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의 반, 타의 반.
15년 전 처음 서울에 올라갈 때의 열망과 잠시 내려왔다가 다시 돌아갈 때의 다짐이 무색할만큼, 택배로 부치기 애매하고 번거로운 짐은 다 버리고 올만큼, 조금 애매하지만 돌려받지 못한 물건이나 마음 따위 깨끗이 포기할만큼,
불확실한 전망을 갖고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게 올라갈 수 있냐고 신기해하던 15년 전 그때 친구들의 반응처럼, 나는 단호하고도 매정하게 돌아왔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노래 <서울사람> 가사만큼 빚을 지거나 실패 만으로 얼룩지지는 않았지만, 이젠 더 궁금한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해 돌아왔다.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갖고있던 서점 운영의 꿈은,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한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었다. 아주 친한 친구들 말고는 치밀한 계획인 것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 저렇게 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에 가까웠다. 다니던 곳 퇴사를 먼저 결정하고, 지원사업 원서를 넣었다. 전주로 돌아갈 것을 공표한 뒤, 지원사업에 합격했다. 지원사업 취지 중 '전라감영 일대 전주 원도심 아카이브' 내용을 보고 전라감영 바로 옆 공간을 임차했다. 서점 공간은 딱 한 곳만 알아보고 생각보다 저렴해 바로 결정했다.
아침 겸 점심으로 PNB 풍년제과 초코파이 오리지널을 먹을지, 딸기맛을 먹을지, 바나나맛을 먹을지는 치열하게 고민해도, 이렇게 중요해보이는 인생의 결정은 쉬웠다. 순간의 쾌락에는 집착하지만 진로에 대한 결정 역시 한발짝 물러나서 관조하면 수많은 점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해 빠른 순간 마음을 먹는 편이다.
친애하는 나의 어머니께서는 내가 전주집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당연하게 말씀하셨다. 서점을 시작하자마자 회사다닐 때만큼의 수입이 보장되지는 않을거라는 (당연한) 걱정을 하고 있던 나는, 혼자 살기엔 넓은 오래된 우리 집 아파트에 다시 들어가기보다는 저렴한 원룸 하나를 얻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점 오픈한지 4개월 여가 지났을 무렵, 일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올해로 6년째 그집에 살고있던 분은 예상보다 한달도 더 빠르게 새 집을 구해 나가기로 하셨고, 4월 말에서 5월 초 난 꼼짝 없이 다시 전주 집 오래된 아파트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불확실한 나의 상황 빼고는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일이었으니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어머니께서 시골로 이주하시기를 결정하시고 난 후 8년 만에 다시 오래된 우리 아파트로 돌아왔다. 정확하게는 대학교 졸업 후 15년 여 만에 나는 다시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그렇게,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