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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May 08. 2024

다른 방식으로 의지를 부리려 할 때마다

남편이 함께 소환되는 이유



일요일 아침. 아들이 어쩐 일인지 아침 일찍 깨어 있다. 깬 김에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한다. 늘 주말 저녁까지 알바를 하고, 또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가 자기 때문에 최근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웬일이지. 아예 밤을 꼴딱 샌 건가. 연신 코를 훌쩍거리는 게 감기기운도 조금 올라온 상태였다. 이대로 함께 교회에 가면 1부 예배를 드려야 하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2부 예배를 드리고 밥을 먹고 3부 예배 때 청년부 모임을 하고 집에 갔다가 곧바로 4시 알바를 가야 한다. 밤에 잠을 안 잤으면 피곤할 것이 분명한 스케줄. 그냥 쉬었다가 알바나 잘 가라고 할까. 그래도 본인이 가겠다잖아. 이렇게라도 안 가면 영영 청년부에 정을 못 붙일지도 몰라. 그래, 할 수 있을 때 하자. 반가운 맘과 우려하는 맘을 반반씩 안고 함께 교회로 향했다. 미리 종합감기약이라도 하나 먹어두라고 건넸지만 아들은 거절했다.


2부 예배가 끝나가는 시간. 갑자 아들에게 카톡이 왔다. 속이 안 좋다며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감기 기운에 컨디션이 엉망이라 예배 시간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렸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오늘 아침부터 잘 풀린다 했다. 3부 청년부 모임 때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라 아들이 그걸 꼭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라 점심 먹는 시간을 이용해 아들을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점심시간 이후에 나는 회의가 있어서 다시 돌아와야 했지만, 아픈 아들을 그냥 보내면 맘이 안 편할 거 같았다.


집에 와서 아들이 화장실을 편히 이용하는 동안 마루에서 대기 중이던 나는 다시 망설인다. 교회로 혼자 돌아갈까. 아님 같이 돌아가자고 말해 볼까. 이대로 아들이 집에 남는다면 아들은 오래간만에 교회에 가겠다고 의지를 부린 일이 실패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같이 다시 돌아간다면 처음의 좋은 의도를 되살릴 수 있다. 애초에 다소 무리한 스케줄이고 잠깐 틀어져 중간에 집에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바꿀 기회가 있는 거다. 말해볼까?


"아들아, 엄마 어차피 지금 회의 있어서 교회 다시 가야 되거든. 속 편안해졌으면 같이 다시 교회 가서 청년부 예배 참석할래?"


아들도 중간에 집에 다시 오게 된 게 미안했던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선뜻 따라나섰다. 예전의 나였으면 그럼 그렇지~ 하고 틀어진 일정에 그냥 항복하고 말았을 .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라 보자. 엄마인 나도 재차 제안해 보는 것으로. 아들도 나름 귀찮음을 무릅쓴 선택으로. 그렇게 우리 모두 의지를 부리는 방식으로. 작지만 작은 변화. 다시 교회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서로 편하고 익숙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로 나 홀로 기뻤다.  


각자 회의와 청년부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우리가 여느 일요일 오후처럼 침대에 널브러질 준비를 하는 동안 아들은 알바 시간에 맞춰 다시 몸을 추슬렀다. 오전부터 나름 무리했기에 몸 상태는 좀 더 안 좋아져 있었다. 그제야 종합감기약을 먹고 무릎보호대를 장착한 한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알바를 하러 출발했다. 그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 지금 바로 만월경 앞으로 와줄 수 있어? 나 턱에 걸려 넘어져서 무릎 다치고 자전거도 찌그러졌어. 여기 와서 이것 좀 가져가 줘..."


부리나케 뛰어나가보니 카페 앞에 자전거만 오도카니 서 있었다. 감기 기운에 무릎도 안 좋던 아들은 급히 달리다 휘청거린 것 같았고, 알바 시간이 늦을까 봐 자전거를 놓고 그대로 뛰어간 것 같았다.


잠도 제대로 안 잔 아들이 갑자기 교회는 왜 가겠다고 나섰는지, 컨디션도 안 좋은 데 나는 왜 또 아들을 다시 데리고 교회로 갔는지, 이럴 거면 미리 감기약이라도 좀 먹어두지 아들은 왜 또 고집을 부리다 컨디션을 악화시키고 무릎을 깼는지. 아들에 대한 염려와 후회와 원망이 또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돌아보면 무슨 일을 할 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어긋남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끝나는 것도 늘 있는 일이 아닌가. 모든 선택이 다 나쁜 결과로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실망할 만큼 연거푸 어그러진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늘 하던 평상시 선택과 조금 다른 의지도 부려보지 않았나. 그러니 조금 잘못될 수도 있지. 그런데 뭔 하늘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나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다. 정말 열악하고 몹쓸 저항력이다.


신혼 때도 그랬다. 나는 남편과 마음이 어긋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남편과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하나여야 할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할 우리가, 그렇게 신성한 결의와 축복 속에 시작한 우리의 맹세가 어긋나는 게 힘들어서. 내가 선택한 이 사람과 이 선택이 잘못된 것이 될까 봐, 잘못을 알게 된 들 바로잡을 만큼 싸울 맷집이 없어서, 우리의 맹세는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서.


어느 순간부터 아들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라면 습관처럼 내 신경도 자동으로 자주 곤두서 있게 되었다는, 그 작은 깨달음으로 끝나도 되었을 글이 오늘도 다시 나와 남편의 해묵은 태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소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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