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쏭마담 Nov 16. 2023

아들이 남편처럼 살까 봐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서



학원비 벌러 다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고작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구조 속에 살고 있었다. 경기도 변두리에 살면서 남들처럼 아들 둘 낳고 '달랑' 영수 학원이라도 보내려면 한달에 교육비만 150~200여 만원이 들었다. 학원비에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갈 줄 몰랐다. 


남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러니, 우리 나이 오십 쯤 되면 내가 다시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대출을 어느 정도 낀 집 한 채와, 너무 욕심만 내지만 않는다면 두 아들 학원쯤은 보내며 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남편들은 딱 먹고 살만큼만 벌어 왔다. 그래서 우리 여자들은 학원비를 벌러 다시 나가야 했다.


우리에게 모자란 것이 학원비가 아니었다면, 남편이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나이에 다시 돈을 벌러 나오지 않았을 거다. 아들 학원비 벌러 나온 친구들끼리 만나 하는 하소연이다. 강남에 사는 또래 친구들이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 아들에게 최상의 교육을 시키고, 강남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아 아들 유학을 보내고, 아들 유학을 핑계로 몇 달씩 외국에 살다 오고, 귀국하면서 우리에게 기념품을 하나씩 안겨줄 때마다 우리는 끓어올랐다. 남편이 내 친구의 남편처럼 많이 벌어다 주지 못해서. 우리가 강남에 그런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시작하지 못해서. 시부모님이 아이들 교육 시키라고 수시로 용돈을 찔러 줄 만큼 재력가가 아니어서. 그래서, 내 친구보다 더 모자랄 거 없는 내 아들은 그렇고 그런 사교육을 받고 그렇고 그런 4년제 대학에 들어가서 그렇고 그런 중소기업에서 지금 200만 원도 채 안 되는 월급을 받아, 그 돈의 반을 원룸 임대비로 내며 살고 있어서. 


그렇게 어느 순간 아들의 견적이 나와 버려서. 그 아들이 지금의 우리처럼 그렇고 그런 흙수저로 살게 될까 봐. 우리는 자주 불행하다.  

 

순수하게 사람 됨됨이 하나 보고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신혼 초. 맞벌이를 하면서도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아이가 둘이 되도록 10시 전에 집에 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주말에 설거지를 해야 하니 아기를 좀 안고 있으라고 하면 TV를 보며 졸다 아기를 떨어트렸다. 참다못한 아내가 왜 똑같이 일하고 들어오는데, 육아에 있어선 내가 늘 디폴트여야 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텅 빈 동공을 한 채 말했다. 나도 사는 게 쉽지 않다고. 밤마다 운전하며 들어오는 길이 너무 피곤해 이대로 나무에 처박혀 죽을 것 같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대한민국에서 남자가 빨리 자리 잡고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기어이 잘 나가던 아내를 집안에 들어 앉혔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남자가 아니었다면 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남자였고, 굳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남편처럼 일했으면, 나는 벌써 과로사 했을 거라고, 나는 늘 말한다. 최선에 대해서라면 나는 남편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노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있어도, 남편에 대해서라면 그럴 수 없을 만큼, 그는 자타 공인 대한민국에서 제일 열심히 일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가 말랑해지거나 내가 강퍅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10년이 후. 우리는 각각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남편은 밤낮없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지만 나이 오십이 되도록 가족이 누을 집 한 채 마련하지도, 남부럽지 않게 아들을 교육 시킬 만큼의 월급도 받아오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남편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와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봐야 지금 우리처럼 밖에 더 잘 살 순 없는 곳이라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불행의 이유가 아들의 일탈 앞에 내가 안도했던 몇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내 아들은 적어도 남편처럼 살지 않았으니, 우리처럼 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적어도 아들은 다른 선택을 했으니, 아들은 어떤 모습으로든 다른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지금으로선 이것이 내가 잡는 한 가닥 희망이다. 



이전 09화 학원비 벌러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