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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Nov 12. 2024

당신의 얼굴 (3)

단편소설



어머니가 의사와 이야기를 하러 간 사이 나는 동생의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동생은 평안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보호자 침대에 모로 누웠다. 어머니는 늦둥이인 동생을 유난히 아끼고 귀여워한다. 가정 형편 때문에 유치원조차 보내지 못한 동생에 대한 미안함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린 나이에 병마와 싸우는 동생이 안쓰러워서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어머니가 나를 노골적으로 제쳐두면서까지 동생을 챙기는 이유는 단지 그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뒷걸음칠 때 봤던 동생의 얼굴. 옅은 눈썹과 긴 눈꺼풀, 오뚝한 코. 그리고 하얀 피부. 동생은 쌍꺼풀 없이 길게 짖긴 눈, 매부리코 그리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나와는 달랐다. 그런 동생을 볼 때면 항상 누군가의 얼굴이 살아나 어른거렸다.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동생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이목구비를 닮아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단지 아버지의 이목구비와 닮은 나와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나에게 늘 돈만 요구하는 어머니가 떠올라서였던 걸까.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는 수술 비용과 입원 및 약물 치료 비용으로 이백만 원 정도가 들 거라고 했다. 네 아버지는 돈 구해온다고 해놓고 또 연락이 없더라. 어머니는 미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와 주눅 든 표정이 다시 한번 내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제가 한 번 구해 볼게요. 나는 어머니를 지나쳐 병실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도박을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눈치챘다 한들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확실한 사실은 아버지의 도박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며칠 전 역시 아버지는 도박 자금 때문에 집에 들어왔을 테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빚쟁이를 피해 서둘러 나간 게 틀림없다. 그날 아버지가 나가고 빚쟁이들이 찾아왔을 때 빚쟁이들은 방금 전까지 머물렀던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허탈한 표정으로 부엌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들은 벌써 몇 달째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빚쟁이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귀신같이 먼저 냄새를 맡고 사라져버리는 아버지, 덕분에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빈자리를 어머니가 빚쟁이들로부터 홀로 감당해야 했다. 빚쟁이들이 휘몰아치고 간 집에서 어머니는 늘 주저앉아 메마른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어쩔 줄 몰라 서 있는 나를 오랫동안 주시했다. 피할 수 없는 시선이었다. 확대된 어머니의 동공으로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에서 누군가를 본 것일까. 그 경멸과 독기 섞인 눈빛. 그때마다 나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고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수납 완료 후 영수증을 받았다. 액수가 새겨진 영수증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통장 잔액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합격만 하면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니 등록금 문제는 무난히 해결될 것이다. 


동생은 수술 후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해야 했지만 추가로 드는 입원비가 만만치 않았다. 의사의 허락 하에 병원으로 다시 올 때까지 집에서 요양하기로 했다. 안내 데스크까지 따라온 간호사는 어머니에게 병원으로 올 때 구급차를 부르면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십 킬로미터 이내는 기본요금 이만 원, 초과 시 일 킬로미터 당 팔백 원씩 추가된다는 구급차 이용안내서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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