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중 시 해 09화

중고등학생을 위한 시 해석 안내서 8

학교 시험, 수능 시험을 위한 시 해석의 기본 지침서

by 덤피free dompea ce

스토리는 알았어요,


있었는데요, 없었어요.

제목 - 1


국어 쌤이 쉽게 풀어쓴 시를 이해하는 방법




지난 시간까지 ‘시의 스토리’와 ‘스토리를 잡기 위한 팁’을 설명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있었는데요, 없었어요. 제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짧은 시 한 편을 먼저 볼게요.


똑 또르르 똑

가을이 내린다


이 시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다들 감 잡으셨나요? 예. 도토리, 이 시의 제목은 '도토리'입니다. 제목을 알고 보면 참 귀엽기도, 참신하기도 한 시죠? 그리고 무엇보다 시에서 멀찍이 떨어져 혼자 멀뚱히 서 있던 제목이 시의 내용과 한 덩어리가 돼 시 전체 의미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가을이 내린다’는 시행은 제목으로 인해 보다 깊은 의미를 갖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을 ‘너’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죠? 우리, 이 얘기는 이따가 더 해보자고요.


제목은 대체로 시의 중심 소재(제재)나 주제, 배경 등으로 정해집니다.

그런데 이 제목을 정하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입니다. 시나 소설을 창작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금방 공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이들은 제목을 미리 정해놓고 글을 쓴다고도 하지만 쓰다 보면 그게 또 그렇게만 되지는 않아요.


시인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압축된’ 언어 형식으로 형상화합니다. 짧은 문장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녹여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한 단어, 한 문장에 며칠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시행 하나, 연 구분 하나가 어떨 때는 생명같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중요함을 넘어 어쩌면 시의 핵심이 제목이 될 경우도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 다시 학교 시, 문학 시험으로 돌아와 볼까요?


‘너 그거 공부했어?

뭐?

그거,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아, 그 시. 아직’


시험 기간에 심심찮게 듣게 되는 대화입니다.


학생들은 시를 왜 제목으로 부르지 않을까요?


수업 시간에 '<깃발>이 시험 범위에 들어가.' 라고 말하면 멀뚱히 쳐다만 보던 학생들이 ‘노스탤지어의 손수건’하면 그때서야 '아...' 합니다. 수능 시험을 대비하는 모의고사 때도 마찬가지예요. 출제 시가 낯선 시여서이기도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시의 제목을 제대로 보지 않습니다. '몇 번 문제 출제 시'라고 하거나, 인상적인 시구를 말해야 그때서야 '아...' 하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그 이유를 학생들이 시를 외워야 할 대상, 분석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시는 이해의 대상, 음미의 대상 즉 감상의 대상이 아닌 거죠. 분석하고 외워서 정답을 골라야 하는 대상이기에 제목이 잘 보이지 않는 거죠.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출제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내신 시험이나 수능 시험에서 여러분들은 제목과 작가를 어디에서 보셨나요? 출제된 시나 소설의 가장 끄트머리에 출처를 밝히는 정도로 ‘달랑’ 또는 ‘대롱’ 매달려 있는 정도죠? 그래서 시험에서 시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가) 또는 (가) 시’로 불립니다. 이렇게 시의 이름표를 떼버리고 (가)로 부르는 이유는 객관식 시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제목을 일일이 명기하는 것보다 (가), (나)로 표기해서 출제자나, 시험자가 좀더 쉽게 알아보게 하는 거죠. 또 더 나아가서는 다양한 해석이 아니라 출제 의도에 따라 시를 분석해달라는 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과 시 내용이 빚어내는 해석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저도 출제를 해 보면 이게 좀 더 능률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중요한 것은 이런 형태의 시험 문제가 학생들의 시 이해나, 문학 수업에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에게는 시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험에서 문학을 다루는 방식은 문학 이해나 문학 수업에 영향을 줄 수밖없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시의 제목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죠. 문학 시험을 출제할 때, 우리 학교 내신에서라도 제목을 살리자는 마음으로 제목과 작가를 제일 앞에 내세우기도 해보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네요. 문학 문제를 출제하시는 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시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제목을 학생들도 눈여겨보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학생들 탓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의 시험, 입시, 학업의 목적 등을 고려해 보면... 더 길게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목적지가 여기는 아니니까요.


이런 이유들로 여러분들에게 시의 제목은, 이 글의 제목처럼, ‘있었는데요, 없었어요’가 되어 버립니다. 분명히 처음에는 알았는데, 시행에 밑줄을 치고, 판서를 따라 적으면서 머릿속에서 제목이 지워져 버리는 거죠.

그런데 시의 제목은 시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그래서 시험 문제의 정답을 찾기 위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너도 자세히 보아야 할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의미는 ‘풀꽃’이라는 제목이 있을 때 완성됩니다.


똑 또르르 똑

가을이 내린다


이 시 다시 한번 볼까요?


제목을 '도토리'에서 '너'로 바꾸어 보자고 했지요?

'도토리'에서는 동시가 되고, 가을 풍경을 재미나게 표현한 시가 '너'에서는 연시가 되고, 떨어지는 것이 '눈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작은 가을 열매가 떨어지는 미세한 소리에도 '너를 떠올리는 나', '너를 기다리는 나의 사랑'이 담긴 시이기도 하겠고요.


그래서 시의 제목이 중요합니다.


'있었는데요. 없었어요. 제목'은 내용이 길어지네요.


제목을 통해 시를 이해하는 방법은 다음 장으로 미뤄두겠습니다.


이제

시는

'아, 그거'가 아니라

어엿한

'이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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