사보며 나름대로 경제적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아들에게 이건 더 이상 '그깟 푼돈'이 아니었다. 알바가 저렇게 아들을 싹 바꿔놓은 게 아직도 잘 실감 나지 않는 나는 다시 묻는다. 


"아들아, 우리도 너 시험 잘 보면 돈 준다고 많이 했었잖아. 그때 기억나지? 영재학급 선생님한테 질문 한 번만 하고 오면 5만 원 주겠다고 했던 거. 네가 하도 부끄러워하니까 질문 한번 시켜보려고 그때 제안한 건데... 근데 그땐 왜 열심히 안 했을꼬?"


아들의 대답이 가관이다.


"에계계? 그땐 5만 원이었으니까 그렇지!" 


지금은 며칠만 나가도 100만 원이 넘게 번다 이거다. 한 달이면 아들 말마따나 웬만한 신입사원이나 하사관 초봉 보다 많았다. 아들의 말 같지도 않은 대답에 풋, 실소가 나오다 들어갔다. 그래, 100만 원은 내게도 푼돈은 아니다.  


2년 전. 나도 한 달에 딱 100만 원만 누가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들들이 자라며 학원비는 늘어나는데, 책이나 읽고 글이나 끄적이던 나는 도무지 수완 좋은 엄마들처럼 돈을 벌러 나갈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친구 소개로 학원의 첨삭 알바를 시작했고, 그렇게 번 한 달에 100만 원은 잠시나마 나에게 일말의 경제적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최근 이 아들 덕분에 내 생활도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들이 대학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자, 더 이상 학원비 때문에 알바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아들이 지방대라도 가게 되면, 아니 갑자기 정신 차리고 재수라고 하겠다 하면 한 달에 최소 200만 원 이상 들어갈 비용이 공중으로 붕~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건 천지개벽 까진 아니지만, 앨리스가 토끼를 쫓다 돌연 이상한 나라로 굴러 떨어진 것만큼의 균열이라 할 만했다. 아들이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면 우리는 또 등록금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을 긁어야 할 판이었다. 남편의 회사가 대기업이거나 복지가 잘된 중소기업이었다면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기뻤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들에게 대학 말고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했던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아들이 둘이니 적어도 앞으로 4년에서 7년 가까이 아들들의 교육비라는 비용을 부채처럼 마음에 안고 살게 될 거라 생각했다. 경제적 관념일랑 전무했기에 미래에 대한 아무런 대안 없이 그저 마음의 짐으로만 안고 살고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지금처럼 하던 알바를 조금 더 늘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조금 더 버틸 순 있을 거야, 하는 마음에서 그러다 혹 남편이 실직을 하게 된다면 그땐 어디 물류창고에 택배라도 하러 나가면 되겠지, 하는 그런 막연한 걱정. 그런데...


아들이 오히려 집안에 돈을 벌어왔다! 


학원비로 인해 몇 년 간 잠정적 마이너스가 분명했던 가정 경제에 돌연 반짝 빛이 들었다. 서로 애써봐야 겨우 손실을 '0'으로 밖에 맞추지 못하던 제로섬(zero-sum) 게임에서, 넌제로섬(non-zero-sum) 게임이 된 것 같달까.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행복해 지는 방식. 공부 보다 알바가 재밌다는 아들의 니즈에도 걸맞고, 우리 가정의 경제적 규모에도 무리수를 두지 않는 방식. 아들이 공부만 한다면 빚을 얻어서라도, 몸이 부서지더라도 알바를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나는 어쩌다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 돈을 벌어 온다고 좋아하는 정신나간 부모가 되어 버렸다!


나는 아직도 아들이 가져온 이 새로운 가능성과 세계관의 균열에 여전히 얼떨떨 한 중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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