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by 하루살이

1.

여섯 살 여름, 장난감 요요가 갖고 싶어 어머니께 떼를 썼다.

장난감을 손에 들고, 아버지께 혼이 날까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30분이 넘도록 마당에 서 있었다.


2.

열세 살 여름, 컴퓨터 한 대 갖고 싶다며 몇 달을 졸라댔다.

그렇게 얻어낸 170만 원짜리 컴퓨터로 하루에도 몇 시간씩 게임을 했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만을 기다렸다가.


3.

열일곱 여름, 아버지께 대들다가 난생처음 따귀를 맞고 도망쳤다.

갈 곳이 없어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집에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야 몰래 다시 들어갔다.


4.

스무 살 여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집을 나왔다.

들고 나온 내 소유의 짐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에 오랫동안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5.

스물일곱 여름, 부모님의 스마트폰을 사려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다.

시도 때도 없이 사용법을 알려 달라는 부모님께 짜증을 내며 방문을 닫았다.

알려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에 답답했다.


6.

서른한 살 여름, 세상을 사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땐 부모님처럼 살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이젠 부모님처럼 살 수 없을까봐 걱정된다.


7.

서른아홉 살 여름, 세상을 사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릴 땐 부모님처럼 살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이젠 부모님만큼만 살고 싶어 하루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