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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Apr 11. 2020

떠나기 싫지만

탕갈루마 리조트 면접 후

 

육지로 돌아가는 4시 배를 타야 하니까 면접 후에 대략 1시간 반 정도 시간이 남았다. 때마침 팀으로부터 면접 끝났으면 수영하러 가자는 연락이 왔는데, 문제는 수영복이 없었다. 섬이니까 수영복을 들고 올까 말까 엄청 고민했다가 짐 무게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고 어차피 면접 보러 가는 건데 수영할 정신이 어딨나 싶어 안 챙겨 온 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하지만 팀이 수영복 대신 입으라며 반팔 반바지를 빌려준 덕분에 곧바로 해결됐다.
 
 한국에 있을 땐 기회가 없어서 못했을 뿐 사실 나는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누군가 최고급 수영장과 깨끗한 바다 둘 중에 어디에서 수영할래라고 묻는다면 1초도 망설임 없이 바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다 수영만의 매력이 너무 크다. 면접 보러 가서 수영까지 하리라곤 생각 못했지만 그래서 팀이 먼저 그런 제안을 했을 때 내심 속으로 기뻤다.
 멀리서만 바라봐도 예쁜 파란빛 바다가 물밑으로 헤엄쳐 들어가니 유리알보다도 더 맑고 투명했다. 그 맑은 물아래 깔린 하얀 모래들이, 잔잔하게 찰랑이는 물결을 따라 햇빛을 반사시켜서 물 표면에서 보이는 것보다도 물 안에서가 더 밝고 눈이 부셨다. 이런 곳에서는 정말이지 하루 종일이라도 있고 싶은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금방 떠나야만 한다.

 시간을 꽉 붙들어놓고 싶을 정도로 배탈 시간이 너무 빨리 다가왔다. 급하게 샤워하고 시간 맞춰 티켓 창구로 갔더니 투어데스크에 계셨던, 한국인 매니저님 말고 그보다 훨씬 더 연세 많고 직급도 더 높으셨던 분이 그곳에서 티켓을 나눠주고 계셨다. 내 면접을 함께 진행하진 않으셨더라도 내가 면접 보러 온걸 뻔히 알고 계시는데 좀 전까지 행색이 말끔하다가 갑자기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 나타난 날 보고 뭐라고 생각하실까, 내 표정에서 드러난 당혹스러움은 도무지 숨겨지지가 않았다. 정말 혹시라도 이게 면접 결과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면접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수영을 하고 왔는데 괜찮나요…?”라고 먼저 여쭤보았더니 웃으면서 괜찮다 하신다. 휴.

 배에 올라타기 전 팀과 부둣가에 있던 팀이 소개해준 다른 직원들과 포옹과 함께 인사를 나눴다. ‘행운을 빈다’는 의미의 검지와 중지를 교차시키는 제스처를 하면서 꼭 합격해서 여기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내게 건네는 따뜻한 말들에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눈물이 터질 뻔한 걸 애써 참았다. 어쩌면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아니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다.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면 그건 너무 슬플 것 같다. 전날 밤 잠을 거의 못 잤다가 긴장이 풀린 만큼 육지로 돌아가는 배에서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대합실과 자판기를 다시 보니 그 자리에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다친 새를 들고 나타나 내게 말을 걸었던 팀. 원래 팀은 내일까지가 쉬는 날이라서 섬에는 내일 돌아가려고 했다가 왠지 모르게 오늘 일찍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단다. 우연이었지만 나를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고 웃으며 얘기하는데 나 또한 우연히 면접 보기 전 팀을 알게 된 덕분에 뜻하지 않게 면접 관련 팁도 얻고 리조트 직원들과도 인사 나누며 자신감 가지고 면접을 잘 치를 수 있었던 거라 팀과의 인연이 더 특별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내가 탕갈루마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특히 팀과는 정말 친한 친구로 지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선착장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가 어떤 직원 분의 차를 얻어 타고 버스 정류장까지 간 덕분에 이번엔 갈 때와 달리 30분 동안 걷지 않고 그곳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아침에 시내에서 선착장으로 갈 때와는 다른 방법이라 복잡했지만 어쨌든 이제 기차를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다시 브리즈번 시내에 도착했다. 노을이 옅게 깔린 한적한 기차역 모습이 스코틀랜드에서의 기차역과 겹쳐 보였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냥 행복해서 너무 배부른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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