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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un 27. 2017

나를 해방시켜 줄 어떤 사랑

마르그리트 뒤라스,《연인》



열다섯 살 반, 강을 건넌다. 사이공으로 돌아올 때, 특히 버스를 타고 올 때는 마치 여행 같다. 그날 아침도 나는 어머니가 근무하던 여학교가 있는 사덱에서 버스를 탔다. 방학이 끝나는 날이라는 것만 기억날 뿐 그 방학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16쪽)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35쪽)
나는 항상 얼마나 슬펐던가.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57쪽)


먼 훗날 삶을 회고하며 다른 건 몰라도 이 순간만은 잊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을 함께했던 이는 누가 될까.


작가는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더욱 실감 나게 소녀였던 시절의 탈출하고 싶었던 폭력적 세계를 그린다. 그리고, 그 세계 속 어머니와 오빠들과의 관계들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자라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표현한다. 동시에 피식민지 국적을 가지고 식민지에서 생활했던, 가난하고 비참했던 삶의 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시간들을 탈출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소녀는, 한 남자를 만나고 순식간에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열정은 잠시나마 그녀를 탈출시켜주지만, 완전한 해방을 선물해줄 수는 없다. 예정된 결말을 맞이한 연인은 무력하게 서로 다른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 <연인> 스틸컷


영화화도 퀄리티 높게 이루어져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특히 차 안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끌리는 연기나 소설 속 그대로인 화면 연출에 감탄했다. 하지만 이들의 열망이 어디에서 기인했던 것이며, 각자의 결핍이 어떤 환경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깊은 감정들을 알기엔 소설 원작을 읽는 것이 역시나 더 좋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왜 그렇게 복잡한지 더 잘 알 수 있으니. 특히 이들의 관계는 나이뿐 아니라, 계급과 인종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읽어 볼 수 있기에 많은 이야기를 할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한편 소설에는 소녀의 어린 시절을 혼란으로 모는 아픈 어머니가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무의식적 목표는 어머니의 세계를 극복하는 데에 놓여있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알 수 있는 건 어머니의 폭력의 기원은 부재하는 아버지와 오빠의 세계였다는 것. 어머니가 내면화 '여자아이'에 대한 폭력적 시선이 딸과 어머니를 어떻게 억압하는지도 읽을 수 있었다. 연인의 관계뿐 아니라, 딸과 어머니의 관계가 어떻게 뒤엉켜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며 읽어보아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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