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rliver Dec 21. 2016

라오스, 그 담백함과의 첫대면

태국 치앙콩을 지나 라오스 루앙남타 입성

태국의 라오스 접경 마을 치앙콩에서의 지난밤은 너무도 추웠다.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서 씻는 둥 마는 둥 고양이 세수만 간신히 한다. 함께 12인승밴을 탔던 다른 여행자들도 잠을 못 자서 부스스한 얼굴로 나와 있다. 강 건너의 라오스 마을을 바라보면서 빵과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호주에서 여행을 시작했다는 일본인 여행자 둘은 라오스의 어디로 갈 것인지도 정하지 않았다며 함께 트럭에 뒷자리에 오른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출입국관리소로 간다. 

출국심사 후 셔틀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넌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태국과는 이별이다. 강을 건너면 라오스 땅이다. 라오스 입국 수속이 시작되고, 여권에는 라오스 15일 무비자 입국 스탬프가 찍힌다.


태국의 빠이에서 출발해서 국경마을 치앙콩에서 하룻밤을 자고 라오스의 루앙남타(Luang Namta)라는 도시로 가는 티켓을 트래블 에이전시에서 예매했다. 라오스 국경에 도착했으니 지금부턴 루앙남타로 간다. 운전사는 라오스인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유용한 교통수단은 12인승 밴이다. 처음 보는 라오스 풍경이 차와 함께 달린다.   

국경 하나만 넘어서면 달라지는 풍경과 언어와 풍습들이 늘 신기하지만 라오스 풍경은 태국의 그것과 다르다. 태국보다는 훨씬 낙후한 모습, 사람이 손길이 많이 가지 않은 풍경이다.

 

12인승이지만 외국인 여행자 아홉 명을 태우고 가던 차는 마을에서 두 명의 현지인을 더 태운다. 아기를 데리고 루앙남타로 가는 부부다. 아기를 안은 아기 엄마가 옆에 자리를 잡는다. 뒷줄에는 프랑스에서 오신 육, 칠십 대 노부부들이다. 라오스가 예전에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라서 프랑스어를 말할 줄 아는 노인들도 있고, 라오스 인들은 그 영향으로 지금도 맛있는 바게트를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라오스 여행자 중에서는 유독 프랑스인들이 많다. 승객을 가득 태운 차는 가끔 휴게소 역할을 하는 작은 가게 앞에 차를 세워 화장실에 가게 해주며 라오스의 산길을 달린다.

루앙남타(Luang Namta)는 라오스의 북부 루앙남타주의 주도라고는 하지만 조용한 작은 마을이다. 라오스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니 이곳의 인구밀도는 일제곱 킬로미터 당 18명이다. 산지가 70퍼센트, 라오스 전체 인구가 600만 명이라니, 거리에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자동차도 몇 대 보이지 않는데 신호등이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숙소를 찾는 일조차 너무나 쉽다. 게스트하우스 더블룸이 80000낍, 라오스 돈은 처음 사용하는 데다 화폐단위가 커서 얼마인지 감을 못 잡는다. 눈치 빠른 직원이 금방 10달러라고 고쳐 말해준다.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아서 이곳에 묵기로 한다. 한국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 들고 복도를 걸어 방으로 들어간다. 


짐을 풀고는 일단 주린 배부터 채우러 간다. 조용한 마을의 식당엔 손님도 없다. 여행자 메뉴가 적힌 식당으로 들어간다. 손님이라고는 동행과 나, 둘 뿐인 늦은 오후의 식당에서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커다란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며 사람을 불러 고치는 중이다. 투박하게 느껴지는 서비스가 불친절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냉장고 고치는 것을 예능(?)처럼 바라보면서 느린 식사를 끝내고 거리로 나선다. 작은 의자를 모아 책상을 만들어 그위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있다. 수줍어서 눈도 못 맞추는 아이들의 시선이 그저 그림으로만 가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언제나 방글방글 웃으며 사진기를 가리키던 인도 아이들과 비교가 돼서 괜히 웃음이 나온다. 몸집 작은 개들 몇 마리가 뛰어다니는 거리,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는 루앙남타의 오후는 고요하다. 


함께 이곳에 도착한 프랑스인 노부부들을 거리에서 다시 만난다. 유럽에서 아시아의 먼 나라로 장기여행 중인 이 노부부들은 한마디로, 멋있다. 나이가 들면 몸이 힘들어서 여행을 못할 거라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것은 이런 여행자들의 이야기다. 막상 여행지에 가보면,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목발에 의지해서 여행 중이기도 하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아저씨가 부인의 손을 잡고 배낭을 메기도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안락함을 추구하는 여행은 그저 관광이다. 낯선 것들과의 조우를 꿈꾼다면 여행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여행을 가로막는 것은 몸의 불편함이 아니라 생각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극기훈련이 아니다. 일상을 걷듯, 자신의 걸음걸이에 맞게 여행하면 된다.


라오스는 열대우림의 산지가 대부분인 나라로 보존이 잘 되어있다고 한다. 이곳은 라오스 최대의 보호구역인 남하(Nam Ha) 국립보호구역이 있어서 트레킹 하러 오는 곳이다. 프랑스인들 역시 3박 4일짜리 트레킹을 예매했다며 함께 가길 권한다. 라오스에서는 무엇을 해도 사람이 모여야 좋다. 정해진 비용을 신청 인원에 따라 나눠 내는 것이라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가격은 내려가는 것이다. 동행과 나는 트레킹은 하지 않고 현지인 홈스테이를 원해서 일단은 이야기만 듣고 헤어진다.

어두워진 하늘을 밝히는 불빛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발길을 야시장으로 이끈다. 국수가게에 자리를 잡고 주인의 얼굴을 쳐다본다. 두꺼운 면과 얇은 면 중에서 면을 골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눈치로 알아듣고 손짓으로 면을 정한다. 젓갈 맛이 나는 간장과 작은 고추를 넣어 국수를 먹는다. 담백하고 칼칼한 게 입맛에 맞는다. 카메라를 꺼내 드는 나를 보고 옆에서 저녁을 먹던 남자들이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손님에게 국수를 내어 주고는 드라마에 푹 빠진 아주머니들 모습도 편해 보인다. 


거창한 볼거리가 있는 게 아닌 라오스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를 반나절만에 알게 된 것 같다. 조미료가 없는 그대로의 맛, 나긋나긋한 친절이 아닌 그렇게 살고 있을 뿐인 선한 마음, 그런 담백한 얼굴을 마주하는 게 즐겁다. 여행자 위주의 순화되고 정갈한 관광지의 노점보다 투박한 현지인들의 야시장을 돌아다니는 게 마음이 편하다. 노점의 구운 통닭이 몇 마리가 남아 떨이를 기다린다. 많이 늦은 시각이 아닌데도 야시장은 금세 파장할  분위기다. 


일교차가 커서 밤엔 추운데 침낭을 가져오지 않은 동행이 긴 팔 티셔츠를 사겠다고 옷가게에 들어간다. 촌스런 옷들 중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옷을 하나 고른다. 상표를 확인하니 "메이드 인 코리아"다. 깔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까만 밤하늘, 어두운 거리를 간간히 비치는 불빛에 의지해 걸어도 무섭지 않은 라오스의 밤이 너무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