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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Oct 31. 2020

딱 한 가지 없는 것

이사일기(2010-2020) - 4. 불광동 (2012.02)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습니까?


   매일매일 일어나고 잠들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 넓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공간을 맞이하니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너무 더워서 자면서도 땀을 줄줄 흘리거나, 너무 추워서 전기장판을 깔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써야 한다거나, 하루에 열 마리씩 모기를 잡아야만 잠들 수 있다거나, 겨울에 수도관이 동파되어 온갖 고생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조건들로부터의 해방.


   누가 보면 엄청 좋은 집에서 사나보다 하겠지만 위에서 열거한 아주 기본적인 조건들로부터의 해방이 내겐 정말 큰 변화였다. 쾌적하고 편리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필요 없는 고민이겠지만 내게는 돌파해야 할 첫 번째 관문.


   신축은 아니지만 지어진지 20년이 안 된 것 같은 3.5층 원룸 건물. 6~7평 넓이에 침실과 주방이 적당히 분리되어 있고, 무려 세면대도 있는 넓은 화장실(화장실 세면대의 유무는 집 레벨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 부족할 것 없는 객관적인 환경에-


   구파발역과 연신내역 사이 1번국도 위 버스정류장에는 걸어서 2분이면 도착, 서울의 북서쪽 끝이지만 연신내역을 이용해 서울 중심으로 접근하기도 나쁘지 않았다. 객관적인 조건 상 문제가 없었던 불광동 집에서 지내는데는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었다. 위에서 열거한 모든 조건들은 지금껏 내가 살았던 서울 집들 중에서 가장 좋았으니.


   이 집의 주인은 나보다 세 살 정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문제가 있거나 서로 대화할 일이 있을 때 유연하고 부드럽게 해결해 주었다. 심지어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할 상황에서 내 사정을 말하니 다음 사람이 구해지기 전에 내 보증금을 미리 빼주기까지 했다. 고로 집주인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 그럼 내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는가? 정말로 내게 그것이 간절하고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 이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진짜 이유는 뭐야?


   그럼 내가 느낀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연신내역과 구파발역 사이 세명컴퓨터고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 학교 사이 중간쯤 위치해 있었던 우리 집. 빌라 건물들만이 가득했던 우리 동네. 2분 여 걸어나가면 휑한 느낌의 큰 길, 1번 국도.


   비록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이전까지 살고 있던 마포구 망원동, 염리동, 용강동 일대에 비해 참 재미 없는 동네였다. 볼 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동네는 보통 집값이 비쌌으므로 어쩌면 자연스러운 문제였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만족하고 있지 못하는 건 무엇일까.


'서울에 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 돈 내고 살고 있는데 가급적이면 내가 살고싶은 곳에 사는 게 나에게 더 좋은 일이 아닐까?'


   보통 일터와의 거리, 집의 컨디션, 임대료 등이 최우선 고려 조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임대료 다음으로 내게 중요한 것은 '집 주변의 분위기', '동네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야말로 실속 없는 것, 실용적이지 않은 사람..


   불광동 집에 살면서 몇 달간은 돈 버는 일이 마땅치 않아 부어왔던 적금에서 돈을 빼서 쓰고 있는 상황이어서 좀 더 보증금 저렴한 곳으로 다시 옮겨 여유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위에서 말한 이유가 나의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지 생각한다.


   내가 잘 알아서 하겠노라는 치기 어린 선언을 하고 올라온 사람의 모습 치고는 너무 근천스러운 데가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인드 하나만을 가지고 나는 5개월 후 다시 주거취약계층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동네'로 이사할 것을 결정했다.



   아, 내게 중요한 가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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