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전체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제목을 염두에 두고 시어, 시구 등의 관계를 음미하면서 시를 감상하는 거죠.
시의 제목은 대체로 시의 중심 소재(제재), 배경, 주제 등을 중심으로 정해진다고 했었죠?
물론 이 밖에도 시의 제목은 아주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서 정해지지만, 모든 경우를 다 살펴볼 수는 없으니, 우선 여기에 주목해서 알아보기로 해요.
시적 대상에 주목하라.
제재가 제목으로 선정된 경우, 우리는 그 제재를 ‘시적 대상’이라고 합니다.
추상적인 감정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기(형상화) 위해 시인은 여러 대상들을 작품 안으로 불러들이는데, 그 대상들을 ‘소재’라고 합니다. 여러 소재 중에서 핵심이 되는 소재를 ‘제재’라고 하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재를 ‘시적 대상’이라고 부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시인이 무엇에 대해 시를 쓴다고 하면 그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 ‘시적 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적 대상’을 제목으로 삼은 시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를 살펴보는 거고요.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가 어떤 가수(=시적 대상)의 콘서트(=시)를 기획한다고 하면, 무대, 관객(또는 객석) 또 게스트 가수를 고민하게 되겠지요? 무대, 관객, 게스트 가수 등을 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콘서트를 위해서는 조명, 안전 요원, 발권하는 사람 등등 수많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 수 많은 요소를 소재로 보면 됩니다.
자 이제, 시인이란 말은 지우고 화자라는 말을 써 봅시다.
작품이 발표되면 작가보다는 화자를 중심으로 시를 이해해야 합니다. 작가와 화자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 시들도 있지만, 어른이 아이의 입장에서 쓴 동시를 읽으며 작가와 화자를 동일인으로 볼 수는 없으니까요. 작가와 화가가 거의 동일한 시에서도 작가와 화자는 다른 인물로 보아야 합니다.
이별을 노래하는 우리 오빠들이 꼭 노래 가사처럼 사랑하고 이별한 건 아니잖아요?
시인의 고귀한 정신이 시에 반영될 수는 있으나 시인이 화자일 수는 없습니다. 오빠들의 사랑 경험이 노래에 녹아 있을 수는 있지만 가사의 사연이 오롯이 오빠들의 사연은 아니니까요.
시적 대상이 제목인 경우, 그 대상의 여러 특성 중 화자가 주목하는(시에서 주목하는)특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주 경기 대표를 뽑기 위해서는 우리반 아이들의 여러 특성 중에서 ‘달리기’라는 특성에 주목해야하는 것처럼요.
대체로 화자가 주목하는 시적 대상의 특성은 자신과 닮아 있거나 정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100%는 아니지만... 문학에서 100%는 없어요. 아래 '덧붙이기'에서 자세히 말하게요.) 화자는 어떤 대상에서 자신과 닮은 특성을 발견하고 이를 시로 노래하거나, 또 '나는 이런 게 없는데, 이런 걸 갖고 싶은데 저기에는 있네'라는 생각을 시에 반영하기도 하죠.
자, 다음 시를 한번 봅시다.
대지 아래
굳고 힘차게 뻗은
뿌리
안으로 감춘
튼튼한 마음
이 시의 제목을 시적 대상인 <바위>로 가정해봅시다. 만약 시의 화자가 ‘독립 운동가’라고 한다면, 화자는 독립을 위한 자신의 굳은 의지, 그리고 그것을 자유롭게 꺼내보일 수 없는 현실적 제약 등이 바위가 지닌 특성과 닮아 있다고 보았겠지요? 달리 말하면 바위의 여러 속성 중에서 땅 아래 묻혀흔들리지 않는 속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자신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시의 화자를 '병원에 입원한 환자'라고 해봅시다. 이때 바위와 화자는 반대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죠? 튼튼하고 굳건한 바위와 몸이 약한 화자. 화자는 바위에게서 자신이 지니지 못한 특성을 발견하고 이를 닮고 싶은(자신과 반대여서), 또는 바위의 굳건함을 지향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자가 '독립 운동가인지, 몸이 아픈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 맞습니다.
시의 스토리.
그래서 앞서 시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시의 스토리라고 강조한 겁니다.
앞서 배운 시의 스토리를 다시 떠올려보죠
“어떤 상황에 놓인 화자가 어떤 일을 하면서 무엇을 지향하게 된다.”
시의 스토리를 통해 화자, 상황, 사건을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제목이 제목인 이유'를 살펴보면서 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거죠.
'제목과 스토리의 연결고리'를 이해한다고나 할까요?
이제 우리는
'있었는데요, 없었어요'에서
'있어서 잘 살펴봤어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세 장으로 나누어 쓰기는 처음이네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겠죠?
다음 시간에는 <제목이 배경, 주제인 경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덧붙이기.
- '100%는 아니지만'에 대하여
예술, 문학에서 100%는 없습니다. <이거 아니면 저거(A와 –A)>로 보면 안 됩니다. '아름다움, 가치, 선'은 각자의 입장과 주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인간이 모여 만든 사회에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나라 <이것이지만 저것일수도 있는>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고 세상을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누어 보는 관점을 '이분법적 세계관(관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둘로 나누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에 들지 못해서, 이것에 들지 못한 저것은 소외되고 차별받습니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백인이 아니어서, 영어를 못해서 라는 이유로 선주민들을 얼마나 차별해 왔던가요?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은 둘로 딱 나누어 지지 않습니다.
51대49
연휴동안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놀고 싶은 마음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우리 안에 있지 않고, <이것인데, 저것일수도 있어(저것이어도 괜찮아)> 라는 가능성으로 존재합니다.
'난 몰랐었어 나의 맘이 이렇게도 다채로운지' 공감하시죠?
그래서 예술은, 문학은 '지금은 무엇인가?' 라는 성찰, '지금은 이것인데 저것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탐구,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향해야 할까?' 라는 지향을 담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올바름을 추구하나 올바름의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는 자세를 지녔다고 할까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게 우리 인간이고, 사회는 그런 인간들이 모여 만든 곳입니다. 문학은, 예술은 바로 그런 인간에 대한 성찰이자 탐구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 이라는 가능성이 차단된 세상에서 이것에 들지 못하고 저것이 되어버린 나는 결국 소외되고 맙니다.그 자리에 인간의 존엄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