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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Dec 03. 2024

바다로 가는 강 (2)

단편소설



현석은 쥐고 있던 울퉁불퉁한 자갈을 온 힘을 다해 바다로 던졌다. 모래사장에 퍼질러 앉아 밀려드는 파도를 구경했다. 그 순간 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긴 웨이브 펌 헤어스타일이 참 잘 어울렸던 그 녀의 이름은 세영이었다. 현석과 대학에서 만나 4년간 사귄 사이였다. 얼마 전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국은 취업대란이었다. 결혼하는 남자는 공기업 사원에 집안이 참 잘 살았다.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저께 결혼을 했으니 지금은 한창 신혼여행 중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대학 동기들도 하나 둘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어느새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다들 비혼이라고 하는데 왜 자기 주위에는 그런 사람을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든 건지 알 수 없었다.

순간 현석은 배를 잡고 모래사장에 엎드렸다. 악다문 잇새 사이로 신음이 새 나왔다. 하늘과 바다, 모래사장이 온통 노랗게 보였다. 통증이 조금씩 잦아들자 돌아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아까 강에서 맡은 악취가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냄새는 정말 지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 회사에 취업한지 2년이 되어갔다. 간만에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고민 끝에 휴가를 냈다. 10년 만에 본 아버지의 몸은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간경화 말기에 합병증으로 당뇨가 왔다고 했다. 상태가 심각해 앞으로 반년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간 이식을 받으려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하고 (조건이 맞는다 해도 아무도 나서주지 않을 게 뻔했지만) 친지나 가족 중에도 표면상으로는 조건이 맞는 사람이 없었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었다. 죽기 전까지 들어갈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하는가였다. 보조침대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벽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외투를 걸쳐 입고 일어났다. 

  “어디 가요?”

  “목욕탕. 얼른 청소하고 와야지.”

주간에는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목욕탕에서 청소를 한다고 했다. 현석은 부쩍 늘어난 어머니의 주름살과 퉁퉁 부은 다리를 한동안 쳐다봤다. 매달 얼마의 돈을 부치기는 했지만 아버지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어머니의 노동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현석은 아버지가 깨어나기 전에 어서 이 자리를 떠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몸을 일으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바람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하지만 또다시 시작된 복부 통증에 현석은 모래사장에 그대로 엎드렸다. 통증은 두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소화가 잘되지 않았고 심할 때는 밤새 허리, 등 통증이 지속되었다.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MRI를 찍을 것을 권했고 조직 검사 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지금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하더라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 무덤하게 말했다. 남은 기간은 기껏해야 수개월 남짓이었다. 진료실을 나올 때 간호사는 앞으로 들어갈 치료비에 대해 대략 안내해 주었다. 그 만한 돈은 현재 통장에 있는 돈으로는 충당할 수 없었다. 이미 많은 돈이 아버지의 병원비로 들어간 상태였다. 몇 년 전 들었던 보험 역시 고지의무위반으로 구두 해지 통보를 받았다. 최초 보험 가입을 도와줬던 설계사는 이미 보험사를 그만두고 없었다. 설계사의 말을 녹음해두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현석은 그 자리에서 크게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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