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다시 야영장 입구에 다다랐다. 렌트해온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차로 다가가다 말고 멈춰 섰다.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강과 바다, 하늘, 솔나무, 지저귀는 새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해안가로 밀려드는 파도를 쳐다봤다. 하릴없이 바닥의 흙을 발로 문대며 시간을 죽였다. 쪼그려 앉아 마른 세수를 몇 번이나 했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숨을 쉬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현석은 몸을 일으켜 차로 다가갔다. 트렁크를 열어 준비해온 화덕과 번개탄을 꺼내 들었다. 차 뒷좌석에 올라타 번개탄 비닐 포장을 뜯었다. 꺼낸 번개탄을 옆 좌석 아래에 둔 화덕 안으로 집어넣었다. 불을 붙이기 전 열린 차창이 없는지 다시 확인했다. 차 문 잠금 버튼을 누르고 좌석에 천천히 등을 기댔다. 라이터를 꺼내 부탄가스에 연결된 도치 램프에 불을 붙였다. 현석은 눈을 감았다. 화덕 안의 번개탄에서 서서히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무슨 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실눈을 떠보니 차량 한 대가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곧이어 낡은 경차가 현석의 차 바로 앞까지 와서 서는 것이었다. 운전자는 현석의 승용차를 발견하고는 차를 뒤로 후진시키려는 듯했다. 낡은 경차는 뒤로 조금 물러나다가 갑자기 앞쪽으로 급발진하며 다가오더니 현석의 차를 그대로 들이 받았다. 그러고 나서는 시동이 꺼져버렸는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자는 몇 번이고 다시 시동 걸기를 시도하는 듯했으나 차는 꿈쩍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내린 운전자가 현석의 차 범퍼 쪽으로 걸어왔다. 운전자는 몇 번 차 문을 두드렸다. 차 안은 어느새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차고 있었다. 현석의 눈앞이 가물가물해지고 있었다. 몸이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 쓰러지고 있었다. 이윽고 다급하게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차창이 깨지면서 유리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들어왔다. 문을 힘껏 열어젖힌 누군가가 현석의 어깨를 잡고 밖으로 바로 끌어냈다. 현석의 쿨럭이는 기침소리가 솔나무숲 전체에 연이어 울려 퍼졌다.
현석은 운전자의 옆에 놓인, 아직 채 뜯지 않은 번개탄을 보았다. 그들이 앉은 야영장 가장자리 둔덕 아래로 드넓은 논이 펼쳐지고 있었다. 둘은 바람에 쓸려 흔들리는 벼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희안하이. 여는 우째 알고.”
한참 뒤 입을 연 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현석은 자신의 손에 묻은 번개탄 가루를 쳐다봤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쑤셨고 목이 타들어갈 듯 따가웠다. 어쩌면 자신이 이미 죽은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마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과 흐르는 강물 소리, 바람결에 흔들리는 솔나무 이파리들, 모든 게 실제였다. 그리고 둘은 여태 나란히 앉아있으면서도 서로를 보지 않았다. 현석이 다시금 번개탄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였다.
“주글 때 바다노니까 막 생각나데. 딴 데는 모르게꼬 여가 젤 펴날 꺼 가떠라.”
현석은 잠자코 있었다. 그 사람에게 어떻게, 왜 여기로 왔는지는 묻지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며 머리칼이 크게 나부꼈고 새들이 자지러지게 지저귀며 저편으로 날아갔다. 현석은 침을 삼켰다.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 당신은 여기서 죽을 권리가 없다, 당신 덕분에 어머니와 내가 여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가 나에게 지금 이런 선택을 하게끔 몰고 왔는지 묻고 싶다, 그래야 덜 억울할 것 같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날 덜 미워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석은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