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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구원검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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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 MAYHEM

(SF 무협 판타지)



마음속의 명령에 따라 다시 묘원장이 있는 카페테리아로 되돌아가는 초이의 머릿속은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고아원을 당장 나가려고 했는데…’


초이는 고개를 저었다.


‘내 속에 뭐가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시키는 데로 그대로 하자. 내가 국민 연예인이 될 수 있다고 하잖아.’


초이는 자신을 그렇게 위로했다. 그러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무엇에 씐듯하게 카페테리아 문 앞에 섰다.


‘스마고 뭐고 얼굴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 부모를 버리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카페테리아 문을 열렸는데 고아원 아이들 8명이 문을 거칠게 열고 나왔다. 초이는 그 바람에 밀려 바닥에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었다.  


“악!”


초이는 놀란 얼굴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초이는 순간 공포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초이의 마음속의 ‘그 어떤 것’도 뭔가 크게 동요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얘들아.. 괜찮아?”


초이는 기어가는 소리로 8명의 아이들에게 물었으나 대답도 없이 영혼도 쪼갤듯한 눈초리로 동시에 초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왜 그래?  무섭게…”


초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다크 에인절들의 언어로 한 아이가 외쳤다.


“이 영혼은 우리가 찾는 영혼이 아니다.”


“자 어서 인간계의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페이퍼 폭탄을 설치하자고!”


악마족들은 인간의 영혼 속에 스와핑해 들어가 페이퍼 폭탄을 설치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인간의 분노심이 끓어올라 영혼과 인간을 잃어버린 사이코패스 좀비로 화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엘리베이터의 문 앞으로 달려갔다. 몸은 아이였지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엘리베이터의 문을 순식간에 손으로 뜯어내자 종이처럼 찢겨 나갔다. 그리고 그 찢긴 틈 속으로 8명의 아이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초이는 그냥 놀란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뭐지?… 저건..”


그러자 초이의 마음속에 숨죽이고 있던 ‘그 어떤 것’이 속삭였다.


쿠쿠쿠쿠쿠쿠 자.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묘원장을 만나자고


초이는 다시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목소리의 명령에 따라 아무런 저항도 없이 카페테리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묘원장은 초이가 카페테리아를 나올 때와 똑같은 포즈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헉.”


묘원장을 보자마자 초이의 몸속에서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그 반발력에 10미터도 넘게 초이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초이는 비명소리를 짧게 내뱉고는 카페테리아 식탁들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초이의 몸 밖으로 나온 에너지는 공중에서 작은 입자로 모이더니 원자운동을 시작해서 순식간에 사람의 형체를 만들어갔다. 그 형체는 점점 남자의 모습으로 또렷하게 변화되었는데 남자의 몸에는 전기현상이 빠지직거리며 온 카페테리아가 환해지도록 밝혔다.


“아악”


묘원장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쓰러진 아이들과 기절한 초이의 모습 이외에 환한 남자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카페테리아가 떠나가도록 비명을 질렀다. 환한 남자의 형태는 비명을 지르면서 벌어진 묘원장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묘원장은 갑자기 입안으로 밀려든 물체에 극심한 호흡곤란을 느꼈다. 묘원장은 숨쉬기가 곤란한지 컥컥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묘원장의 온몸이 마치 간질병 환자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으아아아아악.”


긴 비명소리가 온 카페테리아에 울렸다. 비명소리가 잠시뒤 멈추고 조용한 적막이 안개처럼 내리면서 묘원장은 천천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 묘원장은 더 이상 묘원장이 아니었다.


귀검마.


귀검마는 천지가 진동하는 마공을 터트리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오래간만에 오는 인간계군.. 키키키키키키키”


귀검마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테리아의 가구들이 엉겨서 너부러진 사이에 초이의 몸도 같이 널려져 있는 모습이 귀검마의 눈에 들어오자  불쌍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쯧쯧.. 영혼도 성형수술을 한 듯 어지러운 저 작은 계집애보다 이 여자의 마음속이 남성과 여성의 영혼이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어 인간계에서 내 마공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군.”


귀검마의 마공은 남녀 양수 혼합이 된 묘원장의 몸속에 극강의 파워를 자랑하기 때문에 초이를 통해 묘원장을 쉽게 찾아 이렇게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된 데 대해 귀검마는 묘원장의 몸을 만지면서 아주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인간계와 수면계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귀검마가 이끄는 악마족들은 분노에 휩싸인 인간들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어 그 인간들의 몸을 점령하고 전 세계 모든 인간의 영혼들을 마공으로 물들여 지옥으로 다 데리고 갈 수 있게 되는 악마족의 승리가 눈앞에 바로 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흠 그나저나 구원검으로 수면 DNA지도를 찾아야겠는데.. 8명의 다크 에인절족들이 저렇게 한꺼번에 다 모여 있는데… 수면계와 인간계에  ‘수면 DNA지도’를 찾지 않고서야 8명이 이렇게 한꺼번에 나타날 수 없다. 자. 그럼 어디 있는지 8명의 에인절에게 한번 가볼까….’



귀검마는 8명이 모인 에인절족에게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마성만이 살아 숨 쉬는 귀검마의 마음속에 잠시 소용돌이가 일더니 귀검마의 공간 속에 꼭꼭 숨겨놓은 ‘태양’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귀검마의 눈에는 회한의 깊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묘원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귀검마는 손쉽게 비수와 하늘이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귀검마가 공중에 다시 나타나자 그사이 한 자리에 모두 모인 8명의 비수멤버들은 하나같이 놀란 눈으로 귀검마를 바라보았다.


“쿠쿠쿠쿠. 마공이 형편없는 다크에인절족이로구먼. 쿠쿠쿠”


귀검마와 비수간의 팽팽한 긴장감 중간에 놓인 하늘의 머릿속에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을 어떻게 탈출할지 한 가지 생각만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출발신호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하늘은 공중에 떠 있는 존재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쿠쿠쿠쿠 누가 대장이냐? 조무래기를 상대할 시간이 없으니 대장부터 나와라.”


하늘은 묘원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마치 지옥의 작은 틈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이야기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세등등하게 덤비던 비수의 몸속에서 나온 존재들이 묘원장이 나타나자 잔뜩 위축되었다는 점은 느낄 수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둘러보던 묘원장은 영혼을 빨아들일듯한 마성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한 존재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외쳤다.  


“네가 엘라사냐?”


“어… 어떻게 나의 이름을..”


“너희 하급 영혼들이 하는 이야기는 내가 천 미터 아니 더 멀리 있어도 다 꿰뚫고 있지. 쿠쿠쿠쿠쿠.”


“……….”


하늘은 유령 같은 존재들이 공중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전혀 알 아 들을 수 없었으나 이 두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절대로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점과 저 존재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점 이 두 가지였다.



귀검마는 아무도 안중도 없다는 듯 엘라사를 향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엘라사! 네가 가지고 있는 재주가 뭔가 보여 줄 수 있니? 키키키키키키”


“더러운 놈…”


엘라사의 몸에서 고아원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격렬하게 에너지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키키키키. 제법이구나. 에인절족 대장이라더니 역시 뭔가 다르구나.”


엘라 사는 눈앞에 귀검마가 나타나자마자 마치 전파를 송출하는 것처럼 미국의 도벳연구소의 브니누주인님에게 귀검마의 출현을 알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엘리사는 귀검마가 태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얕잡아 보고 덤벼들려 했으나 감지되는 귀검마의 마공이 자신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을 느끼고는 얼른 브니누에게 연락을 했던 것인데 브니누가 연락이 되지 않자 공황상태로 까지 들어가 버렸다. 귀검마는 엘라사의 마음을 통째로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마성을 지닌 고수이기 때문에 엘라사의 공포심을 감지하고 악마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비수들이 힘을 합친다면 성가실 것 같아 힘을 합치게는 내버려 두지 않고 속전속결로 하나하나씩 파멸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자 어서 덤벼라! 키키키키키 칼싸움이나 총싸움 둘 중에 너 하고 싶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한번 덤벼보라고….”


엘라 사는 자신의 날개를 통해 가지고 있는 모든 전류를 있는 힘껏 귀검마를 향해 방전시켰다.


“이얍 받아라!!”


빠지지 지지직


순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빛이 발산되며 전기폭풍이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터지자  앞산 할람 육아센터 수면빌딩 복도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하늘은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1초 만에 용수철처럼 일어나 복도출구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엘리사가 던진 마뇌를 귀검마가 아무 탈 없이 받아쳐 버리자 엘리사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공포를 느꼈다.  


‘나와 7명의 비수들이 동시에 힘을 합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귀검마는 중얼거리는 엘라사의 말을 멀리서도 똑똑히 알아듣고 귀청이 찢어질 정도의 크기로 낄낄거렸다.


“키키키키. 너의 마공을 보니 힘을 다 합쳐서 나를 공격하는 것도 재미있겠군..”


엘라 사는 공중에 손을 펼치고 혼신의 영력을 다해 외쳤다.


“엘료에내! 미야민! 베배! 하나냐! 앗나! 빈누이! 스나아! 너희들의 모든 영력을 모아다오!”


엘라 사는 온몸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뽑아내었다.


‘아… 이 공격이 실패한다면 그때는…’


엘라 사는 주인님과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라 귀검마와 이기게 되더라도 돌아갈 안락처도 어차피 없다고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었다. 엘라사 같은 다크에인절들은 주인님과 연락이 닿지 않으면 곧 자신들은 소멸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슈슈슈슈슈슈슈


퓨슈슈슈슈슈슈슈


에인절전사들의 손끝에서 나온 영력들은 엘라사의 머리 부분 한 곳에  모아져 다시 더 커다란 에너지로 엘라사의 손에 모아졌다.


우르르르르릉


엘라사의 손바닥 위의 에너지가 고아원빌딩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한 순간에 일으키자 빌딩은 굉음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우르르꽝꽝


벽이 갈라지고 천정이 무너져 내렸지만 엘라 사 와 7명의 에인절전사들 주위에는 보호막 같은 에너지 때문에 빌딩의 잔해들은 무중력 상태처럼 그들을 피해 둥둥 떠 다니기 시작했다.


“콜록콜록 먼지 하나는 거참 대단하게 일으키는군. 쿠쿠쿠쿠.”


“더러운.... 이제 최후의 일격을 받아라!”


“쿠쿠쿠쿠. 너의 최후가 될지 나의 최후가 될지. 한번 공격해 봐라.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을 테니.”


“이햐. 노령일식!”


엘라 사는 마지막 남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일곱 명의 비수전사들의 영력까지 모아 귀검마를 향해 엄청난 에너지를 품어냈다. 귀검마는 눈을 감고 에너지를 아무 저항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에너지가 귀검마의 몸에 닿자 번뜩 거리는 섬광과 함께 빌딩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완전히 공중분해가 되어 버렸다.


“키키키키키키키키”


안개처럼 흩어지는 먼지사이로 귀검마의 웃음소리가 기진맥진 해져버린 엘라 사 와 에인절전사들의 온몸을 부서질 정도로 뒤 흔들었다.


“키키키키. 방금 뭘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이 세운 빌딩이 그만 다 부서지고 말았군. 키키키키키.”


가공할 능력의 뇌령일식공격에도 귀검마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옷깃에 먼지만 털었다.


엘라사를 포함한 모든 비수전사들은 더 이상 공중에 떠있을 힘도 없는 듯 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귀검마는 비수들의 무기력함이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어댔다.


“키키키키. 그럼 내가 공격할 차례인가?”


귀검마가 두 손을 들자 비가 내리는 밤인데도 짙은 안개 같은 연기가 귀검마의 몸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리석은 너희 다크 에인절들에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열어주마. 키키키키키키”


바닥에 쓰러진 에인절들은 귀검마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오직 두려운 눈길로 귀검마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귀검마는 에인절들을 마치 최면에 걸듯 현란한 손동작을 반복하였다.


미움…

불평…

불화…

분열…

시기…

질투…

투기..

분냄…


귀검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은 보통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아니라 듣는 동시에  마음이 뿌리체 흔들기에 충분한 물리적 힘을 가진 기괴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단어가 나타내는 대로 에인절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했는데 원격조정되는 장난감인형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엘라사만큼은 그룹의 리더라 약간의 저항을 보였는데 귀검마의 입에서 ‘분노’라는 단어가 나오자 엘라사의 마음속에는 온통 분노로 가득 차버렸다.


엘라사! 너 주인은 이제 너를 버렸다. 너와 언제나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말은 다 거. 짓. 말. 이였다.


귀검마의 말을 들은 엘라 사는 분노로 얼굴색이 붉게 올라오더니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귀검마의 목소리 만으로 서로 상대의 영혼이 갈갈이 찢어질 때까지 격렬히 싸우던 비수들은 하나하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으응윽”


몸서리치듯 절규하는 비명을 지르는 엘리사를 보자 귀검마는 쏜살같이 다가와 양손으로 머리부위를 잡고 수박을 으깨듯 세게 압박했다.


“으아악.”


더 이상 영혼검의 순수한 소년이 아닌 악마 중의 악마가 된 귀검마에게 죽음의 비명소리는 마치 종교의식 속에 울리는 장엄한 음악소리정도로 들렸다.


“우우우”


귀검마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러내렸다. 인간계의 묘원장의 모습이지만 누가 봐도 악마의 얼굴을 한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크흡... 넌 구원검이 있더라도 수면 DNA지도가 없다면 아무 힘도 못 얻을 거야”

죽음의 문턱에 억지로 턱걸이를 하면서 엘라 사는 온몸의 힘을 모아 귀검마를 향해 소리 질렀다.

“뭐라고?”

“그래 아까 우리와 같이 있던 소녀에게 수면 DNA지도를 찾을 수 있는 GPS를 심어놓았다.”

귀검마는 그제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애도 무공이 대단하니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더더욱 널 살려둘 수 없구나!!"

하늘에서는 갑자기 큰 천둥소리가 울렸고 귀검마의 손에 엘라 사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

귀검마는 한참 동안을 비를 맞으며 아무 말 없이 엘젤들의 빈껍질이 뒹구는 가운데 서있었다.


다시 한번 귀검마의 마음속에 태양이 떠올랐다. 귀검마의 눈에도 검은 색깔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귀검마는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어서 수면 DNA지도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만이 귀검마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미국 도벳연구소에서 칼 스킨도박사는 신적존재였다.


그의 말 한마디면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 브니누소장이 과로사로 사망했는데 소장실의 그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은 복사기로 서류 카피 뜨는 일보다 더 쉬웠다.


칼 스킨도박사는 모든 일이 처리되는 동안 그의 유일한 취미인 컴퓨터 게임으로 집중하려고 했지만 ‘수면 DNA지도’를 손에 넣었다는 생각으로 흥분되어 맥박수가 올라가 숨도 쉴 수 없었다.


모든 컴퓨터게이머들의 꿈은 현실 같은 공간에서 게임과 주식투자를 즐기는 것인데 이제 브니누같은 수면 중독자의 도움 없이 수면계로 들어가 마음대로 게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스킨도 박사는 너무 기쁜 나머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스킨도박사는 브니누소장의 시체가 치워지고 사람들을 다 내 보낸 뒤 혼자 소장실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높은 천장이라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고대 히브리어 같은 언어로 깨알같이 적혀있는 수면지도는 고등 수학공식도 들어있는 복잡한 지도였다.


내로라하는 우성인자의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인 스킨도 박사는 브니누소장과 도벳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소장을 통해 조금씩 DNA수면지도를 컨트롤 하는 고대 히브리어를 브니누에게 배워 철저히 암기해 놓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스킨도 박사는 카메라를 꺼내 천장전체에 새겨진 수면 DNA지도를 화면 한 장에 담기도록 사진을 찍어 자신의 컴퓨터에 사진을 다운시켰다.


‘….’


70인치 대형 컴퓨터스크린에 가득 담긴 수면 DNA지도의 아름다움에 스킨도박사는 다시 한번 숨이 막힐 듯한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박사님.”


데스크에 놓인 인터콤으로 브니누소장의 수석비서장 서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거벗은 몸을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으로 스킨도박사의 얼굴을 붉어졌다. 이 계집애도 이제 이용가치는 없어졌으니 슬슬 정리해야지.

“왜 그래?”


“소장님에 대한 부검을 검찰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니의 단점은 너무 빈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빈틈없이 계산적인 여자에게 브니누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건넨 돈은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이었었다. 스킨도박사는 아마 서니가 자신이 지불한 돈으로 자신의 집보다 더 비싸고 화려한 집에 살며 럭셔리한 삶을 즐길 것 같다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뭐 죽는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죽기 전에 마음껏 누리셔야지


“이것 봐. 서니! 브니누소장은 내가 어떻게 사망했다고 했지?”


“…….”


“과로사야.”


“…….”


“그런데 경찰에서 부검하는데 몸에 과로사와 전혀 연관 없는 타박상이 발견되면 복잡해지지 않겠어?”


“……”


“그다음은 알아서 해.”


“네 알겠습니다. 찰칵”


어느 시점에서 서니를 처단할지 스킨도 박사는 인터콤을 끄고 생각했다.


스킨도박사는 게임에 강했다. 그리고 잔인했다.


다윈주의의 세상에서는 최고가 될 수밖에 없는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이제 수면 DNA지도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상 게임계 아니 수면계와 인간계의 최고가 되었다는 승리감에 참을 수 없는 흥분이 다시 몰려왔다. 혹시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주위의 모든 것들이 만만해 보였다. 서니 정도 제거하는데 드는 노력은 눈 한번 깜빡하는 것보다 쉽다고 자신했다.


스킨도박사는 다시 스크린 앞에 섰다. 웅장한 수면 DNA지도도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맛이냐 맛드내 야아 수 바니 빈누이 시므이 쎌마먀 나단 아다야…”


스킨도박사는 조심스럽게 고대유대인들의 이름을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그대로 차례로 연결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릉


스킨도 박사가 이름을 계속 부르는 동안 주위가 몹시 흔들리면서 신기하게도 스크린 속의 문자와 수학 공식들이 마치 3차원 입체 물체처럼 움직였다.


“막나드배 사새 사래 아사렐 텔레먀..”


스킨도 박사의 이마에 땀으로 물줄기가 생겼다. 온 정신을 집중하면서 이름을 외치는 스킨도박사의 몸 주위로 메뚜기 떼처럼 문자와 수학공식들이 몰려들었다. 스킨도 박사는 자신이 지금 인간계와 수면계에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귀검마가 비수들이 대결을 벌이는 동안 피신한 하늘은 수면빌딩 주위에 있는 모든 빌딩의 문을 두들겨 보았으나 철문으로 된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들이 모조리 닫혀 있어.”


하늘의 마음 초조 해졌다.  할람 육아 센터 전체가 거대한 감옥 같다니 폐쇄공포증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우르르릉


귀검마와 에인절들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굉음을 울리며 수면 빌딩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하늘에서 콘크리트 조각들이 갑자기 하늘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아슬하게 거대한 콘크리트 조각은 피했지만 바닥에 몸을 심하게 내리치며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유욱.”

하늘은 어깨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어.. 어깨뼈가 빠진 것 같아… 우.


이번에는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돌덩어리로부터 하늘은 잽싸게 돌 사이를 요리조리 신기하게 피해 빌다 문 앞에 당도했다.


“아. 문이 열려야 할 텐데.”



철컥.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하늘이 지문감식 장치에 손가락을 대자마자 하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문이 스르르 열렸다.


‘됐어! 어?’


문이 열렸다는 안도감이 체 가시기 전에 갑자기 하늘의 어깨로부터 살이 찢어지는 듯한 격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악”


하늘은 극심한 고통을 참고  열린 문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구국은 죽음의 연기가 드리워진 무법지대가 되어갔다.


신 기철형사는 반장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아 마음을 진정하려고 노력했지만 분노가 끓어올라 눈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정도가 되어 버렸다. 현직대통령이 연루된 살인사건정도는 묻혀 버릴 만한 괴기스럽고도 야릇한,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상한 분노가 자신은 물론 온 대구 시내를 안개처럼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평상시에는 의미 없이 넘긴 사무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신경을 송곳으로 찌르고 뒤트는 듯 괴롭게 들렸다. 동료 형사들이 만들어내는 아주 작은 소음도 견디기 고통스러운 소리가 되어 마치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불에 휘발유를 붓는 듯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섞여서 떠다니는 건가? 뭔가 이상해..’


신 형사는 눈을 비볐다. 자신이 혹시 꿈을 꾸고 있는지 볼을 꼬집어 보았다. 그러고 있는데, 루키 오형사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신 형사 옆에 서더니 무어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신 형사의 귓속에는 이제 단지 윙하는 소리만 나서 오 형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신 형사가 아무 대답도 없자 오 형사는 갑자기 화를 내면서 신 형사를 향해 고함을 쳐댔다. 평상시는 풋내기인 오 형사가 감히 대 선배인 신 형사에게 말대꾸조차도 할 수 없었지만 오 형사는 뭔가에 엄청나게 화가 난 듯 신 형사를 향해 달려들 듯 고함치면서 주먹으로 책상을 미친 듯이 내리치기까지 했다.


‘이 자식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오디오가 고장 나 전혀 나오지 않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 형사는 오 형사가 발작하는 모습을 그냥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였다.


‘한번 때려줄까? 아니면 전기로 기절시켜 줄까?’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 형사는 자신의 옷소매에 달린 고압 전기봉이 순식간에 꺼내 오 형사의 왼쪽 골반 위에 가져갔다. 전기충격을 받은 오 형사는 물속에서 꺼내어진 금붕어처럼 흰 눈자위를 드러내며 격렬하게 몸을 흔들더니 연체동물처럼 콘크리트 바닥에 축 늘어져 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오 형사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신 형사는 머리를 좌우로 한 번 흔들었다. 뇌의 좌우 끝에 각각 판이하게 다른 생각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러게 내가 까불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왜 내가 저 녀석에게 전기 충격을 주었지?’


신 형사는 오락가락하는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심호흡을 두어 번 크게 내쉬었다. 속도 메스꺼워졌다. 고개를 들어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연결된 인터넷으로 뉴스가 나오는데 신 형사의 눈에 이런 기사만 눈에 들어왔다.


‘등교하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10년 동안 상습 성폭행한 50대. 정신병으로 무죄판결.’


눈의 안압이 올라 마치 자신의 눈이 튀어나갈 듯한 기분을 신 형사는 느꼈다. 말도 안 된다. 정신 나간 놈이 어떻게 몇 년 동안 치밀하게 소녀들을 강간한단 말인가.


신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옆에 쓰러진 오 형사의 옆구리를 마치 그가 50대 성폭행자인 것 마냥 발로 있는 힘껏 차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아”


아무리 오 형사의 옆구리를 발로 차도 신 형사의 분노는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심해지면서 신 형사의 코와 귀에서 피가 흘렀다.


“으으으”


얼마나 오 형사에게 폭력을 휘둘렀는지 다리의 힘이 빠져 신 형사 자신도 바닥에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옷소매로 코의 피를 닦자 옷을 입은 사람의 건강상태를 알려주는 기능을 가진 재킷에서 혈압이 비정상이라며 응급조치를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신 기철 씨의 혈압이 현재 220/150입니다. 1분 안에 응급치료가 없을 시 자동으로 신 기철 씨의 현재 위치에서 근접한 병원의 응급실로 구조연락이 갑니다.”


애가 탄 재킷의 목소리는 신 형사의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신 형사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출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주위를 억지로 둘러보니 동료형사와 취조를 받던 사람들이 서로 엉켜 싸우고 있는데 성한 얼굴이 다들 아니었다. 거의 실신한 사람도 미친 듯이 양 주먹과 발로 린치를 가하는 지옥 같은 장면이 강남 경찰서 수사과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친 조카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40대 중반 구속’


동료형사의 책상을 지나가다가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속에 뜬 기사제목이 눈에 들어와 신 형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린아이를 …. 이 짐승만도 못한……으아아악.”


신 형사는 노트북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바닥에 세게 내동댕이 치자 노트북은 산산조각이 났다.


평상시 의분義憤을 잘 표출하는 신 형사였지만 산산조각 난 노트북을 발로 다시 밟는 행동은 서울 시내에 현재 일어난 폭도들이 하는 행동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신형 사는 속으로는 수없이 내가 왜 이러는지 궁금해하면서 피부가 다 찢어지도록 부수고 때리고 밟았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분리된 듯 따로 놀았다. 노트북이 먼지처럼 박살 나버리자 신 형사는 이제 손이 닿는 데로 물건이고, 가구고, 심지어 사람도 내동댕이치면서 부수고 던지고 그리고 때렸다. 마치 진화론의 적자생존의 작은 모형을 보여주는 듯 약한 모든 것들은 철저히 버려지고 부서졌다. 경찰서 빌딩은 물론 모든 거리와 빌딩마다 폭력과 분노로 흘러넘쳐났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쓰러뜨리고 나면 어디서 더 강한 자가 나타나 달려들었다. 이 모든 지옥 같은 일은 브니누소장이 수면 DNA지도를 이용해서 고아원에 에인절들을 보낸 후부터 일어난 일이었다.  




오후 스케줄로 잡힌 결혼 행사장이 폭도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을 자신의 직원으로부터 전해 듣고, 동성로의 모조 친인척 주선 업체의 대표 김 에릭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김 에릭은 오늘 은행이 문 닫는 시간까지 10억 원을 현금으로 입금시키지 못하면 채권자들의 손에 자신의 온몸이 모조리 해체되어 그의 장기들은 해외로 자랑스럽게 수출될 것이라고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 결혼식이 갑자기 취소되지 않을 거 아니야?”


김 에릭은 소식을 전해준 직원에게 호통을 쳤다.


“그게.. 저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왜 말을 더듬거려..”


김 에릭은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앳된 얼굴의 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도록 큰 소리로 다그쳤다.


“사장님. 지금 뉴스를 보세요. 대구시가 미쳤어요.”


“뭐? 대구국의 대구시가 미쳐?”


“다들 미친 사람들처럼 길거리에서 부수고 때리고 난리가 아니라고요.”


김 에릭은 얼른 벽에 걸린 컴퓨터모니터를 켰다. 화면에는 뉴스속보라는 자막과 함께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모니터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뭐야? 저것들은?”


화면에는 대구 동성로로 보이는 곳에 자동차가 박살 나서 연기가 타오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길바닥에 넓려 져 있는 장면이 나왔다.


“사장님. 다 미친 거예요. 엉엉”


직원은 갑자기 울면서 절규했다. 김 에릭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감정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각종 행사에 가짜 하객이나 손님들을 제공해서 돈을 버는 그가 큰돈이 들어오는 오늘 결혼식 행사를 못하게 되어 큰일 났다는 생각과 함께 차라리 대구시내의 폭도들로 대한민국 전체가 이번 기회에 확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동시에 김 에릭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인터넷으로 미성년자를 성매매하다가 악명 높은 전문 협박범에게 재수 없게 걸려 돈을 상납 못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하늘과 땅이 뒤집어져야 자신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김 에릭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래. 이 기회에 모든 것이 뒤집어져야 한다고. 하하하”


김 에릭이 웃기 시작하자 그의 옆에서 두 눈과 두 콧구멍에서 신체의 물을 죄다 흘리던 직원은 김 에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뭘 봐?”


웃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거슬린 김 에릭은 직원을 노려보았다.


“아저씨는 저게 재미있으세요?”


“뭐 아저씨?”

평상시 살살거리던 직원이 목소리의 톤을 지하 20미터 정도 낮춰 자신을 아저씨로 부르자 어이가 없어진 김 에릭은 직원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도 미친 거 아냐?”

“놔요. 이거.”

직원은 야멸차게 김 에릭을 손을 뿌리쳤는데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김 에릭은 그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야야”

평상시 좋지 않았던 허리였는데 엉덩방아를 심하게 찧자 정신이 확 나갈 정도로 고통이 꼬리뼈에서 시작해 뒷덜미까지 지르르 흘러 김 에릭은 비명을 냅다 질렀다.

“으으으으”

“아프지. 아플 거야. 그러나 네가 그동안 나를 못 살 정도로 아프게 한 것에 비하면 새발이 피지.”

김 에릭은 고통에서 몸을 뒤틀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직원의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으아아아아아악”

자신을 바라보던 직원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나 좀 전에 허리의 통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이 밀려와 김 에릭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야 말았다.




오 풍숙 씨의 남편 광 팔남은 아내 몰래 인터넷으로 미성년자와 채팅을 해 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생상담이니 멘토가 되어준다는 식으로 접근을 해서 상대가 확실한 미성년자라는 것이 증명이 되면 그때부터 성매매를 시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겉으로는 멀쩡한 40대의 중년 사업가로 보이는 광 팔남의 마음에는 오로지 소녀들의 귀여운 모습들로만 가득 찬 롤리타신드롬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정신과 치료가 절실한 환자였다.


한국의 저출산의 결과로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면서 광 팔남이 원하는 어린 소녀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희소성을 가지게 된 어린 소녀들을 인터넷에서 찾으면 광 팔남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흥분이 되어 심장이 멎을 정도였다. 사는 것이 지겨울 정도로 무료한 삶을 보내다가 우연찮게 만난 동창 친구들의 꾐으로 처음 미소녀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광 팔남은 어린 소녀들에게 중독된 것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미소녀들에게 선물을 하려고 인터넷결재로 소녀들이 좋아하는 명품들을 사들이다가 결국 아내 오 풍숙에게 발각이 되었다. 발각이 되는 동시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압수당했다.


결혼 전까지 역도국가대표였던 아내의 친정은 한국 굴지의 대재벌이라 '힘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애초에 아내에게 눌려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만 미성년자 성매매까지 들켜 더욱더 아내로부터 감시와 서러움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잘하는 건 눈곱만큼도 없더니 이제 어린 계집애들을 꼬드겨?”


노발대발한 아내는 광 팔남을 1박 2일 동안 구타하고 집안에 감금시켜 가두었다.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만큼 광 팔남의 마음은 더욱더 미성년자 소녀들에게 빠져들었고 아내가 절대로 눈치를 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채팅을 하는 방법을 노력 끝에 발견해서 다시 채팅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간 채팅을 하자 아내의 감시가 느슨해지는 순간이 왔다.


“6개월이 넘었잖아. 바깥공기도 좀 쉬어야지 죽을 것 같아. 정 의심스러우면 같이 외출할래?”


“내가 미쳤어? 너 같은 것하고 바깥에 나가게? ”


아내는 요즘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광 팔남에게 순순히 외출을 할 수 있는 허락을 내줬다. 광 팔남은 좋아서 방방 뛰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억제하고 방으로 들어가 바깥 날씨가 어떤지 인터넷으로 뉴스에 접속했다.


‘으히히히. 이빨로 다 요리해 놓았으니 하나 불러내어 속전속결로 해치워야지.’


광 팔남은 웃고 싶었지만 아내에게 들킬까 봐 안면 근육조차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으니 가까스로 진정이 되었지만 얼마나 참았던지 광 팔남의 이마에는 한줄기 땀방울이 또르르 흘렀다.


‘어? 그런데 대구시가 왜 이래?’

날씨를 보려다 무심결에 뉴스속보를 들여다보니 대구시 분위기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대구시 거리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보였고 사상자는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라는 다급한 뉴스앵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대체.. 뭐지…”


처음에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로 착각할 정도로 생경스런 광경이 화면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대구 시내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과 여러 명이 한 명을 중간에 놔두고 집단폭행하는 장면이 그대로 뉴스로 방영이 되는데 보고 있던 광 팔남까지 공포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뉴스 자막을 통해 생방송으로 벌어지는 폭력사태가 광 팔남의 집에서 불과 차로 5분 거리밖에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한 광 팔남은 아내와 아이들을 어서 대피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방 문을 열고 아내가 있는 서재로 갔다. 가족사랑이 남다른 광 팔남은 가족들을 폭도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아내에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겠다고  말하려고 보니 서재의 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조용히 다가가 서재 안을 들여다보았다.


“오호호호. 오빠 왜 그래?”


아내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누군가와 화상채팅을 하고 있었다.


“그런 거 시키지 마. 부끄럽단 말이야.”


모니터가 아내의 몸에 가려져 모니터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아내가 어떤 남자와 굉장히 즐겁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광 팔남은 느낄 수 있었다.


‘누굴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서재 안으로 들어가 아내의 뒤에 서서 가려진 모니터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순간 광 팔남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뭐야? 이거? 영감탱이 아냐?”


아내가 자신의 나이보다 30살은 더 들어 보이는 영감과 희희낙락하는 꼴을 보니 광 팔남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아니? 당신 외출 안 했어?”


오 풍숙은 언제나 위풍당당했지만 오늘은 뭔가 크게 들킨 듯 약간은 말꼬리가 흐려지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당신… 뭐 하는 거야?”


“미쳤어? 부들부들 떨면서… 이제 몸에 풍이 오는 모양이지? 흥.”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잠깐 오 풍숙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모니터를 껐다.


“당신.. 어떻게 늙은 영감과…”


“뭐.. 늙은 영감? 당신보다 백배 천배는 나은 사람이야!”


평상시 같으면 나 죽었네 아내의 바가지에 기에 꺾여버렸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광 팔남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화산폭발하듯 솟구쳤다.


“뭐? 백배, 천배는 낫다고?”


“저리 비켜. 할 일 없으면 계집애들이랑 채팅이나 하든지.”


문지방에 서있던 광 팔남은 서재를 나가려는 아내의 힘에 튕겨나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꼴 사납게 넘어졌다.


“이게…. 더는 못 참아! 너 죽고 나 죽자…. 으아아아아아아악”


광 팔남은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오 풍숙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오 풍숙은 남편에게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살의를 느꼈다.




경북 고등학교의 짱은 단연  마 금수라는 학생이었다. 애당초 탯줄을 끊고 엄마 뱃속에서 나온 이래로 선한  일이라고는 한 번도 하지 않기로 작정한 아이였다. 생후 6개월부터 뽀뽀하는 엄마의 입술을 깨물을 정도로 잔인했고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주위의 아이들과 매일 싸움박질을 해댔는데 싸움이 궁지에 몰리면 언제나 자신의 손가락으로 상대방 아이의 눈을 쑤시는 비열한 방법으로 싸움에서 이겼다. 점점 자라면서 마 금수는 아무도 못 말리는 싸움꾼이 되었고 그의 악랄함에는 모든 아이들이 공포로 치를 떨었다. 최근 마 금수는 자기의 똘마니들을 시켜  캠코더로 자신이 싸움하는 실제 장면을 찍어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돈을 버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단순히 싸움에서 이겨서 그 기념으로 동영상을 올려놓았을 뿐인데 나중에 보니 그 동영상을 올린 사이트의 조회수가 장난이 아니었었다. 마 금수는 자신의 부하 중에 컴퓨터를 잘 다루는 아이를 시켜 그 동영상을 유료 화 시켰다. 실제로 뼈가 부러지고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라 검열과 단속이 심했지만 그 정도 따돌리면서 동영상을 올리는 일은 숨을 쉬는 일보다 더 간단한 일이었다. 동영상에 대한 입소문은 후에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가 늘어났고 동영상의 조회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고등학생의 나이지만 마 금수의 주머니에는 수십억 원의 돈이 모였다. 돈이 쌓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자신의 잔인한 영상에 그렇게 열광하다니 마 금수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있으세요? 니콜 씨?”

대구시가 분노로 뒤덮여 있는 동안 마 금수는 고등학교 뒤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서 만만한 친구하나를 데려놓고 최근에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고백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마 금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유독 나이 어린 여자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어색해. 초등학교 1학년한테 시간 있으세요 묻다니.. 어떻게 생각해?”


“… 예?..”


괭한 눈빛으로 친구는 마 금수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이 나는 심각한데…. 맞고 싶어?”


“… 미안.. 해요… 잠시 딴생각한다고…”


“어린애들한테 뭐라고 말하면 좋겠어?”


“… 정말 모르겠어…”


마 금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마 금수에게 저 자세 아니면 두려움의 눈빛으로 대했다.  자기에게 모두들 거리를 두고 있어 마 금수가 철없는 어린 소녀들에게 더욱더 집착하는지도 몰랐다.  어린 소녀들의 발랄함도 마 금수가 소녀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풋풋한 아이들의 비린내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마 금수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게 만들었다.


“그런데…두 목….”


“뭐야?”


잠시 흐뭇한 환상에 젖어 씽긋 거리는 마 금수에게 그의 친구가 더듬거리면서 말하자 마 금수는 버럭 화를 냈다.


“저 아이들이 지금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데..”


마 금수는 친구의 떨리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언덕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떼거지로 뭐야? 저것들은?”

경북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수십 명의 아이들이 떼를 지어 천천히  언덕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마 금수는 동물적 직감으로 자신을 향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마 금수에게 얻어맞았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덤벼 들기 위해 다가온다고 마 금수는 확신했다.


“병신들. 너희 같은 놈들은 천명 만 명이 다 와도 한 손으로 박살 낼 수 있어!”


마 금수가 친구가 서 있던 자리를 돌아보니 벌써 옆에 서있던 친구는 어디론가 줄행랑을 쳐 사라지고 없었다.


“뭐 있어봤자. 믿을 놈도 아니니까.”


어느 틈엔가 수십 명의 아이들은 마 금수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서 마 금수를 원형으로 빙 둘러쌌다. 천하의 싸움꾼 마 금수의 마음에 왠지 모르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흐흐. 살다 보니 별 일도 다 있군.”


“…….”


아이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마 금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자. 어느 놈부터 박살을 내줄까? 너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가 자신을 엄습하자 더 허풍스럽게 마 금수를 한 아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


역시 아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마 금수가 그 아이의 눈을 들여 다 보니 토끼의 눈알처럼 빨갛게 충혈이 되어있었다. 속으로 소스라치면서 모든 주위의 아이들의 눈을 보니 다들 토끼눈처럼 빨갛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다들 눈깔이 왜 그래? 약 처먹었니? 아니면 지금 무서워서 울려고 그러냐?”


“………….”


“킬킬.. 그래 맞아. 다들 울고 싶지? 무서워서..”


마 금수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비웃었다. 그러나 마음은 오줌이 나올 정도로 무서웠다.


“다들 말은 하기 싫은 모양이니 어서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마 금수는 두 주먹을 권투선수처럼 모으고 자세를 잔뜩 낮추었다. 평생을 이골이 날 정도로 싸워왔지만 이처럼 많은 상대와 대결하기는 처음이라 긴장감의 줄을 팽팽하게 잡아매었다.


“자.. 덤비라고. 너희 들이 모여봤자. 개미떼들이지. 다 밟아 죽여주마. 자 어서 덤벼.”


그르르르르르


크아아아악


마 금수의 고함에 잔뜩 성난 늑대 떼들처럼 아이들은 으르렁거렸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분노가 마 금수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생생하게 불타올랐다.


아이들은 한꺼번에 마 금수에게 달려들었고 마 금수는 오늘이 세상에서 숨을 쉬는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쏜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하늘은 극심한 통증이 탈골된 어깨에서 흘러나와 자기도 모르게 크게 비명을 질렀다.


“으으으으악”


다리에 힘이 풀려 자신도 모르게 하늘은 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늘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복도가 입 벌린 뱀처럼 펼쳐져 있었다.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이 도망쳐왔는데, 현재 서 있는 곳은 조금 전의 난리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쥐 죽은 듯한 적요함이 싸인 장소라 하늘의 머리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한 손으로 하늘의 허리를 감았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복도에 늘어선 문들 중에 열린 곳으로 하늘을 급하게 끌고 들어갔다.  


얼떨결에 끌려들어 간 어두컴컴한 사무실 안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늘이 구나”


“박사님.”

검은 그림자가 점점 어둠이 눈에 익으면서 박 지원박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박사님. 어떻게 된 거죠?”


박사는 아무 대답 없이 인자한 미소로 이 형사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어서 여길 피하셔야 돼요.  바로 옆 건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악...”

"왜 그래?"

"도망치다가 어깨를.. 어깨가 빠진 거 같아요"


바로 그 순간, 박사의 양손이 하늘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탈골된 어깨가 바로 맞춰지는 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울러 퍼졌다.


박사는 떨면서 서 있는 하늘의 어깨 위에 담요를 얹어주면서 구석에 놓인 의자에 하늘을 앉혔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통증이 거짓말처럼 하늘의 어깨에서 사라졌다.

하늘은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였다.


“박사님 일단 어디에서 도망쳐야 할 것 같아요”


“소용없는 일이야”


“예?”


“지금 대구 시내는 영혼이 나가버린 사이코 패스 좀비 인간들로 가득 차 아비규환을 방불케 된 상태네. 우리가 있는 이 도벳수면연구소가 가장 안전한 곳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리고 자네가 좀 전에 본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은 수면계와 인간계에서 설치고 다니는 다크에인절들과 악마조무래기니까 우리한테 달려들지 않은 이상 신경 쓸 필요 없고.. 다른 곳에는 다친 데가 없냐? ”


박사는 소매에 달린 첨단 의료장비인 미니 CT촬영기로 하늘의 온몸을 스캔하였다. 스캔을 하던 박사의 눈에 순간 빛이 났다.


“에인절? 악마? 아니 요즘 같은 첨단 과학시대에 박사님이 그 무슨 말씀이죠? ”


하늘은 박사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함부로 난자와 정자를 바이오 엔지니어시켜 아이들을 부모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들고 멜라토닌 걸이니 그러면서 수면계의 쾌락을 즐기려던 어른들이 이제 벌을 받게 된 거야.”


박사의 어깨는 힘없이 축 쳐졌다.


눈물을 흘리는 박사의 목소리는 너무나 애절했다.


“이제부터 하는 내 이야기를 듣고 부탁하나 들어주게.”


“부탁이라뇨?”


“이 노인의 간곡한 부탁이니 반드시 들어주어야 해.....”


비장한 공기가 하늘과 박사의 사이에 흘러들어왔다.


“현실세계와 수면세계, 그리고 영혼의 세계 사이에 있던 경계가 완전히 뒤틀어지면서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분노와 죄악의 악령들이 그들이 원하는 순결한 영혼을 찾아 미친 이리떼들처럼 발악해 대며 거리에 흘러넘치고 있어. 그걸 막을 힘은 아무것도 없어.


우성인자만을 위한 다윈주의에 물든 과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왜 나는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연약하고 아무런 힘이 없는 영혼 하나하여가 소중한 것이고  모든 영혼 하나하나가 이 세상을 버티는 서로의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정말 슬프네.. 모든 것을 잃고 나서 깨닫다니 정말 슬프네..”


하늘은 박사가 도대체 지금 누구에게 하소연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도저히 박사에게 질문을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박사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죽음을 앞둔 노인의 마지막 유언 같았다.


박지원 박사의 어릴 적 꿈은 천문학자였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망원경을 꺼내 놓고 천공 속에 뜬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렸었다. 망원경 속에 보석같이 빛나는 별 하나하나 속에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상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혼자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는 공상도 남몰래 즐겼었다. 왜소한 체구에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던 박지원 박사는 언제나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의 관심밖에서 조용히 자신의 자리만을 지키는 생활을 했었고 박지원 박사도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별을 보면서 공상 속에 빠져 드는 시간도 길어져 갔다.


박지원 박사가 만든 공상 속의 세계는 ‘드림킹덤’이라고 자신이 이름 붙인 곳이었다. 드림킹덤 속에서는 박지원 박사가 세상을 만든 조물주로 칭송받았다. 드림킹덤 속의 모든 식물들은 박지원박사가 원하는 모양과 색깔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동물들도 박지원박사에게는 순하게 재롱을 부렸다. 박지원박사는 동물 중에 강아지를 좋아했는데 드림킹덤 속의 모든 네발 달린 짐승들은 몸집만 다를 뿐 다 같은 강아지였다. 드림킹덤에는 박지원 박사가 말하는 데로 생명체가 태어났고 박지원 박사가 저주를 부으면 생명체는 존재를 감추었다. 박지원박사가 드림킹덤의 공상 속을 헤맬 당시에는 다윈주의가 완전히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기에 우성이든 열성이든 어느 정도 모든 인간의 영혼에 대한 존중심은 남아 있었고 ‘종교심’도 제한적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에 대한 경외심도 존재하였다.


박지원박사는 처음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에 대해 어느 이야기꾼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했는데 ‘드림킹덤’ 속의 동식물이나 존재들이 따분해지고 지겨워질 무렵 어느 한순간에 세상을 만든 ‘조물주’의 존재를 순식간에 믿게 되어 버렸다.


‘종교인들이 말하는  조물주가 분명 살아 존재하는 것이 분명해.’


그 이유는 자신이 ‘드림킹덤’이라는 세상을 만들어보니 이렇게 금방 따분해져서 다 멸망시키고 싶은데 반면에 자신이 숨을 쉬며 존재하는 이 세상이 아직도 그나마 존재하는 것을 보면 자신과 같은 인간과는 다른 그 어떤 존재가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사랑’을 베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박지원 박사가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생이 되면서 차츰 이성에 눈을 뜨면서 ‘사랑’에 대한 막연하나마 분명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성격 탓에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는 말 한마디도 건넬 수 없었지만 자신의 ‘드림킹덤’에서는 모든 소녀들을 만들어 거느릴 수 있었다. 공상 속에서 그리고 자신이 잠든 수면 속에서 사랑하는 소녀들과 즐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박 지원박사는 자신의 이 달콤한 세계를 실제 존재하는 세계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뇌과학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박 지원 박사는 태어날 때부터 우성형질의 부모들로부터 뛰어난 두뇌를 물려받았으므로 뇌과학에 무섭게 파고들자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뇌과학의 전문가가 되었고 한국최고의 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어 ‘뇌과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뇌과학의 최고권위자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석학이 되어서도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이 세상이 누가 만들었거든 자신도 그 엄청난 존재가 만든 뇌의 활동을 과학적으로 밝혀내어 자신도 자신만의 어릴 적 ‘드림킹덤’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의 어느 학술 세미나에서 유태계 브니누 소장을 만나게 되었다. 세미나 강의를 듣는데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된 브니누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가 수면 속의 세계를 현실화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의 이야기가 황당하게 들렸지만 이야기를 깊게 나누는 동안에 그가 실제로 자신이 수면세계 속에 들어가는 ‘수면 DNA지도’를 발견했고 원한다면 그 수면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겠다는 말에 박 지원박사는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때 경험한 수면세계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어.”


박지원박사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늘은 묵묵히 박지원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잠시 희열이 스쳐 지나가더니 다시 그늘이 내려앉았다.


“수면세계가 도대체 뭐죠?”


“모든 사람이 잠잘 때 꾸는 꿈의 세계지.


“과학적 증명만으로 인정되는 눈앞에 존재하는 세계와는 반대되는 건가요? 아니 뭐죠? 이게”


박사는 아무 대답 없이 하늘을 환자제압용 키트를 가져와 하늘을 강제로 앉혔다.


"왜 이러세요?"


박사는 방 한쪽에 있는 의료유니트를 가져와서 하늘의 머리에 씌웠다. 박사가 가져온 하얀색의 의료유니트는 루빅스 큐브 같은 모양이었다. 박사는 침착하게 의료유니트의 여섯 개의 각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면에서 나온 여러 가닥의 전선줄을 하늘의 머리에 가져갔다. 전선줄이 하늘의 머리끝에 닿자 신기하게도 머리카락과 전선줄이 한가닥으로 이어졌다.


“지금.. 뭘 하시는 거죠?”


“미국의 도벳수면연구소의 슈퍼컴퓨터에 중추신경을 연결시키는 걸세. ”


“연결하면요? “


하늘은 아직도 박사가 의심스러웠다.  초이를 비롯한 어린 소녀 개인 연예인들과 퇴폐적인 쾌락에 빠져 지내던 박사의 모습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중추신경이 연결되면 엄청난 무공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을 거야.”


“그래서요?”


“….”


하늘은 빠르게 움직이는 박사의 팔을 붙잡았다.


“박사님. 잠깐 멈추시고 지금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박사는 잡힌 손을 야멸차게 뿌리치고 아무 대답도 없이 열심히 의료유니트만을 만졌다. 그러나  묵직한 총이 장전되는 소리가 박사의 머릿결에 들리자 동작을 멈추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박사님 죄송합니다. 지금 하시는 일을 멈추시죠.”


하늘은 도망치면서 비수들 중에 흘린 권총을 하나 챙겨가지고 있었는데 그 총을 주머니에서 박사의 머릴 향해 겨누었다.


“넌 우리가 있는 인간 세상이 지금 얼마나 위험에 처해진지 모르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을 멈추시고 저를 설득해 주십시오. 오늘 밤 저는 도저히 상상도 못 한 일을 겪었습니다.”


“너의 무공이 업그레이되면 너의 영혼을 악마족들이 아주 좋아할 거야 널 바쳐서라도 인간세상을 살려야겠어!”


“예? 악마족?”


하늘이 어이없는 얼굴로 박사를 바라보는 순간 마치 천지가 무너지는 듯하게 빌딩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우르르르릉


“으악.. 뭐.. 뭐야???….”


쨍그렁


벽에 달린 커다란 유리창들이 산산이 깨어지면서 검은 물체 여러 개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하늘은 키트에서 날아올라 검은 물체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뭐야?”


우르르르르


그르렁 거리는 검은 물체가 처음에는 커다란 몸집의 사나운 개 같은 동물로 판단했으나 어두움에 눈이 점점 익숙해지자 검은 물체는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우르르르르


“뭐야? 저것들은?”


“내가 이야기했지 좀비같이 혼이 나가버린 인간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파괴와 살인을 일삼고 있다고.. 저게 바로 그 인간들이야.”


어이없어하는 하늘의 등 뒤에 서서 박 지원박사는 속삭였다.


“마치 무슨 짐승 같은데요.”


“영혼의 공간에 사악한 분노의 악령들이 들어가 버렸으니 짐승과 마찬가지지.”


우르르르르


우르르르르


그르르르


하늘과 박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인간 떼들의 눈은 다들 빨갛게 충혈되어 마치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당장 방아쇠를 당기고 싶었지만 저렇게 변하기 전에는 자기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생각이 손끝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박사님! 저것들을 어떻게 하죠?”


“드디어 수면계와 인간계의 모든 경계는 허물어진 것이야. 영혼을 순수하게 지켜내지 못한 모든 추악한 영혼의 인간들은 허물어진 경계틈에서 나온 악마족들의 먹이가 되어 저런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한 거야.”


우르르르르


“아참.. 박사님은. 강의는 나중에 하시고.. 당장 저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셔야죠!”


순간,


으르렁 거리던 인간 떼들이 동시에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하늘은 반사적으로 다가오는 한 인간의 머리를 힘껏 돌려찼다.


컥 으아악


대나무가 뒤틀려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방안전체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가득 찼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늘은 자신의 발차기 솜씨를 대견해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박사님 보셨어요? 내가 한 놈 무찔렸다고요. 엉?”


하늘이 박사를 돌아보니 어느새 3명의 짐승 같은 인간들이 박사에게 들어붙어 박사를 바닥에 엎어놓고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다.


퍽퍽


퍽퍽


“아니.. 저것들이.”


하늘은 손에 든 총을 공중에 대고 한 발 발사했다.


탕!


한 발의 총소리였지만 밀폐된 듯한 좁은 사무실 공간이라 총을 쏜 하늘도 놀랄 정도로 큰 소리로 울렸다.   


그르르르르


박사에게 린치를 가하던 인간들은 총소리에 그제야 하늘이 서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늘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인간들의 이빨사이로 흘러내리는 소름 끼치는 으르렁거림은 심장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극심한 공포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단지 뭔가 극심한 분노로 일그러진 것 이외에는 다들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알 수 없는 공포심이 하늘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머리카락이 죄다 솟구칠 것 같았다.      


“더 다가오면… 쏜다…”


떨리는 목소리로 총구를 겨누고 하늘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탕!


탕!


다가오는 인간들의 얼굴이 모두 다 진혁의 얼굴로 오버랩되었지만 하늘은 손에 든 총을 미친 듯이 쏘아댔다.


“제발.. 제발..… 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하늘의 두 눈에 이슬방울이 맺혔다.


하늘이 쏜 총알에 2명은 쓰러졌지만 나머지 한 명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크아아아아악..


순간,


박사가 연결한 머리카락에서 엄청난 무공이 다운로드되어 하늘에게 들어가자  하늘은 번개 같은 동작으로  짐승인간의 공격을 피했다.



우르르르르



우르르르


하늘도 앞에 서 있는 짐승인간을 향해 사무실 안에 폭풍이 일 정도로 짐승인간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짐승인간은 하늘에게 기가 약간 눌리는 듯하더니 더욱더 힘을 내어 괴성을 질렀다.


크아 아아아 아


크아 아아아 아


하늘과 짐승인간은 동시에 공중에 날아올라 불꽃을 튀기듯 격렬하게 맞붙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만큼 결투도 순식간에 결과가 나버렸다.

짐승인간은 애당초 하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고아원 건물에서 기다시피 하면서 벗어난 초이는 건물의 입구철문을 향해 마치 실성한 듯이 달려갔다. 도중에 몇 번이나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가 나는 데도 초이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그냥 계속 달리기만 하였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자신이 몇 시간 전에 고아원 안에서 겪은 무시무시한 일에 대한 공포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도.. 대체.. 뭐야? 무엇이 내 몸에 들어왔다 나갔다 한 거야?’


자신의 몸에 무언가가 들어와서 지배할 때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손과 발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때 그 기분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 기분이 언짢았다.


속이 갑자기 메스꺼워지는 것 같았다. 초이는 고아원을 벗어나 큰 대로를 향해 멈추지도 않고 뛰는데 뒤는 절대로 돌아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가 자신의 목뒷덜미를 꽉 잡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헉 헉 헉헉헉   


숨이 가빠왔다. 주위의 산소가 모조리 없어진 것 같았다.


순간, 강한 에너지가 갑자기 초이의 몸을 내려쳤다.


“악”


짧은 비명이 입 밖으로 나오면서 공기가 전혀 없는 무중력의 우주공간에 떠있는 기분이 든다 싶더니 순식간에 몸을 바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초이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면서도 성형수술을 한 자신의 얼굴이 혹시 다치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이것 봐라. 오늘 횡재했는걸.”


“야 여자아이인데..”


“연예인 아이돌 같은데.”


서너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 있어도 썩은 영혼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머리가 아파오는 ‘장기 체취꾼 Internal Organs Gatherer ’들이 자신들이 설치해 놓은 덫에 넘어져버린 초이 곁으로 어슬렁어슬렁 모여들었다. 이들은 대구시내 우범지대를 장악하고 밤늦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납치, 폭행하여 산체로 장기를 척출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다.


대부분의 장기들은 헐값에 팔려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


“내 블로그에 연예인 장기라고 올리고 경매시키면 돈 좀 벌겠는데 낄낄..”


4명으로 구성된 꾼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커 보이고 험상굿은 인상이 게걸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대부분의 장기체취꾼들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연예인들을 파파라 칭하거나 스토킹 하고 있었다. 개인 연예인들이 나올 정도로 연예인이 한국에는 너무나 많아 연예인을 배출하는 기획사들은 은근히 자신이 관리하는 연예인들의 인기가 올라가게 하기 위해서 소속연예인들을 상대로 파파라치나 스토킹 하도록 묵인하였다.


단순히 연기나 노래만 해서는 심한 경쟁 속에서 인기 연예인이 될 수 없기에 연예기획사들은 되도록 엽기적인 방법으로 소속 연예인들이 괴롭힘을 받도록 파파라치나 스토커를 고용하기도 하였다. 돈이라면 사람의 장기까지도 척출하는 장기체취꾼들에게 연예인 하나 괴롭히는 것은 식은 죽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귀신도 속일 정도로 감쪽같은 솜씨로 연예인들을 뒷조사해서 경악스러운 수준의 내용들을 선별해서 자신의 블로그에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올렸다. 그러면,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벌 때처럼 블로그에 몰려들고 기획사에서는 적당한 시기에 사진이나 동영상구입의사를 타진해 들어왔다.


가격흥정이 이루어지면 업로드한 사람은 돈을 챙기고 기획사에게 파일을 넘기는 식으로 돈을 벌게 되는데 기획사는 자신이 투자한 연예인의 인기가 올라가는 확실한 방법으로 이 방법을 택하였다.  


“그러게 말이야. 흐흐흐. 귀엽게 생겼어? 너는 무슨 연예인이야?”


몸이 비쩍 마른 건조한 목소리가 앉아서 떨고 있는 초이를 발로 걷어차면서 물었다.

“대답 안 하면 얼굴을 성형수술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을 거야.”

“전.. 신인 연예인…이예요.. 개인연예인 같은….”

초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개인연예인?.. 그게 뭐야?”

“거 있잖아. 돈 많은 꼰대나 개인파티 같은데 불려 가는 연예인들..”

“오호. 그래? 그런데도 저렇게 이쁘게 생겼어? 성형수술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아.”

입에서인지 영혼이 썩는 냄새인지 초이는 4명의 꾼들에게 풍기는 냄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아원에서는 일하지 않는 건데.. 돈 좀 벌어보려다가…무슨 꼴이람.’

초이는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이젠 너무 늦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초이의 마음이 차분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저런 신인 연예인의 것을 블로그에 올리면 돈을 벌 수 있긴 하나?”

“힘들 거야. 대부분 블로그에 조회수가 많이 들어오는 연예인은 기획사가 빵빵한 일류급 연예인이어야 하는데 개인연예인 같은 신인연예인은 기획사들이 언제나 패기처분할 수 있을 정도로 차고 넘치니까 돈을 많이 안 쓰려고 하지.”

“그럼 당장 저 계집애 신장이나 빼자.”

엽기적이고 무시무시한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초이의 머릿속에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스쳐갔다.

“… 저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입 닥치지 못해 지금 중요한 회의를 하는데 어디라고 감히 끼어들어?”

험상굿은 인상이 더 험상굿은 얼굴로 초이를 노려보는데 건조한 목소리가 험상궂은 인상을 막아서면서 초이를 내려보며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한번 들어보자고.. 죽기 전에 유언인데 함 들어보자고..”

“하기야.. 그래 말해봐.”

“저는.. 나이 어린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이 몰려있는 장소를 알고 있어요.”

초이는 장기 체취꾼들에게 고아원의 아이들을 팔아넘기고 자신은 어떻게 목숨을 건져보려는 속셈으로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 우성인자를 선별해서 모아놓아 외모도 좋고 체력도 건강한 아이들밖에 없죠.”

“그래? 야 신난다 오늘 횡재했는걸..”

“난 어린이들이 좋더라. 장기 떼어낸다고 손에 피를 묻히는 것보다 백배이상 좋지.. 낄낄..”

유아선호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적중하자 초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게 어디야? 어서 가르쳐줘..”

“어서 가르쳐줘 응?”

모두 비굴한 표정으로 초이에게 매달리면서 애원하기 시작했다. 초이는 아무 말 없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이 절호의 기회를 어떻게 이용해서 목숨을 건질지 머리를 굴렸다.


“어이 그런데 저것들은 뭐지?”


우르르르르


그르르르르


험상굿은 인상의 말에 초이와 다른 장기 체취꾼 주위에는 어느 틈엔가 붉은 눈을 한 인간들이 둘러서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로 울고 있었다.


“어쭈. 이건 뭐야? 단체로 약을 처먹었나? 눈들이 왜 다 저래?”


건조한 목소리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누군 줄 알아? 콩팥 다 떼내고 싶은 사람부터 어서 먼저 이야기해.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줄 테니까.”


그르르르르


주위를 둘러싼 인간들은 아무 대답도 없이 으르렁거리며 점점 다가왔다. 험상굿은 인상은 벌컥 화를 냈다.


“입 아프게 더 이상 말 할 필요가 없군. 에잇”


험상굿은 인상은 스테로이드로 만들어진 근육질 팔뚝으로 초이를 번쩍 들어 올려서는 다가오는 짐승인간들을 향해 확 던져버렸다.


“아악”


푸른 하늘을 잊을 정도로

짙게 드린 먹구름이

마음을 검게 물들이네

오늘 죽음도 두렵지 않아

그대 사라진 절망도

그대 없는 고통도

그대 던져준 허무조차

검게 물들일 오늘은

티디어스 데이

무공의 연마도

전장의 소리도

모두 잊힌 채

무료한 시간 속에 잠드네

구름 속에 감춰진

천상의 빛을 찾아

검은 마음의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설 그날을 꿈꾸리

오늘은 무료한 날

무협의 한 페이지

어둠 속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전설의 시작

죽음을 두렵지 않게 하네

오늘은

티디어스 데이


초이의 귀에는 망각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노래 ‘티디어스 데이’가 들리기 시작했다.


엘라 사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명곡 ‘티디어스 데이’를 작사, 작곡하면서 그 노래를 만들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루한 날 즉, 티디어스 데이가 반복되는 허무와 비정함과 고독이 넘치는 이 세상을 떠나 지옥으로 가자는 마음을 담은 노래로 혹시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혼동할 수 있으며 천국이 지옥일지 모르고 지옥이 천국일지도 모르니 자 어서 지옥으로 가자고 연인에게 조르고 싶어 만든 노래라고 했다.


뭔가 섬뜩하지만 티디어스 데이의 장중한 연주가 그 모든 의심을 불식시켰고 대한민국건국 이래 최고의 히트곡이 된 록음악이 되었다. 실제로 그 곡을 듣고 연인끼리 죽이고 자살하는 일이 벌어져 ‘저주의 록’이라는 별명도 얻는 불후의 명작이었다. 초이는  하지 않았을까는 생각이 자신도 죽기 전에 스쳐갔다.  


“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초이의 목이 직각으로 꺾여 버렸다.


초이의 몸무게에 의해 몇몇 짐승인간들이 넘어지자 4명의 장기 체취꾼들이 몸에 날개가 달린 듯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쉭쉭


휘리릭 휘릭


그들은 공중에서 내려오면서 감춰두었던 쇠파이프와 긴 칼들을 노련한 솜씨로 짐승인간들에게 휘둘렀다.


쉭쉭


쉭쉭


몇 분을 휘둘렀는지 4명의 꾼들은 거친 숨을 내쉬며 신기하게 동시에 동작을 멈추었다.


“헉헉.. 뭐지 저것들은?”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휘두르는 칼과 쇠파이프에 쓰러진 인간들을 밟고 끊임없이 모여드는 짐승인간들의 모습에서 4명의 꾼들은 ‘장기 체취꾼’ 같은 악마 같은 일을 해오면서 자신들이 수없이 보았던 피해자들의 공포를 한순간에 이해하고야 말았다.


우르르르르

그르르르르

으아아아악

으악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동작을 멈추지 않는 심장이 멈춰지자 4명의 장기 체취꾼은 대구시내 전체가 울릴 정도로 비명을 질렀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자신들의 눈앞에 막상 영원한 지옥이 열리자 너무나 끔찍하였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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