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추가 합격 문자메시지가 온 건 오후 세 시 즈음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곧 폰 진동이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추가 합격하셨습니다. 입학처 교직원은 나의 합격을 예상했다는 듯 호기롭게 말했다. 등록했던 학생이 등록금을 환불해 가버렸어요. 덕분에 학생 순번까지 왔네요. 오늘 다섯 시 반까지 등록금을 납부해 주시면 됩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다섯 시 반요? 네, 다섯 시 반까지 입금확인이 안 될 시 입학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여 합격이 취소됩니다. 좀 더 날짜를 연장해 주시면 안 되나요. 그건 곤란합니다. 오늘까지 반드시 등록하셔야 합니다. 기간을 연장해 준다면 위법이며 감사 때 지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입금 후 연락 주세요. 전화는 끊어졌다.
같이 일하는 학생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편의점을 나왔다. 피시방으로 가면서 정부 학자금 대출 포털로 전화했다. 죄송합니다. 추가 합격인 경우 바로 대출이 불가능합니다. 사비로 등록금을 먼저 낸 후에 발부된 영수증을 가지고 해당 은행으로 가면 대출해 줄 겁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점장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 후 오늘까지 일한 돈을 가불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삼백만 원이 모자랐다.
컴퓨터 앞에 앉아 대출 사이트를 검색했다. 제 일 금융권은 부모님의 신용을 원했다. 제 이 금융권을 찾았다. 여러 개의 상호저축은행이 떴다. 전화번호를 찾아 꾹꾹 눌렀다. 본인의 신용만 깨끗하다면 대출이 가능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안내원이 말했다.
지금 바로 주민등록등본, 병적증명서, 통장사본, 신분증 사본 구비해서 팩스로 보내세요. 네. 플립을 닫았다. 몇 개의 서류는 집에 있을 것이다. 피시방을 나와 집으로 달렸다. 매달 월급의 삼분의 이가 방세와 병원비, 생활비 명목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이젠 네가 이 집의 가장이나 마찬가지야, 항상 나에게 당부하듯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대학을 가겠다는 말은 그때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갔다. 어머니의 월급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늘 부유하던 고기 구운 냄새. 나는 언제나 한발 늦었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가 한 발 빨랐을지 모른다. 등록금이 해결되어 합격만 된다면 이곳을 벗어나 대학교를 다니게 될 것이다. 집으로 달리는 다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안내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부모님 신용 문제 때문에 심사에서 탈락된 것 같네요. 부모님 신용은 상관없잖습니까? 제 신용만 깨끗하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했잖아요? 거기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심사는 제가 하는 게 아니라서 뭐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심사하시는 분 바꿔주시면 안 되나요? 규정상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전화가 끊어지고 다른 곳을 알아봤다. 다른 곳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몇 번의 거절을 당한 뒤 연락한 상호저축은행이었다. 심사가 통과됐다고 했다. 본인의 신원확인을 위해 부모님의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머뭇거렸다. 등본만으로는 안 되나요? 규정상 전화로 확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본인의 신원만 확인하고 바로 끊는 것이니 염려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부엌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곧 은행 대출업무가 끝날 시간이었다. 정말 신원만 확인하고 끊는 거죠. 나는 재차 확인하며 천천히 어머니의 번호를 불렀다.
오후 다섯 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상담원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수차례 전화를 해봤지만 밀려있는 상담이 많아 잠시 후에 다시 연락 해달라는 녹음된 안내 멘트만 흘러나왔다. 잠시 뒤 다시 전화를 했을 때 상담 시간이 종료됐다고 했다. 휴대폰 플립을 닫았다. 부엌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등록금 입금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날짜로는 입금을 해주셔야 합니다. 학생 때문에 직원들이 퇴근을 못하고 있습니다. 듣고 계십니까? 나는 천천히 플립을 닫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입학처 직원의 음성이 오랫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부엌에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바닥에 널브러진 서류들을 집어 일어났다. 싱크대 서랍을 열었다. 아까 등본과 통장 사본을 찾느라 서랍 안은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서랍을 통째로 꺼내 내용물을 바닥에 쏟았다. 서류와 통장들을 모아 간추려 넣으려 할 때, 빼낸 칸으로 아래쪽 서랍이 눈에 들어왔다. 구석에 손가방 하나가 박혀 있었다. 여러 서류를 덮어 놓은 게 뭔가 이상했다. 서류를 헤집고 손가방을 집어 들었다.
‘우체국 대학생 장학적금’ 표지를 넘겨보았다. 강정수. 성명란에는 동생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개설 일자는 나의 고등학교 졸업 년도와 같았다. 매달 지정된 날짜로 삼십만 원씩 입금되어 있었다. 입금자 성명은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굳게 닫힌 동생의 방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폰 램프가 깜박이고 있었다. 발신자는 작은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