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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혁 Oct 17. 2017

반려견 통역기

장편 추리소설 1

애인한테 개 차이듯 차인 주인님이 울고 있다.


주인님과 나만 있는 코리아타운의 싱글아파트가 지진처럼 흔들릴 정도로 주인님은 꺼이꺼이 울고 있다. 뭐 주인님의 울음소리가 아무리 커도 이웃집 흑인들과 라티노들의 파티 음악소리에 묻혀 밖으로 새어나가진 않겠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자식들을 창문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주인님이 한동안 온갖 애정을 쏟았던 애인에게 매몰차게 차인 충격이 큰 듯 나의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큰 소리로 울고 있다.


바닥에 엎어져서 우는 꼴이 정말 개망신당한 모습이다.


나는 주인님의 아내와 사별한 후에 이 집에 들어와서 주인님의 아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평소 나를 대하는 주인님의 자상한 모습을 통해서 주인님이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마 주인님의 아내를 떠나보냈을 때도 저렇게 울었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나는 그냥 멀직이 떨어져서 주인님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냥 주인님의 곁에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나 같은 개는 평생을 울부짖으며 보내는데 소위 ‘울음’에 관하여서는 통달하게 된다.  주인님의 울음소리가 저리도 오래도록 구슬프게 들리는 것은 그만큼 주인님이 퍼붓는 사랑이 깊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의 13년간의 오랜 삶 속에서 통달 한진리중의 하나이다.


주인님이 좋아라 하고 나의 목 주위에 달아놓은 ‘반려견 통역기’를 통해 통역되는 나의 음성은 대부분 간단한 말 뿐이다 .


밥 주세요

밖에 소리가 들려요

벼룩때문에 간지러워요


등의 간단한 말밖에 없을 것이라 인간들의 귀에는 통역기가 있건 말건 개가 하는 말은 별 특이한 점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개들은 말보다 눈빛으로 소통하고 바디랭귀지를 이용하여 서로 교통 한다. 나의 개눈으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복잡하고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 그걸 모르는 인간들이 반려견 통역기라는 기계를 달아놓으면 개들과 속시원히 소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어리석은 생각같이 느껴진다.


나 같은 개들은 오감을 통해 육감으로 소통한다.


인간들은 입 밖으로 내는 소리들을 통해 소통하려고 하는데 그건 정말 개소리다. 개 짖는 소리를 번역해봤자 거의 배고프다. 아프다. 주인님. 누구 야등이 대부분이다. 비싼 돈을 들여 반려견 통역기를 사는 이유를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주인님께 순종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자 임무이므로 죽을 때까지 반항하지 않을 것이다.


태어나자마 버려져서 길거리를 헤매다가 경찰에게 낚여 온 동네 멍청한 개새끼들이 같이 합숙하는 셜 터에서 나를 구원해준 우리 주인님을 나는 정말로 좋아한다.


셜 터에서 만난 치와와가 (참고로 나는 골든 레트리버 종이다) 안 그래도 비좁은 셜 터에서 내 품에 들어와 한 말인데 주인님이 오신 한국에서는 개들을 잡아먹는 인간들이 많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 적이 있어 한국인에 대한 대체적인 선입관이 개판에 가까웠는데 막상 지내보니 한국인들만큼 정이 많은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개들에게 간이라도 떼줄 것만큼 친절하다가 아무도 보지 않으면 개들을 개 패듯이 패고 차가 많은 도로에 죽게 내버려두는 가식적인 이중인격자들이 많다. 한국인이니 미국인이니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싸잡아 모든 한국사람이 개를 잡아먹는다든지 혹은 모든 미국 사람들이 개를 사랑한다든지 하는 말은 다 무의미한 개 짖는 소리다. 아참 개 짖는 소리가 나와서 말인데 나같이 주인님을 관찰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개들과 달리 똥인지 음식인지 구별 없이 자기 앞에 놓인 것에 코를 대로 냄새를 맡기 시작하는 소위 똥개 같은 개새끼들은 정말 듣는 나도 시끄러울 정도로 무의미하게 짖어대길 좋아한다.


그래서 난 일부러 그런 개새끼들과 구별되려고 잘 짖지 않는다. 나처럼 똑똑한 개는 주인님도 똑똑한 사람을 만난다. 굳이 시끄럽게 짖지 않아도 똑똑한 주인님들은 잘 알아서 개들을 대한다. 정말 머리에 든 것 없는 개들이 시끄럽다. 허구한 날 짖는다. 한 번은 내 가 그런 개에게 좀 조용히 하라고 했더니 이빨을 드러내길래 달려들어 목의 급소를 숨통이 막히도록 한번 깨물어 준 적 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피하는데 측은할 정도였다. 근본 없는 똥개들은 기죽었을 때 참으로 불쌍하게 보인다. 인간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을 다스리고 여럿이 있을 때는 입을 다스려야 한다.


떠 드는 인간치고 개들에게 잘해 주는 인간들을 난 13년 평생 한 번도 보질 못했다. 난 개들을 잡숫는 것 분보다 쉴 새 없이 나불대는 인간들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다 겪어보고 하는 소리다. 내가 보아하니 인간들은 개들과는 달리말로 서로 공격하고 싸움질하는 것 같아 보였다. 가만히 지켜보면 인간들은 끊임없이 서로 고함치고 언쟁을 벌인다. 그냥 우리 개들처럼 가만히 눈빛으로 소통할 순 없나 꼭 저렇게 말로서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정말 개입장으로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주인님은 인간치고는 조용한 타입인데 자식들이 나타나면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 개들은 부모의 얼굴을 모른다. 그런데 가끔씩 얼굴 모르는 엄마가 그리워서 아파트 밖에 앰뷸런스가 지나갈 때 사이렌 소리와 비슷한 소리로 울부짖는다. 그냥 그게 자동적으로 나도 모르게 입 밖에서 나온다.


그런데 주인님의 자식들은 한동안 아침에 아이를 데려 올 때 ( 작은 인간을 데려오는데 아마 주인님 자식의 자식 같아 보인다 ) 매번 싸우면서 얼굴을 찡그린다. 주인님의 자식들은 부모인 주인님이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나는 한 번만이라고 어머니의 얼굴을 봤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인간들은 계속 같이 지내다 보니 서로 싫증이 나나 보다. 안 그렇고서야 저렇게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고함을 치면서 다투지는 않을 것이다.


개들의 경우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처음 한번 물어뜯고 싸우고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면서 거리를 둔다. 그러나 지켜본 결과 인간들은 오랜 기간을 싸우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 같다.


내 나이 이제 13살로 세상 떠날 날이 멀지 않았는데 세상의 모든 고민은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고독을 느끼는 것은 혼자가 아닌 세상을 살고 있는데 우리를 둘러싼 타인이나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해서 느끼는 것이다.


개들은 주인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모른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주인님이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 지파 악하고 주인님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그러나 주인님을 비롯한 인간들은 좋은 관계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곁에 지켜보니 주인님의 자식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주인님이 돌봐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보였다.


 개들이야 주인님과 같이 지내는 일만 하면 되지만 인간들은 다른 많은 일들이 많이 있어 자식을 돌볼 수가 없는 경우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조용히 와서이야기를 하면 주인님의 성격상 거절을 하지 못할 것인데 다짜고짜 하루는 찾아와서 고함을 치면서 자신의 자식을 집안에 두고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주인님은 자식을 따라가려다 방안에 남겨진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안고 어르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순식간에 주인님과 나의 관계 속으로 들어왔다.


주인님은 첫 한 달 동안을 아이의 우유를 먹이고 놀아주느라 힘든 나날을 보냈다. 어쩔 줄 모르고 고생하는 주인님을 위해 나는 어떻게 하면 주인님께 도움이 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아무래도 인간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유심히 인간 아이를 관찰하였다. 인간 아이의 눈빛은 궁금증 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처음부터 나에게 적대감정을 보이진 않았다. 인간과 다른 개라는 존재를 처음 보는 사람 치고 두려움 없이 웃으며 나의 품에 들어왔다. 주인님은 처음엔 달려드는 아이에게 내가 놀라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내가 잘 놀아주자 안심하는 듯해 보였다. 그러면서 우유를 아이에게 먹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주로 나와 놀게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주인님이 시킨 일이라 나는 기꺼이 순종하기로 하고 무엇을 하며 아이와 놀아 줄까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인간 아이들은 혼자서 잘 놀지만 조심성이 없어 다치기가 쉬운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아이를 지켜보면서 위험할 때마다 내가 다가가서 보호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주인님의 나이를 정확하게 갸늠해 볼 수 없지만 대략 낮잠도 자고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가만히 텔레비전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아 거의 나와 동년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는데 순발력이라든지 활동적인 면으로 보면 주인님보다 내가 아이를 지켜주는 것이 훨씬 낫고 그게 주인님을 돕는 일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주인님의 자식이 아이를 맡긴 후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인님과 아이 사이를 번갈아 가면서 지켜보는데 하루가 얼마나 정말 쏜 살 같이 빨리 지나갔다.


주인님의 자식은 아이를 매일 저녁때쯤 픽업하는데 나처럼 하루가 피곤했는지 매일 잔뜩 찌 부릉 한 얼굴로 아이를 데려갔다. 내가 보기엔 아이를 키우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런 쳐진 자식의 어깨를 주인님은 다독거리면서 위로하고 용기를붂돋아 주려했지만 주인님의 자식은 주인님의 손길을 매몰차게 치면서 싸늘한 바람만 남겨 놓은 체 아파트 문을 닫으며 나가버렸다. 주인님은 그럴 때마다 바깥세상과 차단되어 닫혀버린 아파트 문을 서글픈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이나 그대로 서있었다.


도대체 주인님은 무엇을 자식에게 잘못했을까?  


과거에 혹시 미움받을 일을 한 적이 있었었나 아무리 내 머리를 굴려 봐도 오랫동안 주인님과 함께 있으면서 주인님의 성격을 잘 아는 나로서는 도저히 추리해 낼 수가 없었다. 혹시나 때문에 주인님이 난처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원래 주인님은 살기 훨씬 편한 곳에 살았는데 애완동물을 기를 수 있는 아파트를 열심히 찾다가 결국 일부러 나쁜 인간들이 우글거리는 ( 내가 나쁜 인간이 우글거리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시도 때도 없이 아파트 주위에 들려지는 병원 엠뷸런스와 경찰차 사이렌 소리 때문이다 ) 이 음침하고 낡은 아파트에 살게 됐다. 원래 나를 싫어하였는 데다가 이런 곳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 매번 찾아오기 싫어셔였는지 주인님의 자식은 나를 노려보면서 주인님께 여러 번 불평을 터트렸다. 나는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주인님은 자식이 그럴 때마다 난처한 표정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설득하였다. 나의 목에 걸린 반려견 통역기는 개의 말이 인간들에겐 번역이 되지만 인간의 말이 개에겐 통역되지 않는다. 사실 통 격기가 있건 말건 눈빛과 표정만으로 인간과 소통할 수 있기에 나는 주인님이 무엇을 설득하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주인님은 나를 얼마나 함께 살고 싶어 하는지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간절하고도 애달픈 마음을 담아 호소하였다. 주인님은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많이 외로웠었나 보다. 주인님은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주인님의 애잔한 마음이 충분히 나에게 전달되었다. 외로운 건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난 배 고픈 것은 며칠 견딜 수 있지만 외로움은 하루로 견딜 수 없다. 마음이 그렇게 불안할 수 없다. 나 같은 개들은 외로우면 정말 안절부절못하여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질못하고 서성거린다.


주인이 없이 혹은 있었다가 버려진 길거리의 개들의 울부짖음을 난 밤마다 듣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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