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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29. 2020

치유의 바람 (1)

이사일기(2010-2020) - 4. 불광동 (2012.02)

   제주도에 가야만 했다. 내가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줄 치유의 바람이 필요했다. 그 바람은 제주에서만 부는 걸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치유되어 돌아왔다. 이가 흔들리는 꿈은 더 꾸지 않게 되었다.


무작정 제주행, 예고된 뜻밖의 만남


   일을 쉬고 있는 이의 특권 중 하나는, 항공권이 저렴한 평일에 표를 예매하고 떠날 수 있다는 것. 일을 쉬고 있으면 여유가 없어서 여행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불안했던 2012년 3월 초의 나에겐 치유받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월요일에 마음을 먹고, 바로 다음날 떠나는 티켓을 예매했다. 3월 초는 성수기가 아니었고, 또 평일에 가서 평일에 돌아오는 여정이었으므로 모든 것에 대한 예매가 수월했다. 인기많던 쫄깃센타, 지인이 추천해준 레이디박스 등의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무작정 떠나는 것이지만 페이스북의 지인들에게 제주도 여행 가볼만한 곳 등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남겼다. 머릿속으로 루트를 그려보고 있는 중에 페이스북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뮤지션의 댓글을 발견.


   “M가게가 내일 제주에 오픈해요!”


제주 시내에 있던 M의 가게, 오픈날 모습


   남녀 혼성듀오였던 D팀의 남자멤버인 M이 제주에 멕시칸 음식점을 오픈한다는 것, 특별한 목적과 루트를 정해놓지 않은 여행의 묘미랄까. 제주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갈 곳은 자연스럽게 그의 가게로 정해졌다. 오픈을 축하해줄 사람이 되어야할 텐데 과연 내가 행운을 줄만 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제주시내에 위치하고 있던 그의 가게에 가서 음식도 사먹고, 행운의 말도 건네주었다. 내가 첫 번째 손님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현재 그 가게의 유지여부와 그의 행방은 잘 알 수 없지만, 8년 지난 지금 잘 되었기를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왠지 모를 이끌림으로


   이때의 여행이 두 번째 제주여행이었는데, 첫 번째 여행과 똑같이 첫날의 숙소는 모슬포가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흘러흘러 그곳에 왔다. 다음날 아침엔 당시 해군기지 문제로 반대하는 분들에 대한 경찰의 진압이 예고되어 있던 강정마을로 향했다. 왠지 모를 이끌림으로.


강정교 입구, 경찰은 이유 없이 다리를 막고 폭력사태를 야기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생명의 흐름과 순리를 그저 지켜내고자 하는 이들과 막무가내로 막고 진압하는 경찰과의 대치 가운데 나도 살짝 모래알 하나만큼 거들었다. 두리반에서 안면이 있던 분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고.


   그곳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나의 치유 또한 중요했기에, 그곳을 나와 올레길을 걸었다. 산방산에서 모슬포 방향으로 걸었던 그 곳에서의 그 시간, 8년도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될 정도로 내겐 너무 좋은 기억이다.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던 제주도.


둘째날 숙소, 레이지박스의 카페공간

   두 번째 밤은 트친이 추천해준 레이지박스라는 숙소에서 묵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의 게스트하우스였다. 카페 공간도 따로 있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하루 동안 가졌던 느낌과 그동안 가져왔던 답답함을 어느 정도는 풀 수 있었다.


   다음날에는 아침 일찍 모슬포항에서 가파도로 향하기로 했다. 가파도의 보리밭, 그리고 지평선과 수평선을 모두 볼 수 있다던 풍경을 그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잊고 있었지만 첫째날 나는 최근 시달리고 있던 ‘앞니 흔들리는 꿈’을 꾸지 않았다. 그날 밤에도 꾸지 않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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